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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 꿀, 그리고 면화 (10)

어사 박만정의 황해도 암행일기 10탄. 박만정은 곡산 백성들이 무리한 공납으로 고통받는 광경을 목격하고 관아에 출두한다.





1696년 4월 7일. 박만정이 황해도 암행어사로 임명되어 암행길을 떠난 지 꼭 한 달이 됐다.
이제는 추생지를 한번씩 다 돌아보고 1차 조사는 얼추 마친 상태로, 드디어 엊그제 신계에서는 처음으로 출도를 한 바 있었다.
그 다음 행선지는 바로 이 곳 곡산이었다.
박만정은 새벽에 신계 관아에서 출발하여 신계 정봉리에 이르러 조반을 먹고 한나절쯤에 곡산에 들어섰다. 그리고는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은밀히 곡산 읍내로 들어갔다. 그 이유는 곡산부사 최박에 대한 원성이 높아 그 비방의 진위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박만정은 사흘 전에 곡산에 들어온 바 있었다.
그 당시 들른 곳은 곡산 흑암이라는 마을로 박만정은 그 곳에서 말먹이를 주며 상황을 살폈다. 마침 노인들이 마루 위에 앉아 장기를 두고 있는 것을 보고 박만정이 염탐하기 위해 다가갔다. 그런데 그들은 박만정이 다가오는 것을 보더니 모두들 뿔뿔이 흩어져 몸을 숨겼다.
주인도 장기판을 걷고 일어나는 것을 보고 박만정이 물었다.
"그렇게 장기를 두고 있다가 나그네가 온다 해서 갑자기 걷어치우는 것은 무슨 연유입니까?"
"마침 판도 끝났고 저녁 때도 됐고 해서 접은 것이지 별다른 연유가 있겠습니까?"
주인은 그렇게 말했지만 박만정은 곧이 들리지가 않았다. 그래서 박만정은 주인에게 하룻밤 묵어갈 것을 청하며 이것저것 은근히 물었다.
"곡산 부사 최박 나으리 말씀입니까? 원체 벼슬한 지 오래된 분이시니 그 관록이 어디 가겠습니까? 뭐 부지런하시고, 나름대로 백성들 살펴주시고, 뭐 그렇지요."
참으로 이상한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았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속은 다른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대답이 어째 그렇습니까? 좀..."
그러자 주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사정이 있어서요. 잠시 볼 일 좀 보고 와야겠습니다."
그러면서 밖으로 나간 주인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애초부터 박만정의 행색을 보고 의심을 품고는 말하기를 꺼리는 것이 분명했다. 주인장의 태도를 보아하니 그대로 있다가는 박만정의 신분이 노출될 염려가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박만정은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곡산을 떠났다. 한 발 앞서 떠난 서리 김성익이 제대로 정보를 수집했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서리 김성익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과연 곡산부사 최박에 대한 소문이 좋지 않았다.
"문제는 꿩이었습니다."
김서리가 그렇게 운을 뗐다.
"꿩이라?"
"네. 곡산부 관아의 남쪽 다섯 마을에 꿩을 바치게 하는 공역을 부과하여 그것을 관용 수요에 충당한 것입니다. 진봉조(進封條; 물건을 싸서 진상함)로 의당 바쳐야 하는 것이 있는데 지난 겨울에는 그 외에도 다시 또 세 가구당 한 마리씩을 바치게 해서 원망을 듣고 있습니다."
이 때 말에게 먹이를 주고있던 역졸 갑룡이 끼어들었다.
"꿀이 아니고 꿩이라굽쇼? 이상하네."
"이상하다니 무엇이 말이냐?"
역졸 갑룡은 장터에서 만난 사람들한테 들은 이야기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제는 꿀이었습니다. 예전부터 내려오는 예규라 하면서 관아에서는 올해도 토지 8결당 꿀 8되씩을 걷어들였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각 방 각 리의 꿀통 수효를 빠짐없이 적어놓고 백청 세 되와 황청(黃淸; 빛깔이 누르고 품질이 좋은 꿀) 두 되씩을 더 걷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불만들이 많더라구요. 이런 흉년에는 의당 정상을 참작해 백성의 곤궁함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어야 하겠거늘 예로부터 내려오는 예규라 하여 그대로 걷어들인다고 말입니다."
한 사람은 꿩을 또 한 사람은 꿀을 들었지만 모두 무리한 공납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다.
박만정이 곡산에 은밀히 잠입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다음날인 4월 8일 새벽 곡산 관아.
"암행어사 출도야!"
역졸 갑룡이 곡산 관아의 문을 마패를 두드리며 어사 출도를 외쳤다.
박만정은 뒤따라 들어와 관아 문서를 모조리 가져오게 하고 객사로 들어가 일일이 살펴보았다.
그런데 문서를 조사해보니 백성들의 높은 원성의 비해 큰 하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박만정이 유숙했던 집의 주인장 말처럼 곡산 부사 최 박은 성실하고 관록있는 정치를 펴고 있었다.
지난 가을 사대동미(私大同米)1)를 거둬들일 때도 백성들의 곤궁함을 걱정하여 의당 받아들이는 쌀 2말과 콩2말씩의 양식가를 매 8결에 대해 모두 줄여주고는 그것을 관아에서 변통 사용했다. 올 봄 기민(饑民)을 진휼하고 구하는 데에도 태만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서리와 역졸을 통해 들은 문제는 사실이었는데 면화에 대한 공납도 비슷한 폐단이 있었다. 곡산은 협소한 고을로 원래 면화가 산출되지 않는 곳이다. 오직 북면의 온사음방에서만 약간 산출되고 있는데 문서를 조사해보니 1300근에 달하는 많은 양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이에 박만정은 곡산부사 최박에게 공납 문제를 질책하고 당장 폐단을 시정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최박에게 파직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몇 가지 문제는 있지만 최박에게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지 않으니 한번 더 기회를 주기로 한 것이다.
그 날 하루 지옥과 천당을 오고 간 곡산 부사 최박은 거듭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났다.
그 날 밤 박만정은 객사에 머무르며 쉬었다.

1) 사대동미(私大同米) : 국가(國家)에서 시행(施行)하는 대동법(大同法)이 아니고 각 고을에서 임의(任意)로 시행하는 대동법(大同法)에 의해 거둬들이는 쌀. 대동법(大同法)은 현물(現物)로 바치든 공물(貢物)을 미곡(米穀)으로 환산하여 전세(田稅)와 같이 일정량(一定量)을 거둬들이던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