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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과 사람들청춘의 파라다이스, 통학열차

청춘의 파라다이스, 통학열차

도로교통이 발달하기 이전, 학교 설립도 제한되어 있던 시절, 기차는 향학열에 불타는 학생들의 유일한 통학 수단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기차를 이용하여 등하교를 하는 통학생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냈다. 각 학교별로 경쟁의식이 촉발되기도 했지만 학생들만의 집단적 동지의식이 싹트기도 했다. 통학열차는 다양한 소문이 전파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통학열차는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남녀 학생의 로맨스를 주선해주는 공간이었다. 그저 교복으로만 상대방을 식별할 수 있는 익명의 남녀 학생들은 규칙적으로 한 공간에서 만나 일정 시간을 함께 공유함으로써 남몰래 막연한 짝사랑을 키우거나 위험한 풋사랑에 빠져들기도 했다. 이러한 ‘풍기문란’을 막기 위해 1920년대에 조선총독부 철도국은 남녀 학생이 타는 열차칸을 분리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즉 경성으로 통학하는 중등 이상의 학생들은, 3등차 2량 이상을 연결했을 경우 남학생은 앞 열차로, 여학생은 뒷 열차로 각각 좌석을 구분해 승차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만일 이것을 위반하는 학생이 있다면, 소속학교와 이름을 적어 철도국 수사과에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식민지의 통학열차는 항일투쟁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1929년 10월 30일 광주와 나주 사이의 통학열차를 이용하던 한국인과 일본인 통학생 사이의 집단 충돌은 11월 이후 전국으로 퍼져나간 광주학생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