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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시대(上古時代)

원시 시대란 국가와 같은 형태의 사회가 출현하기 이전의 인류 초기 사회 단계를 말한다.
상고시대는 한민족이 형성되기 이전에 한반도와 만주 지역 거주민들이 겪었던 초기의 역사적 체험과 사회 발전 과정의 보편적 모형 가운데 하나이며, 한민족과 그 사회 및 문화의 뿌리가 생기는 기간을 말한다.

무리 사회는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서 구석기와 중석기 문화를 형성한 기원 전 1만 년 전까지 계속되었다. 무리 사회는 대가족 또는 몇 개의 가족이 모인 혈연 집단으로서, 수십 명씩 무리를 이루어 공동 노동과 공동 분배의 씨족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사회 구조는 평등 사회로 정치 조직, 사회 계층, 경제적 분업 등은 존재하지 않는 비조직 사회로서 지도자는 대체로 경험이 많은 연장자가 많았다.
우리나라 고대 사회의 구조는 귀족 계급이 없고 추장이 직접 지도·운영하였다. 남녀는 평등하였고 씨족들이 각각 단합하여 식물의 공동 획득과 관리를 꾀하였다. 개인적 생산으로는 도저히 가족의 양식을 확보할 수 없었으므로 공동 채취 방법을 취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씨족 단합 생활은 생산뿐만 아니라 외족의 침략을 방위하는 데 있어서도 필요했다.

이와 같이 씨족 사회는 공동 협동 단합으로 모든 것을 행한 생활이었으므로, 종교나 가무 등의 내용과 본질도 오로지 씨족적인 범주에 속하여 개인적 내용을 나타내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무용의 기능도 협동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감정과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었으며, 어떠한 목표에 도달하려는 사상적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손진태(孫晋泰)는 씨족 사회의 농경 제도가 두레와 품앗이였음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원시 공동 사회에서의 농경 생활을 입증해 주는 말이다.

이처럼 부족 시대의 농경 조직은 결사체인 두레제도였으므로, 두레패들의 생활은 공동노동·공동회식·공동가무가 성행하였다. 이러한 두레 체제 내에서 민중적인 요소를 지닌 무용도 성장하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원시 무용은 그들의 실리적 목적 때문에 자연 발생한 것이며, 무속 의식(巫俗儀式)과 공동생활을 통하여 성장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고대 무용은 무속 의식을 사제(司祭)한 무격(巫覡)들의 예술적인 종교 무용과 무속에 바탕을 둔 오락적(생의 기쁨)인 집단 무용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이 때의 춤이 어떠한 형태의 것이었나 하는 것은 학자에 따라 관점이 다르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무당 연희(巫堂演戱)는 예술성을 띤 무용 위주의 것으로 본다. 또한 민중 본위의 집단 무용도 순수 무용 위주였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원시 시대에는 언어 발달이 부진했고 의식(儀式)이나 생활이 단조로웠으므로 무용적 유희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