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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 새로운 소통의 공간

전통시대의 대표적인 커뮤니케이션 공간은 장터였다. 장시는 상거래 기관이었을 뿐 아니라, 농민들이 통신, 납세, 오락, 기타 온갖 사무를 처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장시가 뉴스 교환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조선총독부는 농촌진흥운동 당시에도 장날을 이용하여 당국의 시책을 홍보했다.

여기에 덧붙여 각 지방의 철도역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 떠올랐다. 이광수가 대한제국의 멸망 소식을 처음 접한 곳도 바로 역이었다. 이른 아침 기차를 타기 위해 고읍역으로 나갔던 이광수는 대합실 벽에 붙어 있는, 한국이 일본에 합병되었다는 조서를 보았다. 대한제국 황제가 국토와 신민과 통치권을 대일본 제국 황제에게 양도한다는 것과 대일본 제국 황제는 이것을 받는다는 두 장의 조서가 붙어있었던 것이다.

해방 이후에도 장시와 철도역은 지방민의 양대 커뮤니케이션 공간이었다. 다만 철도정거장은 장시에 비해서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정보의 제공이라는 성격을 더 강하게 띠고 있었다. 장시가 민중들의 자율성에 의해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었다면 철도역이라는 공간은 비록 민중에 의해 이용되었지만 국가가 소유하고 관리하는 공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무의자가 놓인 대합실 벽에는 각종 포스트와 표어, 정부의 알림사항이 게시되어 있었다. 인쇄물이 드물었던 시절에는 이러한 공지사항을 붓글씨로 써서 붙이는 것 역시 역무원의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권위주의 정부에 의해 수많은 캠페인과 선전선동이 난무하던 시절, 철도역 대합실의 게시판은 정부가 위압적으로 주입하는 수많은 이데올로기의 경연장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