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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과 사람들어느 신혼여행, 철도 타고 가마 타고

어느 신혼여행, 철도 타고 가마 타고

울산에 거주하는 김영호(가명)는 1950년대에 경주로 장가를 갔다. 당시 울산-경주만 해도 비포장 도로여서, 거리는 가까워도 버스편이 하루 한 두 번 밖에 없었고,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을 철도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신부 집이 있는 경주에서 결혼식을 해야 하러 가야 했던 김영호는 마침 친구가 시보레 외국산 승용차를 빌려 주어 그것을 타고 장가를 들러 경주로 갔다. 경주 시내가 놀라 정도의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시보레 자동차는 부산 시내에 영업용이 서너 대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시대에 승용차를 타고 울산에서 경주로 장가를 갔던 것이다.

결혼식을 마치고 사흘 만에 울산으로 신행을 오게 되었다. 올 때는 기차를 타고 울산역까지 왔다.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신랑, 신부가 다 기차를 타고 왔다. 울산역에 내려서는 승용차나 택시를 빌리려고 해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울산역에서 학성동의 집까지, 신부를 네 사람이 메는 사인교 가마에 태워서 갔다. 승용차는 없었지만 집에 일종의 자가용이라고 할 수 있는 사인교는 있었기 때문이다. 신부를 가마에 태우고 신랑 김영호는 걸어서 학성동의 집까지 왔다.

김영호는 지금도 부인이 시집 잘못 왔다고 하면, 사인교 가마 타고 시댁에 온 신부가 누가 있느냐고, 그렇게 특별대우 받으면서 신행 온 경우는 드물다고 말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