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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公)과 사(私)의 외줄 타기 (1)

1822년(순조 22) 황해도 암행어사 박내겸(朴來謙)



어사 박내겸이 황해도 순안에서 겪은 이야기. 많은 비리를 적발하였지만 파직될 수령은 어사와 잘 아는 사이라 심적 부담이 크다. 마음이 불편한 어사 행각의 일면.





5월 13일, 어사 박내겸 일행은 평양에서 점심을 먹은 뒤 곧장 순안(順安)으로 향했다. 황혼 무렵에 이르러 일행의 눈에 순안 관아가 들어왔다.
이 고을은 이미 두어 달 전에 수행 장교인 조익렴(趙益濂)이 샅샅이 조사한 바 있으며 그 부정과 비리의 증거가 명백한 곳이었다.
"저들이 왜 관문 밖에 나와 있느냐?"
박내겸이 역졸들에게 물었다.
아닌게 아니라 관아의 아전들이 누군가를 마중 나온 듯 문 앞에 잔뜩 모여 있었던 것이다.
"어사가 온다는 것을 미리 알기라도 했단 말이냐?"
"제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발 빠른 역졸 하나가 달려가더니 금새 돌아왔다.
"이곳 수령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합니다."
"수령이 어디 갔길래?"
"근처 산사(山寺)에 놀러 나갔다고 합니다."
역졸의 말에 박내겸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짐짓 화가 난 듯 말을 빨리 몰았다.
"암행어사 출도야!"
역졸들이 쿵쿵쿵 달려가며 마패를 두드리고 고함을 질렀다.
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무리들이 박내겸 일행을 보더니 개미 떼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흡사 바람이 몰아치고 우박이 우두두 떨어지는 듯한 광경이었다. 순식간에 관문 앞에는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게 되었다.
서울을 떠나온 지 한 달하고도 이십여 일 만에 처음 출도하는 순간이었다.
관문으로 들어선 박내겸은 우선 문루(門樓)에 올라 성안을 둘러보았다. 등불이 죄다 꺼져 있었고 바깥으로 향한 문들도 모두 닫혀있어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암행어사 출도야!"
역졸들이 다시 한번 외쳤으나 적막하기만 했다.
박내겸은 문루에서 내려와 어둑어둑한 동헌 쪽으로 걸어갔다. 그 곳 역시 텅 비어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아전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더니 하나같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촛불을 켜고 병풍을 두르며 자리를 깔았다.
박내겸은 자리에 앉자마자 문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사실 순안 현령(縣令) 이문용(李文容)은 박내겸과 개인적으로 친교가 있는 사람이었다. 지인(知人)의 행적을 조사해야 하는 그의 심정이 편안할 리는 없었다. 문서를 넘길 때마다 비리 사실이 드러났고, 또 그 때마다 '이쯤에서 그쳤으면'하는 바램이 있었지만 수령의 비리는 계속되었다.
얼마 있자니 아전들이 커다란 상에 진수성찬을 내왔다. 박내겸은 또 속이 상했다.
"상을 다시 내가거라."
체증으로 하루 종일 설사에 시달린 탓에 음식을 입에 대기도 힘들었던 것이다.
'먹을 복도 참 없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계속 문서를 더듬었다.
앞서 이 고을을 염탐하며 여러 사람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수행 장교 조익렴에 의하면 순안 현령 이문용은 무엇보다 술이 문제였다. 그가 늘 취해 있다는 것은 고을 사람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해가 뜨면 술을 마시고, 해가 져도 술을 마시니 언제나 비몽사몽일 게 뻔한 일이요, 향리들이 그를 우습게 보는 것도 당연했을 것이다. 읍의 장교(邑校)들이 관아에 모여 술잔치를 벌이고 요사스러운 무당들 또한 민간의 사당(叢祠)에서 서로 술잔을 돌리는 것이 다반사가 되었다. 심지어는 송사(訟事)에 임해서도 술에 취해 혼미한 상태였다 하니 형방의 아전이 제멋대로 판결을 뒤집었으며 그 결과 억울한 백성들이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왔다. 취중(醉中)의 수령은 차라리 없는 것과 같아서 수안 관아의 일은 마침내 향리들과 교활한 장교들의 몫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휴우-."
박내겸은 고개를 들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닭이 세 번 울었고 눈이 감겨왔다. 조사해야 할 문서와 미루어 쌓여온 일들의 양을 가늠해보니 이삼일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에도 박내겸은 계속 문서를 조사했다. 수안 현령 이문용은 뒤에 서서 시종일관 말이 없었다. 예전에 서로 이런 관계가 아니었을 때에는 마주 앉아 술을 마신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이문용의 얼굴은 술을 마시지 않아도 울긋불긋한 기운이 피어 있어 이미 속병이 깊어 보였다.
"어찌하여 몸도 안 돌보고 그렇게 술을 드셨소?"
"그저 부끄럽습니다."
둘 사이의 대화는 이것이 전부였다.
박내겸은 그 어색한 상황을 애써 피하려는 듯 창고로 걸어갔다. 문서에 기재되어있는 곡식의 양과 창고의 실제 양이 맞을 리가 없었다. 여기저기 빌려주고 팔아먹고 나눠먹어 창고는 거의 비어있었고, 환곡을 돈으로 바꾼 677냥을 비롯하여 칙사 접대 기금이며 군량미를 팔아 남긴 돈이 모두 어디론가 사라졌다. 관아에서 제멋대로 썼거나 수령 이하 이속들의 주머니로 들어간 것이었다.
문서에 이미 비리의 증거가 명백하게 드러나 있었기 때문에 박내겸은 수령의 인신을 거두고 창고 문을 닫아 봉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수령의 권한은 정지되었고 겸관(兼官)이 오기 전까지는 박내겸 자신이 관아의 급한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실로 공(公)과 사(私)의 외줄 타기를 하는 심정이었다. 사(私)로 기울어지는 정(精)과 공(公)으로 균형 잡으려는 이성과의 팽팽한 줄다리기라고도 할 수 있었다.
'내 비록 공무를 수행하는 것이지만 차마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박내겸은 이런 기분에서 한시바삐 벗어나고 싶었지만 아직 일은 다 끝나지 않았다.
부패한 장교들과 간사한 형리들로 인해 억울하게 패소(敗訴)한 백성들이며 오랫동안 갇혀있던 죄수들을 모두 끄집어내어 일사천리로 송사를 해결해야 했다. 어사가 다녀간 흔적이란 이런 것이었다. 단순히 무능하고 탐오한 수령을 파직 대상으로 올리는 것만으로는 백성들의 한을 구체적으로 달랠 수 없었던 것이다.
일을 거의 다 마치자 해는 벌써 지고 사방이 어둑어둑해져왔다. 여느 때 같았으면 객사에서 자고 다음 날 출발했겠지만 박내겸은 이곳을 어서 뜨고 싶었다. 그는 다시 남루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거치 차림이 되어 말에 올랐다.
관문을 벗어나자 그는 수행원들을 뒤에 두고 혼자 쏜살같이 내달렸다. 뒤를 돌아보고 싶지도 않았고 씁쓸한 기분에 젖어있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맨 처음 만나는 주막에서 술이나 마시고 싶었다.

그렇게 순안을 떠난 지 두 달 뒤인 7월 19일, 박내겸 일행은 황해도 황주를 출발하여 동선령(洞仙嶺) 고개를 넘고 있었다.
이제 평안도에서의 임무를 모두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중이라 길은 험해도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일행이 고개 위 풀숲 길에 이르자 잡신을 모시는 사당이 눈에 띄었다.
"저기서 좀 쉬었다 가자."
사당 아래 웬 노인이 술을 팔고 있어 박내겸은 겸사겸사 그리로 향했다.
"한성으로 가려면 이 고개를 반드시 넘어야 할 텐데 어째 행인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소이다."
박내겸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
"점심 때가 지나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노인의 말에 박내겸은 문득 궁금한 것이 있어 다시 물어보았다.
"이 길로 수령 행차는 없었소?"
"일전에 순안 수령 부인이 여기서 쉬어갔지요."
말인즉 순안 현령 이문용이 파직되자 그의 부인이 늙은 여종과 함께 서울로 올라가던 중 이곳에서 쉬어갔다는 얘기였다. 노인이 크크, 웃으며 다시 말을 잇기를,
"그 늙은 여종이 술을 먹더니 이 사당 앞에서 주절주절 뭐라고 자꾸 빕디다. 가만 들어보니 어사 때문에 제 밥그릇을 빼앗겼으니 밝은 신들께서 그 놈의 어사를 잡아가라고 합디다. 허허."
하며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박내겸 역시 노인처럼 그저 웃으며 남은 술을 마셨다. 자리를 뜨면서 박내겸은 다시 사당을 흘깃 돌아보았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절을 하는 늙은 여종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질 듯도 했다. 임금의 명을 받들어 암행하고 탐문하는 일이 결국 어리석고 가엾은 백성을 위한 것이라 여겨왔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사사로운 정을 끊고 어사의 임무에 충실했던 자신의 행동이 어느 늙은 계집종에게는 오히려 한과 원망만을 쌓게 한 것이다.
고갯길을 내려가는 어사의 발걸음이 전처럼 가볍고 명랑할 수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