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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나그네의 보답 (11)

1696년(숙종22) 황해도 암행어사 박만정(朴萬鼎)

어사 박만정이 강령현에서 송화현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 송화현의 가난한 주민들에게 신세를 진 박만정은 관아의 비리를 적발한 뒤 은혜에 보답한다.





숙종 22년의 해서(海西 ; 황해도)지방.
정초부터 송화, 장연 고을에 큰 천둥이 내리쳐 극심한 흉년을 예고하더니 과연 굶주린 백성들이 줄줄이 거리에 나앉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돌림병과 물난리, 산불까지 겹쳐 하루에도 수십의 백성이 목숨을 잃었다. 멀리 충청도 지방에서는 지진까지 발생하니 팔도의 백성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었다.
이러한 때에 암행어사 박만정(朴萬鼎)이 해서(황해도) 지방으로 떠나온 지 어느새 보름이 지나고 있었다.

박만정은 강령현(康翎縣) 객사에서 일어나 다음 행선지인 옹진현(壅津縣)을 향해 길을 떠났다. 아직 날이 밝기 전이었다.
가다보니 길이 바닷가로 나 있어 박만정은 생각 없이 개펄로 들어섰다. 줄곧 한성의 사대문 안에서만 지내온 양반이 서해의 개펄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턱이 없었다. 대여섯 걸음을 걷기도 전에 그는 무릎까지 차 오른 진흙에 발이 묶이고 말았다.
"이런 변이 있나."
박만정은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왼발을 빼려니 오른 발이 쑤욱 들어가고, 다시 오른 발을 빼려니 왼발이 꼼짝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대로 물이 들어온다면 고스란히 물귀신이 될 판이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날이 밝기 전이라 눈에 띄는 이 하나 없다. 개펄은 어느새 허벅지까지 야금야금 먹어 들어왔다. 옴짬달싹할 수 없는 이 위기의 상황은 날이 밝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때였다.
"여보시오! 거기서 뭘 하시오! 어서 동쪽으로 빠져 나오시오! 서쪽으로 가면 죽습니다!"
언덕 위에서 누군가 다급하게 외치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박만정은 사력을 다해 동쪽으로 움직여보았다. 다행히 발 디딜 곳이 생겨났다. 힘을 얻은 박만정은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겨우 개펄을 벗어날 수 있었다.
"큰일 날 뻔했소. 타지 사람들은 개펄을 몰라도 한참 모르지요. 멋모르고 들어갔다가 용왕 님한테 불려간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개펄에 빠지면 구해주기도 힘들다니까요."
행인이 다가와 호들갑을 떨었다.
"고맙소이다. 내 목숨을 구해주었구려."
박만정은 한숨을 내쉬며 진흙을 털어 내기 바빴다. 행인에게 뭔가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지만 내줄 것이 없어 안타깝기만 했다.
기력을 되찾은 박만정은 개펄 쪽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길을 떠났다. 그렇게 해서 옹진현 객사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 덧 땅거미가 내릴 무렵이었다.
"아니, 무슨 변이라도 당하셨습니까?"
옹진현령 박준번(朴俊蕃)이 공장(公狀 : 수령이나 찰방(察訪)이 공식으로 감사·병사·수사를 만날 때 관직명을 적어서 내던 편지)을 들고 찾아왔다가 박만정의 행색을 보고 깜짝 놀랐다.
"별 일 아니오."
박만정은 개펄에 빠진 일을 숨기며 저녁상을 받았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한 데다가 아침부터 그런 일을 당했던 터라 밥맛이 꿀과도 같았다. 저녁상을 물린 뒤 그는 늦게까지 현령의 하소연을 들었다.
옹진현은 창린(昌 )과 비압(飛鴨)이라는 두 섬을 품고 있었는데 가끔 출몰하는 황당선(黃唐船;우리 연해에 출몰하는 소속 불명의 외국 배)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었다. 그 배는 자못 신출귀몰하여 어종이 풍부한 두 섬 근해에서 고기를 실컷 낚아 올린 뒤 번개같이 도망치곤 한다는 것이었다.
"이 고을의 사정을 알았으니 돌아가서 꼭 보고하리다."
박만정은 현령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새벽에 다시 길을 떠난 박만정은 해주 서쪽 억건이(億健伊)라는 마을에서 끼니를 때웠다. 어딜 가나 해당 고을의 폐단을 미리 알려면 마을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이 우선인 바, 박만정은 늘 그래왔듯이 가는 곳마다 촌부 하나씩 불러 해당 고을 수령의 행적을 탐문했다.




"그저 비나 한바탕 좌악 쏟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흉년을 당한 백성들은 그저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오후 무렵 되어 장연부(長淵府) 객사에 도착한 박만정이 점심을 먹고 짐을 풀자 난데없이 큰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부사(府使) 임원성(任元聖)이 허겁지겁 달려오더니 박만정을 무척 반겼다. 둘은 예전부터 잘 알던 사이였다.
"그나저나 이 고을에 보름 넘도록 비가 오지 않아 논과 밭이 바싹 말라있었는데 이렇게 비가 장하게 내리니 마땅히 어사우(御使雨)라 불러야겠습니다."
"어사우라니요?"
"어사께서 당도하시자마자 이렇게 비가 내리지 않습니까?"
"허어, 당치 않습니다. 내 비록 어사이긴 해도 어떻게 때아닌 비가 나 때문에 내린단 말이오? 다 하늘의 뜻이지요."
그러나 박만정은 낮에 만난 촌부의 시름을 이렇게 빨리 덜 수 있어 흐뭇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껄껄 웃으며 간만에 주안상을 마주했다.

4월 25일, 새벽에 눈을 뜬 박만정은 서둘러 길을 떠났다.
깊은 산골짜기 마을에서 아침을 간단하게 먹은 뒤 다시 걸음을 재촉해 송화현(松禾縣)의 조치(鳥峙)라는 마을에 도착하자 어느덧 점심 무렵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박만정은 지나던 행인들이며 밭에 일하는 농부들로부터 시름 섞인 하소연을 몇 차례 듣기도 했다. 어느 고을에나 넋두리 없는 백성이 없겠지만 이곳은 좀 심하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조치 마을에서 그가 들은 소문은 그 정도가 좀 심하다 싶었다.
주막에서 점심을 먹는데 건너편 평상에 앉은 이들의 대화가 자꾸 귀에 거슬렸던 것이다.
"늙어 효도하기도 쉽지 않은데 어디 가서 쇠간이라도 사다가 차려드릴까 싶네."
행색은 볼품없으나 언행이 흐트러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글 읽는 사람이 아닐까 싶은 어느 중년이 일행에게 말했다.
"쇠간이라고 했나? 허면 윤효일이라는 색리(色吏)를 찾아가 보게."
"그 자가 쇠간을 내준다던가? 허허. 도살 금지령이 내렸는데 어디서 쇠고기를 판단 말인가?"
"아직 못 들었나? 거기서 공공연히 쇠고기를 판다고 하던데."
이렇게 말해 놓고 일행은 문득 박만정 쪽을 훔쳐보았다. 낯선 이를 경계하는 것이었다. 이쯤 되자 박만정은 수저를 내려놓고 그쪽을 향해 돌아앉았다.
"팔도 유람하는 거렁뱅이 서생이외다. 꺼려하실 것 없으니 이야기나 들어봅시다."
이제 어느 정도 신분 둘러대기에 이골이 난 박만정은 그야말로 영락없는 거지 선비였다.
"흉년에 음풍농월이라……, 팔자가 부럽소이다."
경계를 푼 중년 일행이 서슴없이 말을 받았다.
"자, 어찌 되었든 우리 고을을 지나는 손님이니 한 잔 받으시오."
하며 술 사발까지 건네었다.
이렇게 해서 박만정의 탐문이 시작되었다. 때로 날카롭게, 때로 우회하며 박만정은 능숙하게 탐문을 이어갔다.
"들어보니 이곳 송화 현감은 잘 한 일이 하나도 없구려."
박만정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말도 마시오. 부임 초에 멋모르고 송사를 올린 백성들이 죄다 옥살이를 했소이다. 소장을 읽기나 제대로 읽는지 잘 모르겠소. 마땅히 승소해야할 쪽이 오히려 죄를 받기 일쑤이고 혹 가벼운 죄를 범해도 사형이니 원성이 오죽하겠소."
이창근이라고 이름을 밝힌 중년은 벌써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박만정이 건넨 한 잔 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무슨 일이건 저 혼자 처리하는 법이 없고 한결같이 향리들의 말에만 의지하니 백성들 편을 들 사람이 누가 있겠소."
"굶주린 이들이 한둘이 아닌 것 같은데 환곡 사정은 어떻소?"
박만정이 연이어 물었다.



"허어, 묻는 품이 꼭 어사 같소이다 그려."
이창근이 이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혹시'하는 표정이었다.
"허허, 그런 소릴 자주 들었소. 유람하는 행색으로 보나 본디 잘 캐묻는 버릇으로 보나 그런 오해를 사기가 어렵지 않더이다. 허나 당치 않은 소리외다."
박만정이 다시 잔을 내밀었다.
"환곡이라고 했소? 그것도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 아니겠소. 집에 망아지나 송아지가 한 마리라도 있으면 살림이 넉넉하다 하여 환곡을 내주지 않는답니다. 게다가 산창(山倉 : 산성(山城)의 군량미를 저장하는 창고)의 군량미 수십 섬을 민간에게 내준다는 핑계로 꺼내놓고 감감무소식이니 필시 제 안주머니로 들어갔을 겝니다."
이창근이 마당에 가래침을 칵, 뱉은 뒤 술사발을 들었다.
"게다가 이런 흉년에 서민들 살림살이가 어떨 지는 길 가던 개도 다 알텐데 심지어는 매질까지 해서 납세를 재촉하니 이거 원……."
옆에 앉은 이창근의 일행도 한 마디 거들었다.
지방에서 얻는 정보에는 여러 등급이 있게 마련이다. 대개 촌구석의 무식한 농부들로부터 듣는 정보는 그저 한 맺힌 넋두리에 그치기 쉽지만 어느 정도 글을 읽은 선비들로부터는 꽤 고급 정보를 듣기도 했다. 지금 이창근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해들은 정보는 이후 박만정이 송화현 관아에 당도했을 때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기초 정보인 셈이었다.
"그나저나 이형은 정말 쇠간이 필요하시오?"
박만정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아까 듣자하니 집안 어른께 쇠간이라도 차려 드리고 싶다 하시길래."
"허허, 귀도 밝으시오. 쇠간은 무슨, 그저 환갑 잔치 상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서서 해본 소리외다. 이웃들 모두 굶어죽는 판에 잔치도 언감생심이지요."
"그렇군요."
박만정은 곧 그들과 헤어져 길을 떠났다.
관아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해가 지기 전에 관내에 들어선 박만정은 내처 객사에 올라 앉아 서리에게 명령했다.
"재정에 관련된 문서 일체를 대령하렷다."
서슬 퍼런 명령에 송화 현감 김해(金 )는 물론 아전들 모두 벌벌 떨었다.
'헛소문이 아니었군.'
문서를 훑어보며 박만정은 연신 눈살을 찌푸렸다. 환곡을 제 멋대로 남용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공금의 출처 역시 사사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색리 윤효일과 하기선을 들라 해라."
박만정은 주막에서 이창근 네가 거론했던 이름을 기억했다. 대뜸 색리 두 명의 이름을 들먹이니 아전들은 기절할 지경이었다.
곧이어 끌려오다시피 한 두 색리가 넙죽 엎어졌다.
박만정은 다른 이들을 모두 물리고 두 명에게 물었다.
"산창에서 꺼낸 군량미는 어찌 되었느냐. 고을에 나누어줄 환상대미 18섬 14말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라."
다 알고 묻는 말에는 피할 수가 없는 법, 색리들은 사시나무가 되어 줄줄 대답했다.
"무, 문서에 다 써있습니다."
"민간에게 나누어주었다고 써있는데 그 말을 믿으란 말이냐?"
"그, 그게 아니고 현감이……."
"개인이 착복했다고?"
"그렇습니다."
"소를 도살하여 팔아먹은 것도 사실이렷다?"
"그, 그것도 현감이……."
"현감이 어쨌단 말이냐 냉큼 이실직고 하지 못할까?"
"모두 현감이 임의대로 처리했습니다."
"여기 현감이 제물(祭物)을 마련하기 위해 두 차례나 돈을 사용했다고 써있는데 이외에 또 어디에 썼는지 아뢰어라."
"모두 현감이 사사로이 사용했습니다."
박만정이 문을 열어 보니 현감 김해가 엎드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송화현에서 구태여 오래 머물 필요가 없게 되었다. 박만정은 김해의 인신과 병부를 거둔 뒤 창고를 봉했다. 벌써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다시 객사로 들어간 박만정은 서리를 불렀다.
"마을로 가서 이창근이란 자에게 이것들을 전하게. 오래 전에 신세 진 일이 있었는데 늦게나마 갚게되었다고 말을 전하게."
하며 편지와 엽전 꾸러미를 내었다.
서리가 잽싸게 출발한 뒤 박만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날이 저물었으니 이대로 하룻밤을 유숙해야겠지만 여기서 머물기는 싫었다.


'다음 행선지는 풍천(豊川), 그리 멀지는 않으니 떠나야겠다.'
박만정은 말에 올라 송화현을 등졌다. 그의 자취가 이내 어둠 속에 묻혔다.

한편 난데없는 편지와 엽전 꾸러미를 받아든 이창근은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곤궁한 시절을 만나 인심을 잃은 지 오래인 이때에 걸식하며 유람하는 사람에게 술까지 대접하니 고맙기 그지없소이다. 뭔가 보답할 일을 찾다가 댁 네 어른의 잔치 상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하여 몇 냥 보냅니다. 부디 마을 사람들 모두 흥겨운 잔치를 누렸으면 합니다. 이름 없는 나그네가.'

술 권한 인심도 인심이려니와 좋은 정보를 준 것에 대한 개인적인 보답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잔치 날 하루만이라도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잃었던 인심을 되찾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