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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는 하늘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9)

어사 박만정의 황해도 암행일기 9탄. 박만정은 백성들은 굶어죽는데 자기 뱃속만 차린 신계 수령과 간악한 상인들의 비리를 적발하고 관아에 출두해 처벌한다.





1696년 4월 4일, 암행어사 박만정과 서리 김성익(金成翼)은 곡산(谷山)의 최평리(崔坪里)라는 마을에 이르렀다.
날이 저물어 어느 허름한 집에서 하룻밤을 청하니 노인 부부가 마지못해 골방 하나를 내주었다.
"어디 딴 데를 알아볼까요?"
김성익이 방 꼬락서니에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찬밥 더운밥 가릴 때인가?"
박만정은 너무도 피곤한 탓에 그냥 벌렁 드러누웠다. 그리고 금새 코를 골았다.
해 뜨기 전에 일어나 끝없이 걷고 걷다가 해 지면 곯아떨어지기 바쁜 이 고단한 여정도 어느새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몸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진동을 하고 팔 다리 어깨, 안 쑤시는 곳이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가끔 제 나이 지천명(知天命)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생에 다시없을 마지막 나그네길이 아닌가 하여 소중하게 여겨온 터였다.
한 30분 잤을까? 박만정은 별안간 짜증을 내며 벌떡 일어났다.
"웬 놈의 모기떼가 이리 극성이냐!"
온 몸이 가려워 벅벅 긁다 못해 박차고 일어난 것이다.
헌데 옆을 보니 서리 김성익 역시 언제 일어났는지 웃통을 벗어제치고 양 팔 손톱을 곤두세운 채 사타구니며 등짝이며 종횡무진 긁고 있었다.
"모기가 아니라 갈충(蝎蟲)입니다."
김성익이 이를 악 물고 신음하듯 겨우 말했다. 가래나무 잎을 먹는 고약한 벌레가 온 방안에 서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촛불을 켜고 보니 옷이며 이불마다 온통 벌레들의 난장판이었다. 두 사람은 방문을 열고 옷과 이불을 마구 털어 냈다. 그래도 벌레들은 여전히 발발발 기어다녔다.
"에이, 그냥 잘란다."
박만정은 다시 옷을 껴입고 꿍, 하고 드러누웠다.

다음 날 두 사람은 잠 설친 티가 역력한 얼굴로 다시 길을 떠났다. 밤새 갈충에 시달리고 새벽같이 떠나온 터라 아침도 거른 상태였다.
두 사람이 곡산(谷山)의 돌거문(乭去文)이란 마을에 도착하니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일하러 나가고 없었다. 그나마 집에 사람이 있어도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서둘러 어디론가 가버렸다.
"허어, 이러다 또 굶겠다."
박만정이 혀를 찼다.
나그네가 끼니를 거르는 것만큼 서러운 일이 또 있으랴. 두 사람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 밥 얻을 집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밥 차려줄 인심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래도 지성에 감천이라 다행히 어느 한 집에서 아침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일행은 어제 물린 자국을 한 손으로 연신 긁어대며 수저를 놀렸다. 밥상을 물린 뒤에도 두 사람은 몸을 벅벅 긁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모두 벗어 던졌다. 벌거벗은 박만정이 이불을 두르고 앉아있는 사이, 김성익이 토방에 내려앉아 한참 동안 옷을 털어 냈다.
오후가 되어 일행이 마을로 나가 보았더니 멀쩡하던 거물원(去勿院;공영 숙식시설의 일종)이 불에 타 잿더미로 변해있었다.
"어찌 된 일이오?"
김성익이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다.
"어제 집주인에게 구걸을 청했다가 거절당하자 거지 놈이 앙심을 품고 불을 지른 모양입니다."
"허어, 이런 고약한 일이 다 있나."
때마침 원사(院舍) 부근에 장이 서는 바람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있었다.
"여기 계속 있다간 낭패 보겠습니다."
김성익이 다가와 나직이 말했다.
하긴 두 사람의 몰골이 영락없는 거지꼴이기도 했다. 일행은 슬그머니 군중을 벗어나 도망치듯 마을을 벗어났다.
거지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거리 곳곳에 유리걸식하는 자들이 유난히 눈에 자주 띄었다. 남녀와 노소가 무리 지어 등에 업히고 팔에 안겨 길을 가는 꼴이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
"실상이 저러할진대 개인의 염치며 인간의 도리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박만정이 거지 무리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지었다.
"아닌게 아니라 밥짓는 연기 구경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김성익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필이면 이런 흉년을 맞아 암행어사의 수행원이 되었나 싶기도 했다. 암행어사 당사자도 박복(薄福)이지만 서리 역시 억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신계(新溪) 고을로 가려면 고도산(高道山)이란 마을을 거쳐야 했다. 일행은 그 마을에 이르러 말죽을 먹이고 점심도 해결할 겸 여장을 잠시 풀었다.
"보아하니 여기서도 오래 머물 수는 없겠다."
박만정이 주막집 주변에 널려있는 걸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바위며 나무 등걸에 쪼그리고 앉은 남녀노소 걸인들이 어림잡아 스물은 넘을 듯했다.
"밥이 넘어갈는지, 원."
아니나 다를까, 주모가 밥상을 내오자마자 걸인들이 둥글게 모여들어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주모는 익숙한 풍경인지 아무 표정이 없었다.
"배가 고파 죽겠습니다요. 조금만 나눠주십시오."
울며불며 사정을 하는데 과연 밥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박만정은 어느새 눈시울이 벌겋게 되어 밥그릇을 그들에게 내밀었다. 김성익도 제 밥그릇을 걸인들에게 내주었다. 그러자 밥그릇 두 개를 놓고 아귀다툼이 벌어졌다.
"참으로 하늘이 원망스럽구나."
박만정이 중얼거렸다. 그때 옆에 와 섰던 주모가 불쑥 끼여들었다.
"하늘이 뭔 죄가 있어요? 하늘이 거지를 만들었답디까? 사람이 거지를 만들었지."
"사람이 거지를 만들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아무리 변복(變服) 상관이지만 주모와 독대(獨對)하게 놔두기가 민망한지 서리 김성익이 대신 말을 받았다.
"낟알 몇 톨인지 뻔한 흉년에 환곡미나 내주지는 못할망정 뱃가죽이 등가죽인 사람들한테 뭘 더 뜯어먹겠다는 건지, 원."
이렇게 투덜거리며 주모는 정주간으로 들어가 버렸다. 말하는 품을 보니 자기 말이 관아 사람 귀에 들어간대도 무서울 거 하나 없다는 투였다.
"이곳이 신계(新溪) 관할인가?"
박만정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예. 현령 심능(沈 )이 다스리고 있습니다."
김성익이 대답했다.
"자네, 피곤하겠지만 일을 좀 해야겠네."
박만정이 김성익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명령만 내리십시오."
"지금 곧장 신계 읍내로 들어가게. 그리고 고을 사정을 좀더 소상히 파악하게. 소평(所坪;신계 관할 역참)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새벽에 내가 갈 테니 그리 알게. 역졸 넷을 차출하는 것도 잊지 말고. "
"알겠습니다."
김성익의 눈이 빛났다.
객사로 얌전히 들어가 문서를 읽는 따위의 행차가 아니라, 거두절미하고 관아로 쳐들어가겠다는 뜻이었다.
김성익이 떠나자 박만정은 잠시 눈을 붙일 양 봉놋방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새벽, 소평 역참의 구석진 객방(客房)에서 박만정과 김성익이 다시 만났다.
"그런 자가 수령이라니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김성익이 다짜고짜 신계 현령을 욕하기 시작했다.
"그자가 할 줄 아는 일이라곤 제 잇속 채우는 것밖에 없습니다."
"좀더 자세히 말해보게."
"신계 현에 배속된 금위영 보인(禁衛營 保人 : 군에 직접 복무하지 않는 병역 의무자로서 역(役)에 종사하는 사람의 가사를 돌봐준다.)이 233명입니다. 헌데 이미 오래 전에 조정에서 군포(軍布 : 군적에 있는 사람이 복역하는 대신 바치던 삼베와 무명)를 감납(減納)하도록 지시를 내렸지요."
"그렇지. 1인당 돈 1량 1전 3푼 5리로 정해져 있지."
"헌데 여기서는 1량 1전 4푼을 더 받아 여분이 무려 73량이나 됩니다."
"제멋대로군."
"또 있습니다. 순영에 납부하는 창병목(槍兵木 : 창자루로 사용되는 나무), 궁삭목(弓 木 : 활을 만드는 나무), 고좌목 등 총 250여 항목에 달하는 물종의 대가가 좁쌀 20섬씩으로 봄, 가을에 두 번에 걸쳐 40섬을 지급하도록 되어있는데 이것을 민결에서 70여 섬이나 충당했습니다."
"이런 흉년에 30여 섬을 더 많이 징수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 외에도 관곡을 사사로이 남용한 혐의가 한둘이 아닙니다. 아마 문서를 보시면 틀림없이 드러날 것입니다."
"수고했네."
"그리고 마을 사람들 입에서 백봉운이란 자와 조중란이라는 자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었습
니다."
"그들은 또 누군가?"



"백봉운은 송도의 상인인데 사사로이 관아에 드나들며 수작을 부린 모양이고 조중란은 그저 간교한 상한(常漢;상놈)일 뿐인데 감히 진휼감관(賑恤監官 : 진휼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는 관리)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음, 대충 짐작이 가는군."
박만정이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더니,
"역졸들에게 채비를 시키게."
하고 말했다.
그런 뒤 박만정은 짐 보따리를 풀어 새 옷을 꺼냈다. 이제까지 입고 있던 꼴사나운 상복(常服)과 거기 달라붙은 갈충까지 함께 벗어 던지고 관복으로 입으니 사람이 바뀌었다.

박만정 일행이 읍내 거리로 나섰을 때는 이미 날이 밝아올 무렵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바람 쌩쌩 불도록 걸어가는 박만정 무리들을 보며 행인들이 분주히 길을 비켰다.
신계 관아가 눈에 들어오자 역졸 넷이 벼락같이 소리쳤다.
"암행어사 출도요!"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흩어지고, 넘어지고, 굴러다니는 꼴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아전들은 관아 구석구석으로 쏜살같이 숨어들고, 동헌(東軒)에 나와 있던 현령 심능은 선 채로 창백하게 얼어붙었다.
대체로 수령의 비리는 본인의 얼굴에 거의 다 드러나는 법이다. 청렴한 자가 어사를 두려워할 까닭이 없고 부패한 자가 떳떳할 리 없다.
박만정은 수령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하며 동헌으로 들었다.
"관아의 문서를 모조리 가져 오라."
문서 어느 곳에도 불법 아닌 것이 없을 지경이었다. 건수(件數)가 한 두 장에 그치지 않았다.
"백봉운이란 자와 조중란이란 자를 불러 오라."
박만정의 불호령이 계속 이어졌다.
이방과 서리들이 넋을 잃은 표정으로 뛰어다녔다.
곧이어 턱살이 투실투실한 백봉운과 뱀눈을 가진 조중란이 들어와 넙죽 엎드렸다.
"바른 대로 말하지 않으면……."
하고 말을 멈추니 그 효과가 더욱 커서 두 사람은 강아지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네놈은 사사로이 관아에 드나들며 무슨 짓을 했느냐!"
박만정이 먼저 백봉운에게 물었다.
"과, 관곡을 내다 팔았습니다."
기가 질린 듯 백봉운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수령이 관곡을 내주더냐!"
"내년에 쓸 꿀 값을 그, 금년 정월에 미리 준다며 쌀과 콩 40섬을 내주었습니다."
"그걸 팔아 무엇에 썼느냐."
"명주나 돈을 바꿔 상당 부분을 수령에게 바쳤습니다."
"네 놈이 진휼감관이라 했느냐, 네가 저지른 죄도 이와 같은가?"
"그, 그렇습니다요, 사또."
조중란이 더욱 엎어지며 대답했다.
신계 수령의 비리는 계속 나왔다. 색리 배인선으로 하여금 크고 작은 민가를 막론하고 잡탈(雜 ;자잘한 잘못)을 면제해 준다는 대가로 한 집 당 속 5되씩을 받아 챙겼고, 양안(量案 : 논밭의 소재(所在)·자호(字號)·등급·면적·사표(四標)·소유주 등을 기록한 책. 오늘날의 토지 대장과 같은 것.)에 올리지 않은 토지를 멋대로 경작하여 이익을 챙기기도 하였다.
박만정은 참담한 심정을 참아가며 창고를 봉하고 수령의 인신과 병부를 거둔 뒤 관례에 따라 겸관(兼官;비상시, 혹은 어느 고을의 수령이 권한을 잃었을 때 그 고을의 일을 맡아보게 되는 인근의 수령)에게 보냈다.
"기민(饑民;굶주린 백성)은 하늘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다고 들었소. 이것은 당신 고을의 백성으로부터 들은 말이니 곧 이 고을 걸인들은 모두 수령의 잘못으로 그리 된 것이오. 관아를 벗어나 열 발짝만 걸어도 그 참상을 목도할 수 있소. 당신이 관아 내에서만 돌아다녔을 리는 없을 터, 그렇다면 굶고 병든 가엾은 백성들을 수없이 보았을 텐데 가슴에 손을 얹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면 그대는 필시 사람이 아니오."
박만정은 수령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끝냈다.
동헌을 나와 객사로 걸어갈 때까지 수령과 아전들은 땅에 붙인 이마를 차마 떼지 못했다. 박만정 역시 구태여 돌아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