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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시대의 시작

우리 힘으로 철도를 부설하자

아관파천 후 1896년 7월 한국 정부는 1894년에 공무아문에 설치했던 철도국을 철도사로 개편하여 철도의 부설, 감독, 관리를 담당하게 하였다. 이 해 3월 정부는 미국인 모스에게 서울-인천 철도 부설권을 주고, 7월에는 프랑스의 피브릴르회사에게 서울-의주 철도 부설 권을 주었다. 모스는 1897년 3월 22일 경인선의 기공식을 거행하였으나, 자금 부족으로 공사가 지지부진하였다. 경의선 부설 권을 획득한 프랑스의 피브릴르회사도 자금 확보에 실패하고, 국제 정세의 변화로 경의선 건설의 필요성이 감소하자 철도 부 설권을 반환하였다.

1898년 대한제국은 서울-목포, 서울-원산-경흥, 원산-평양, 원산-진남포 사이의 철도 건설을 검토하였다. 1899년 7월 박기종 등은 대한철도회사를 세우고, 정부로부터 프랑스 피브릴르회사가 반환한 경의선 부설권을 획득하였다. 대한철도회사는 경의선 노선을 답사하는 등 철도 건설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자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대한제국은 1899년 9월 내장원에 서북철도국을 설치하고, 경의선 건설에 직접 나섰다. 서북철도국은 1902년 3월 서울-개성 사이의 철도 건설 공사에 착수하고, 그해 5월 8일 경의선 건설 기공식을 가졌다. 그러나 서북철도국도 자금 부족으로 경의선 건설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1899년 9월 내장원 서북철도국은 박기종 등이 설립한 대한국내철도용달회사에 경원선(서울-원산) 부설권을 허가하였다. 이때 프랑스와 독일이 부설권을 요구하였으나, 대한제국 정부는 이를 거절하였다.

호남선은 1896년 프랑스가 부설권을 요구하였으나, 한국정부는 이를 거절하였다. 1904년 6월 정부는 서오순, 이윤용 등이 설립한 호남철도주식회사에 강경-군산 철도와 공주-목포 철도 건설을 허가하였다. 호남철도주식회사는 주식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한국인의 주관 아래 공사를 추진하려고 노력하였다.

일제에 빼앗긴 철도부설권

일본은 청일전쟁을 계기로 하여 한국의 철도 부설권을 장악하기 위해 부심하였다. 전쟁이 일어난 1894년 8월 20일 한국 정부를 위협하여 조일잠정합동조관을 체결하고, 경인선과 경부선의 부설권을 장악하 였다.

그러나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청나라에 세력을 확장하는 것에 불안을 느낀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의 삼국이 간섭을 시작하고, 1895년 5월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4개 국이 일본이 한국의 철도 부설권을 독점한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일본은 초조해지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명성왕후 시해 사건을 일으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국왕 고종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아관파천)

동시에 나선 일본은 일본 정부와 자본가가 세운 경인철도인수조합을 앞세워 1898년 모스와 접촉하여 전체 건설 공정의 50%가 진행된 경인선 경인선 부설권을 한국 정부의 허락도 없이 구매하였다. 일본은 경인선 공사를 서둘러 1899년 9월 18일 인천-노량진 사이의 임시영업을 개시하였고, 1900년 6월 한강교량을 준공하 고, 그해 11월 서대문까지 선로를 연장하였다.

일본은 경부선 부설권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경부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하여 1898년 9월 8일 한국 정부와 경부철도합동 조약을 체결하였다. 경부철도주식회사는 1900년 8월 경부선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일본은 1905년 1월 영등포-부산 초량 사이 의 철도를 개통하였다.

일본은 경의선 부설와 관련하여 대한철도회사와 서북철도국의 관계 정립이 모호한 틈을 타서 대한철도회사에 차관을 제공한 것을 미끼로 하여 경의선 부설와 관련한 실질적인 권리를 손에 쥐었다.

러일전쟁을 앞둔 1904년 2월 6일 일본은 한국 정부와 상의 없이 경의선을 군용철도로 부설할 것을 결정하였다. 일본은 이해 2월 23일 한국정부에 한일의정서 체결을 강요하여 이를 기정사실화하였다. 일본은 러일전쟁 중에 경의선 부설 공사에 박차를 가하여 1905년 4월 용산-신의주 사이에 연락운전이 개시되고, 1906년 4월 3일부터는 용산-신의주 사이에 직통 운전이 실시되었다.

경원선도 처음 부설권을 획득한 대한국내철도용달회사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일본은 1903년 이 회사에 접근하여 경원철도차관 계약을 체결하여 실질적으로 부설권을 장악하였다. 그후 1904년 2월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경원선을 군용 철도로 사용하기 위해 건설에 나섰다. 러일전쟁이 일찍 끝나자 경원선 부설은 일시 중단되었다.

호남철도주식회사에 부설권이 허가된 호남선에 대해서도 일본은 군사상 중요한 호남선(서울-목포)을 개인에게 허가함은 부당하다고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어 부설권 허가를 취소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