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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은 명미한데 인촌은 피폐하여 (8)

어사 박만정의 황해도 암행일기 8탄. 박만정은 기근으로 먹지 못해 아이처럼 울거나 송장처럼 누워있는 어른들을 보며 참담한 심정이 된다.






1696년 3월 29일 박만정이 신천군 동쪽 어을아항방 장천촌에 이르렀을 때였다.
밭 가운데서 한 남자가 주저앉아 목놓아 울고 있었다. 박만정이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여기서 왜 그러고 있소?”
“배가 고파서..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아서...”
남자는 말도 맺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어린 아이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 그것도 행색을 보아하니 걸인은 아닌 것이 분명한데 너무 배가 고파 울고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기민(饑民) 구호대상자에게 지급되는 곡식이 있을텐데 못받았단 말이오?”
기근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해 나라에서는 세금을 탕감해주고 진곡(賑穀 *진휼하는데 쓰이는 곡식)을 나눠주도록 구휼책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고을에서는 수령이 백성들을 구휼하는데 소흘하거나 진곡을 착복하는 경우가 있어 박만정은 지금 그것을 의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런 문제는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받을 수가 있어야지요. 제가 이 곳에 호적이 없다고 진제대상인 명부(賑濟對象人名簿; 요구호대상자 명부)에 이름을 올려주지 않습디다. 저는 본래 한양에서 놋그릇을 만들며 사는 유기장인입니다. 하지만 이런 지독한 흉년에 기술이 있어봤자 뭐합니까? 그대로 있다간 송장 치르게 생겼기에 아는 사람을 찾아 재령까지 온 것이지요.”
“그래 아는 사람은 만났소?”
“만났기는 한데.. 그 집도 관에서 주는 것 외에는 달리 먹을 게 없는 형편이더라구요. 염치불구하고 머물면서 여태 걸식을 하며 연명했는데 그 사람도 형편이 좀 나은 친척을 찾아 떠나려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저도 떠돌게 됐습니다. 저도 다른 아는 사람을 찾아 신천으로 가는 중인데 이틀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해 더 이상 걸을 기운조차 없어 이러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남자의 얼굴은 하도 못먹어서 잔뜩 부어있었고 손은 흙투성이였다.
“손은 왜 그 모양이오?”
“썩은 감자라도 한 톨 건질까 하고 땅을 파봤는데...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러면서 남자는 다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박만정은 그 후로도 곳곳에서 어린 아이들과 거지들이 굶주려 헤매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으니 차마 보기 어려운 광경도 수없이 많았다.

1696년 4월 3일 신계(新溪)에서 만난 일가(一家)의 처지도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점심 때쯤 신계(新溪) 읍내를 떠난 박만정은 궁벽하기 이를 데 없는 골짜기를 지나게 되었다. 몇 리를 가도록 인가가 보이지 않는 산골이었다. 날은 저물어 가는데 유숙할 곳을 찾지 못해 걱정을 하면서 고개를 넘으니 드디어 마을이 나타났다. 초가 너댓집이 옹색하게 처마를 맞대고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박만정은 그 가운데서 제일 넓직한 집을 찾아 주인에게 쉬어갈 뜻을 전했다. 그러자 주인이 고개를 내밀어 대답하는데 그 소리가 겨우 목구멍을 넘어오는 소리였다.
“남자라곤 모두들 병들어 누워 있고 여자라곤 오직 한 사람 뿐인데 어찌 그 많은 사람을 맞아 들일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깊은 산골에서 이처럼 날이 저물어 갈 곳이 없습니다. 여기서 맞기를 꺼리시면 다른 곳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거절하지 마시고 헛간이라도 있으면 빌려 주십시오.”
“손님들의 행색을 보니 양반이신 것 같은데 이 곳엔 사나운 짐승이 많아 혹 화라도 입으실까 걱정입니다. 불편하시겠지만 이 방에 들어와 함께 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에 박만정이 안으로 들어가니 주인이 힘겨운 동작으로 일어나 잠자리를 마련해주었다. 방에는 한 가운데에 누에틀이 놓여 있어 몹시 비좁았다.
박만정이 물었다.
“보아하니 튼튼치는 않은 모양인데 무슨 병을 앓고 계십니까?”
“별로 이렇다할 아픈 곳은 없으나 나날이 수척해 갑니다. 때로는 두통이 일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양식이 떨어져 당장 먹을 것이 걱정입니다. 염치는 없습니다만... 행자로 지닌 것 중에 여분이 있어 이 위급을 구제해 주시면 백골난망이겠습니다.”
박만정은 내심 당황스러웠다. 길손이 집주인에게 먹을 것을 청하는 경우는 있어도 집주인이 길손에게 먹을 것을 청하는 경우는 못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의 태도에서 농담하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정은 딱하오만 우리도 역시 피폐하여 곳곳에 아는 사람을 찾아 걸식을 하는 중입니다. 내일 아침거리를 제하고는 한 됫박의 쌀도 없어 장차 거리에서 굶어 죽게 생겼으니 이런 형편에 어찌 남을 구제하겠습니까?”
그러면서 박만정은 행낭에서 석어(石魚, 일명 조기) 세 마리를 꺼내 주인에게 주었다. 주인은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주인은 쌀 됫박이나 얻었으면 하는 말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주인은 문득 어느 쪽으로 행차하느냐고 물었다.
“성천, 양덕으로 갑니다. 그 곳 고을 관장과 일찍이 안면이 있어 궁색함이나 면하려고 합니다.”
박만정이 그렇게 대답하자 주인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평양으로 해서 들어가려면 많은 날짜를 허비합니다. 이 길이 훨씬 빠르지요. 돌아오실 때 이 길로 해서 다시 저희집에 들르시면 이보다 더 흔쾌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돌아올 때는 지금보다 형편이 좀 나을 것 같으니 꼭 들러서 보태주고 가라는 뜻이었다. 박만정은 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았다. 주인의 염치없이 계속 바라는 눈치에 마음이 좋지 않은 박만정은 신계 수령에 대한 이야기로 슬쩍 화제를 돌렸다.
그러나 여북하면 그랬을까.
박만정이 한참을 주인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어떤 젊은이가 들어왔다. 그러자 주인이 물었다.
“얻어 왔느냐?”
“못 얻어 왔습니다.”
“못 얻어 왔다구?”
“쌀 한됫박 돈 한푼 빌지 못했습니다.”
“어이쿠 그럼 내일이면 굶어 죽겠구나.”
그러더니 주인은 송장 쓰러지듯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서 신음소리를 삼키고 있었다. 그는 주인의 아들인 모양인데 아마 읍내에 나갔다가 양곡을 빌어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제야 상황의 절박함을 알게 된 박만정은 주인의 행동을 이해할 것 같았다.
내일 당장 굶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면 눈치고 염치고 따질 것이 있겠는가.
그것은 겪어보지 않은 자는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음날 새벽 박만정이 다시 길을 떠날 때도 주인장은 송장처럼 누워 한숨만 쉬었다.
아침 햇살에 서서히 드러나는 산골의 아침은 오늘도 어김없이 평화롭고 눈부셨다.
박만정은 말에 오르며 조용히 탄식했다.
“산촌은 명미한데 인촌은 왜 이다지도 피폐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