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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양식이 떨어지다 (4화)

어사 박만정의 황해도 암행일기 4탄. 행자가 다 떨어진 박만정은 비상용 무명을 팔아 여비를 충당하고 평소 알고 지내던 용강부사에게 신세를 지기 위해 찾아간다.






1696년 3월 16일.
해주에서 기력을 회복한 박만정은 훨씬 가벼워진 몸으로 다시 길을 떠날 수 있었다. 그런데 몸이 좋아지니 이번에는 또다른 문제가 터졌다.
"나으리, 쌀이 다 떨어졌습니다. 당장 저녁 끼니도 잇기 힘들겠는데 어떻게 할깝쇼?"
가노(家奴) 계봉이 아뢰었다.
"드디어...? 할 수 없지. 이것을 가져다 식량으로 바꿔오너라."
박만정은 봇짐 속에서 무명을 꺼내 계봉에게 건네주었다.
기어이 예정됐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원래 암행어사에게 지급된 것이라고는 백미와 콩 각각 다섯 말, 건민어 세 마리, 건석어 세 두름, 그리고 무명 네 필과 돈 닷냥이 고작이었다. 애초부터 박만정과 수행원 여섯명을 먹여 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그래서 박만정은 황해도로 들어오기 전에 좀 돌아서 가더라도 굳이 경기도 장단(長湍)에 들렀었다. 사돈인 남필성 공이 장단의 부사(府使)로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박만정이 장단 관아에 들었을 때에는 마침 같은 날 함경도 암행어사로 임명된 이의창이 먼저 와 있었다. 이의창은 사돈 남필성 공의 생질로 그도 식량을 얻어갈 양으로 이곳에 들렀던 것이다. 한꺼번에 객이 둘이나 닥치니 꽤 곤란했을 터인데도 사돈 남필성 부사는 박만정에게 철릭([天翼], 무관공복의 하나. 당상관은 남색 당하관은 홍색)과 광다회(廣多繪, 군사의 융복에 쓰던 넓은 띠), 남초(南草, 담배), 연죽(煙竹, 담뱃대), 그리고 얼마의 행자까지 보태주었다. 미안한 일이었지만 박만정은 사양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 챙겼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훨씬 예전에 식량이 바닥났을 터였다.
그런데 이젠 그나마도 다 떨어져 쌀은 물론 돈 한 푼도 없는 신세다. 봇짐 속을 털어보니 무명 한 필치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가노 계봉에게 무명을 팔아 식량을 사오게 한 것인데 어찌된 일인지 계봉이 무명을 들고 도로 들어왔다.
"너무 싸서 못팔겠습니다, 나으리. 무명 한 필에 겨우 한 냥 팔 전을 주지 뭡니까요?"
"뭐라? 상등품인데도 무명값이 그것 밖에 안된단 말이냐?"
박만정은 안되겠다 싶어 자신이 직접 거래에 나서기로 했다. 한 냥이라고 해봐야 요즘 같은 흉년에는 겨우 쌀 여덟 되밖에 살 수 없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일행의 사정이 다급함을 알고는 더더욱 값을 싸게 불렀다.
"올해는 쌀이 귀해 한 냥이면 여덟 되 값인데 이것도 평상시와 비교하면 그 이문이 두 배는 되오. 이 정도도 만족할 텐데 어찌 이 좋은 무명을 고작 한 냥 팔 전밖에 안쳐준단 말이오?"
박만정이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팔기 싫으면 맘대로 하라며 가 버렸다.
하는 수 없이 박만정은 이 곳에서 무명을 파는 것을 포기하고 길을 떠났다. 쌀독에서 인심난다는 속담도 있듯이 요즘 같은 흉년에는 인심도 박하기만 했다.
그렇게 언짢은 마음으로 길을 가는데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승려들을 만났다. 박만정은 혹시나 싶어 말을 그들에게 무명을 사지 않겠느냐고 말을 걸어보았다. 그런데 마침 무명을 끊으러 가는 길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무명을 꺼내 보여주니 그들이 즉석에서 두 냥 닷 전을 내주었다. 덕분에 당분간 식량 걱정은 덜 수 있었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일이 수월하게 풀리자 박만정의 발길은 한결 가벼워졌다.

3월 19일.
박만정은 새벽에 출발하여 안악(安岳) 청파(靑坡)라는 마을에 도착해서 조반을 먹었다. 이 때 주인이 일행에게 청어를 구워 대접했는데 길 떠난 이래 처음 맛보는 별미였다. 하지만 또 다시 내일의 끼니를 걱정해야하는 형편인지라 박만정은 그 맛좋은 청어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는 채 먹고 있었다.
"나으리, 이제 쌀 대여섯 되와 대미 두서너 되 정도가 남았습니다요. 오늘 저녁은 근근히 버틸 수 있겠습니다만 이 상태라면 아마도 내일부터는 우리 일행 모두가 굶어야 할 형편입니다요."
좀 전에 가노 계봉이 이렇게 아?던 것이다.



박만정도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의 애초 계획은 추생지가 아닌 봉산(鳳山)으로 가서 관아에 사람을 보내 양식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박만정이 도중에 몸이 아파 시간을 허비한데다 생각보다 길이 험해 많이 나아가지를 못하였기 때문에 계획이 틀어지고 말았다. 앞으로 이틀밤낮을 꼬박 가야 봉산에 도착하니 이러다가는 도착하기도 전에 굶어죽게 생겼다. 그렇다고 안악 관아에 들어가 양식을 달라고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안악 수령을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안악은 추생지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박만정은 서리 김성익을 불러 들여 해결방도를 모색했다.
"음... 이 곳에서 서쪽으로 사오십리 쯤 가면 치애(齒崖, 또는 적포)라는 나루터가 있습니다. 이 나루를 건너면 평안도 땅으로 삼화, 용강으로 이어집니다. 혹시 아는 수령이 있으시다면 거기 가서 약간의 노자를 얻을 수 있겠습니다만.."
김성익이 말했다. 박만정이 무릎을 치며 반가워했다.
"옳지. 용강 현령(縣令 : 현에 두었던 지방장관. 우리 나라에서는 신라 때 대소의 구별없이 현령이라 하여 201명을 두었는데 구려 때에는 이를 구별하여 대현에만 영을 두고 소현에는 감무를 두었다. 이조 때는 고려의 제도를 참작해서 소현에는 현감을 두는 한편 대현에는 현령을 두었는데 품계는 종육품으로 정원은 26명이었다.) 유구징을 만나 양식을 얻으면 되겠구나. 그 사람은 내 어려서부터 절친한 친구라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야."

박만정 일행은 당장 치애 나루터로 달려갔다. 그런데 가다가 그만 길을 잃어 한참을 헤매는 바람에 저녁이 다 돼서야 나루터에 도착하고 말았다.
박만정은 우선 방을 구해 저녁을 지어먹고 나서 나룻배 사공을 불러 물었다.
"갈 길이 급해서 오늘 중으로 꼭 나루를 건너야 한다네. 배 좀 빌려 줄 수 없겠나?"
그러자 사공이 말했다.
"밀물이 들어오고 있어서 당장은 안되겠습니다. 물이 물러간 뒤에는 배를 저을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밥을 먹지 못한지 벌써 이틀이 지나 기력이 쇠하여 노를 저을 힘이 없습니다. 남은 밥이라도 있으시면 한 술 보태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실 수 없으시면 저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박만정이 보아하니 정말 사공이라는 작자가 피골이 상접해 있어 힘을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사정을 들어보니 자네 처지도 매우 딱하군 그래. 그러나 우리에게도 쌀이라곤 한 홉도 없으니 어쩌면 좋은가? 가진 거라곤 이것뿐이네."
박만정은 행랑에서 약과 몇 개와 담배 한 움큼을 꺼내 뱃사공에게 주었다. 뱃사공은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박만정이 따뜻하고 인정어린 말로 알아듣도록 이야기를 하자 비로소 마음이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알았습니다. 제가 힘껏 배를 몰겠습니다."
"그럼 몇 시쯤 배를 띄우겠나?"
"아마 이경(二更; 밤 9시부터 11시) 쯤이면 되겠습니다."
"그럼 그 시각까지 기다리겠네. 놓치지 않도록 꼭 제 시각에 오게나."

사공을 돌려보내고 박만정은 그동안 서리 김성익에게 안악 수령에 대해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박만정 자신도 유숙하고 있던 집주인과 한담을 나누며 안악 수령에 대해 조사를 했다. 그런데 안악군수 이익주에 대한 평가는 자못 놀라웠다.
해산물은 一년에 딱 한 번만 걷게 하여 백성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았고, 역참(驛站)에 번(番)드는 인부나 말도 꼭 품삯을 주고 썼는데 그 돈을 관에서 마련해 백성들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신경썼다. 종자가 없는 사람들에게 종자를 나누어 줄 때도 결수나 호구에 준하여 균등하고 공평하게 시행하는 등 여러 모로 모범을 보이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전세로 받을 소미(小米) 488섬을 모두 관에서 마련했다고 했다. 백성들이 헐벗고 굶주린 이런 시기에 세금을 수탈할 수 없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서리 김성익이 돌아와 보고들은 것을 전하니 그의 이야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백성들은 물론 아전들도 모두 편안해하며 안악 수령 이익주를 칭송하고 있었다.




드디어 이경 무렵 뱃사공이 오더니 이제 배를 띄울 수 있다고 아뢰었다.
달빛이 교교하여 야색이 창망한 밤이었다. 양쪽 벼랑은 암벽을 깍아세운 듯 장엄하고 그 속으로 보이는 푸른 바다는 광활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박만정은 일행과 함께 배에 올라탔다. 물길은 다소 험한 편이었다. 앞으로 나아가면 갈수록 파도가 세차게 일어 뱃전을 쳤다. 사람들이 공포에 떨며 한 곳으로 몰리자 박만정은 그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시 한 수를 읊었다.
"내 평생을 충신에 의지하였더니 오늘은 풍파에 몸을 맡기노라..."
그러자 뱃사공은 내가 문자를 아는 양반임을 알고 물었다.
"어디로 누구를 만나러 가시는 길이옵니까?"
"용강 태수를 만나러 용강 읍내로 가는 길이네."
그러자 맞은 편에서 노를 젓던 총각 사공이 말했다.
"그렇다면 낭패로군요. 용강 태수님께선 지금 외지에 가 계신다고 하던데요?"
눈을 지그시 감고 풍경을 음미하고 있던 박만정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저는 용강에 사는 사공이온데 마을 사람들이 어제 읍내에 다녀와서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정을 자세히 알지요."
서리 김성익이 박만정을 돌아다보며 말했다.
"정말 큰 낭패입니다. 지금이라도 배를 돌려 빨리 봉산으로 가는 것이 낫겠습니다."
박만정은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는 치애 나루터가 보이지 않았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이 건너온 것이다. 박만정은 다시 김성익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처럼 험한 바다를 벌써 반 이상이나 건넜으니 되돌아가려도 사공들이 말을 듣지 않을 거네. 예정대로 용강에 갔다가 만약 태수가 없으면 관아의 아졸과 내통해 보세. 그래도 안되면 자네를 평양 판관(判官 : 이조 때 감영 유수영 및 큰 고을에 둔 벼슬. 종오품.)에게 보내겠네. 평양 판관 유이복은 나와 죽마고우이니 행자를 보태줄 것일세."
그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윽고 부둣가에 도착했다. 그런데 길이라곤 모두 발이 빠지는 진흙뻘이었다. 박만정은 가노 계봉의 등에 엎혀 간신히 기슭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서리 김성익은 그를 업은 녀석이 실족하여 자빠지는 바람에 두 사람 모두 뻘에 빠져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바람에 되는 일이 없어 잔뜩 꼬여있던 박만정의 마음이 잠시나마 풀렸다.
고단하고 허기진 몸으로 겨우 아무 집이나 비집고 들어가니 멀리서 새벽닭이 울기 시작했다.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박만정 일행은 다시 길을 재촉해 드디어 용강 읍내에 도착했다.
아침도 못먹고 내내 걸어왔지만 그들은 이번에도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탐문해보니 어제 사공이 말한 대로 용강 태수는 추관(推官 : 의금부의 특지에 의하여 중죄인을 신문하는 관원.)으로 평양에 가서 내일 아침에나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침 태수의 조카 유하윤이 관아에 머물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천만다행이었다. 박만정은 유하윤과도 일면식이 있었던 것이다.
"아니, 어르신께서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유하윤이 소식을 듣고 바로 박만정을 찾아왔다. 유하윤은 박만정을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얼마 전 유문학이 암행차 평양에 도착했는데 박만정도 이 곳에 오게 되니 혹시 암행어사가 아닌가 하고 떠보는 것이었다.
"하하.. 나는 벼슬이 없은 지 오랜 몸이니 어찌 공무를 띨 일이 있겠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사사로운 여행이니 조금도 의심하지 말게."
박만정은 그렇게 둘러대며 말을 이었다.
"실은 내가 지금 행자가 다 떨어져 일행이 아직껏 아침도 먹지 못했다네. 먹을 것이 있으면 속히 좀 보내 주면 고맙겠네."
그러자 유하윤은 즉시 종을 불러 다담상(茶啖床, 손님 대접으로 차려 내놓는 교자상)을 내오게 했다. 그리고 양식과 반찬 등 필요한 것들을 모두 챙겨주었다.
박만정은 그제서야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지난 며칠은 암행어사가 아니었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배고픔과 난관의 기나긴 터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