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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일만의 귀휴(歸休) (15)

어사 박만정이 65일에 걸친 암행을 끝내고 돌아온다. 수령들과의 술자리에서도 어사 신분을 끝까지 숨기며 임무를 무사히 마친 박만정.





1696년 5월 초순.
"일찍이 명나라의 사신 주지번이 이 곳의 풍경을 보고 가던 길을 멈추고 감탄했다 하더니 과연 그럴 만 하구나. 해주의 허정에 이어 해서(海西)에서 두 번째 가는 절경이로다."
평산의 총수산 역참(驛站)에 도착한 박만정이 탄성을 내질렀다. 총수산은 깊은 소택(沼澤 : 늪과 못. 소지(沼池). 지소(池沼))둘레에 깎아지른 산세가 벽을 이뤄 마치 넓고 푸른 바다에 병풍을 두른 것 같은 모습이었다. 옛 명나라 사신들이 지나다녔을 이 길에서 풍경을 조망하며 거닐자니 사행 행렬이 바로 눈앞인 듯 아물거렸다. 박만정은 시까지 읊으며 한가롭게 앉아 풍경을 감상했다.
그동안 박만정은 하루에 수십리를 달리며 자고 일어나면 떠나고, 자고 일어나면 다시 또 떠나는 생활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여유를 부려도 좋다고 생각했다. 출도할 만한 고을은 다 출도했고 처리해야 할 큰 일도 웬만큼 처리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3월 7일에 떠난 암행길이 어느덧 두 달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동계, 자네가 여기까지 어인 일로? 아무튼 어서 안으로 들게나."
황해 감영에서 업무를 보던 감사 이징명이 뜰 아래까지 내려와 박만정의 손을 잡았다. 박만정도 이징명의 손을 잡으며 반가워했다.
"듣자하니 이야가 해주 목사로 있다던데 함께 할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소."
"그래야지. 그렇고말고."
박만정은 황해감사 이징명을 따라 안으로 들었다.
원래 해주는 박만정의 추생지도 아니었고 연로에 있는 고을도 아니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박만정은 돌아서 가는 한이 있더라도 귀경길에 반드시 해주에 들를 계획이었다. 바로 황해 감사 이징명과 해주 목사 이야 때문이었으니, 그들은 동계 박만정과 같은 무자생(戊子生)으로 계축년 사마방(司馬榜, 생원, 진사에 합격한 방)에 함께 오른 친구들이었던 것이다.
소식을 듣고 해주 목사 이야가 달려와 동석했다. 박만정이 감회에 젖어 말했다.
"우리 세 사람은 나이도 같고 과거에 등제한 것도 같은 흔치 않은 인연이오. 그런데 오늘 이처럼 해주 땅에서 함께 해후하였으니 살면서 실로 이런 기연(奇緣)도 없을 것이오. 하지만 올해는 흉년인데다 갈 길도 총총하여 단란하게 술 한잔 나눌 시간이 없으니 참으로 한스럽소."
모처럼 만났는데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잔을 기울일 수 없다는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오래된 벗들과 한 방에 마주 앉아 밤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날 밤은 박만정이 이번 암행길에서 보낸 가장 기분좋은 밤이었다.
"그런데 자네 무슨 일이 있는가? 자네가 이 모양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내 맘이 편치않네 그려."
해주 목사 이야와 황해감사 이징명이 박만정의 행색을 보며 안스러움을 떨치지 못하고 물었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암행어사 신분을 숨기기 위해 찢어진 갓과 남루한 옷을 걸치기도 했지만 오랜 여행으로 인해 어느덧 얼굴도 까칠해지고 수염도 아무렇게나 자라서 진짜 거지와 진배없었던 것이다.
"자네, 혹시..."
황해 감사 이징명이 박만정에게 눈으로 물었다. 그러나 암행어사로서의 임무를 거의 마쳤다고 해도 경거망동하게 발설하고 행동할 수는 없는 일. 더욱이 친한 벗일수록 조심해야 할 일이다. 박만정은 대답 대신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이후 이징명과 이야는 더 이상 박만정의 행적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 얘기하니까 보름전 평산에서 만난 한 젊은 사내가 생각이 나는구려.. 그 사내 때문에라도 내가 꼭 둔별장을 해야겠으니 감사 어르신께서 제 사정을 살펴주셔야겠소이다."
박만정이 농담하며 운을 뗐다.

보름전 평산 서쪽 승천문이란 마을에 도착한 박만정이 말에게 먹이를 주고 쉬는데 주인이 와서 물었다.
"손님들은 무슨 일로 행차하셨으며 가는 곳은 어디십니까?"
"흉년을 당해 밥이나 얻어먹을까 하여 관서지방으로 가는 길이오."
주인은 박만정을 훑어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행차가 이 정도면 필시 양반님네 같으신데 왜 서울에 있으면서 벼슬을 하여 지방 수령이라도 하지 않습니까?"



"비록 양반이긴 하지만 글도 못하고 무예도 없으며 형세도 남만하지 못하여 어찌 벼슬을 할 수 있겠소?"
박만정이 그렇게 둘러대자 주인이 주변의 눈치를 살피더니 박만정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수령은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곳 둔별장(屯別將 : 이조 초엽 의흥친군십위의 칠품벼슬. 산성, 도진, 포구, 보루, 소도 등의 수비를 맡은 무관직.)쯤이야 할 수 있겠지요. 감사에게 청탁할 수 있는 형세라면 능히 태수는 되어 올 수 있을 겁니다."
"이곳 둔별장의 일년 소득이 얼마나 되는데 그러오?"
"만일 묘리만 터득한다면 곡물 백 여섬은 물론이고 그밖에도 개가죽이며 참깨, 들깨 등속의 물품도 얼마든지 얻어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인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박만정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허허.. 그렇다면 내 손을 써서 이 일을 한 번 도모해 볼까?"
"도모하다 뿐이겠습니까? 발벗고 나서야지요. 만일 그렇게 되어 오신다면 소인에게는 창고지기를 시켜 주셔야 합니다. 꼭이요!"
"창고지기를 하면 얼마나 얻어먹소?"
"아마 누십섬의 양곡은 얻어먹을 수 있겠습죠."
박만정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었다.
"내가 이곳에 오면 마땅히 약속대로 하겠지만 만일 이곳에 오지 못한다면 그 땐 어떻게 할 텐가?"
"안 오시다니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이 시각부터 저는 학수고대하고 나리께서 오실 날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바라건대 힘껏 도모하셔서 소인의 원을 풀어주십시오. 창고지기는 꼭 저에게 시켜주셔야 합니다요!"
박만정은 그러마 하고 호기롭게 약속하고는 주인과 헤어졌다.
때로는 희망없이 사느니 헛된 희망이라도 희망을 품고 사는 편이 더 나은 경우도 있다.

아름다운 경치도 즐기고 보고싶었던 벗들과도 해후한 박만정은 다시 길을 재촉했다.
목적지는 한양.
이제는 복명할 일만 남은 터였다.
박만정은 황해도를 벗어나서부터는 행색을 노출시켜 미리 선문(先文, 도착하는 날짜를 미리 통지하는 공문)을 발송하고 행차했다. 한양 집에서 가노 계상을 통해 집안이 두루 편안하다는 소식을 편지로 보내왔다. 일전에 행자를 넉넉히 보태줬던 장단 부사 남필성 공을 찾아갔더니 그새 임기가 만료되어 귀경했다 한다.
5월 11일 박만정은 강상(江上)에서 암행어사 업무 보고서인 서계 및 별단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5월 12일 새벽부터 길을 나서 대궐에 도착했다.

박만정은 임금 앞에 나아가 복명하였다.
"네가 가서 보고 들어 보니 실상은 어떠하더냐?"
"신이 한 도를 두루 돌면서 곳곳에서 보니 거리에 흩어진 거지들이 심히 곤란한 지경에 이른 것을 목도하였습니다. 해서 지방은 해마다 재황이 든데다가 작년에 큰 흉년을 만나 팔도 중에서 가장 그 피해가 심한 것 같습니다. 일정한 주소가 없이 여기 저기 옮아 다니는 협곡의 백성들과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는 바닷가 백성들은 모두 열의 아홉은 유산(流散)되어 비어 있고 겨우 보존된 자라고는 약간의 전토를 가진 농민뿐으로 다행히도 나라에서 진휼하는 덕화에 힘입어 굶주림을 면하고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상태로는 양맥도 풍작의 조짐이 없고 산촌의 서속(黍粟 *기장과 조)도 서있는 묘(苗)가 작년보다 고르지 못합니다. 농촌의 전답도 가뭄으로 태반이나 씨를 못뿌렸고 비록 씨를 떨어뜨렸다 하더라도 묘가 제대로 서 있는 곳이 없습니다. 때문에 아직 가을 추수의 흉풍을 요량할 수는 없으나 설령 풍작이 된다하더라도 조정에서는 흉년으로 간주하여 제반 요역을 감봉해서 백성들의 삶을 소생시켜야 할 것입니다."
"간사하고 교활한 향리들은 죄가 있고 없음을 물론하고 즉시 형벌로 다스렸는가?"
"생소한 읍에 갑자기 들어가게 되니 죄의 경중을 모두 알기는 어렵습니다. 혹 뜻밖의 죄를 받게 되면 반드시 원성을 사게 되므로 형벌을 내릴 때는 신중히 하였으나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바가 있으면 반드시 조사하여 다스렸습니다."

"출도(出道)하였을 때 과연 일읍(一邑)이 징계(懲戒)되고 독려되는 효과가 있던가?"
"어사가 파견되는 것을 옛날에는 '호행(虎行)'이라고 칭하였습니다. 민간에서 전하는 것으로 말하더라도 '어사가 출도(出道)하면 초목이 모두 떤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봐도 그 징계(懲戒)되고 독려되는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암행어사의 사명을 띠고 출발한 뒤 그에게는 군자감(軍資監)1) 정(正)의 벼슬이 내려져 있었다. 박만정은 사은을 표하고 대궐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암행어사로 임명된 지 65일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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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군자감(軍資監); 조선시대 군량미 등 군수품의 저장·관리·출납을 맡아본 관청. 관원으로는 정(正:정3품 堂下官)·부정(副正:종3품)·첨정(僉正:종4품)·주부(主簿:종6품)·직장(直長:종7품)·봉사(奉事:종8품)·부봉사(副奉事:정9품)·참봉(參奉:종9품)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