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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 무거운 나그네 길 (1)

1671년(현종 12) 영남 암행어사 신정(申晸)




사헌부의 집의이자 세자시강원의 겸보덕인 신정이 암행어사로 임명되어 출발하기까지의 이야기. 첫날, 주막에서 떠드는 무리들을 타일러 보내며 어사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밤길을 떠난다.





당대의 백성뿐만 아니라 후대의 사람들 모두 암행어사에 거는 기대는 한결같다. 백성의 편에 서서 탐관오리를 혼내주고 민중의 어려움을 자상하게 해결해주는 영웅, 바로 그것이다. 당대의 백성은 자기 삶과 곧바로 연결된 일이니 그만큼 절실함이 컸을 터이고, 정의가 살아 숨쉬는 역사의 단면을 갈망하는 후대의 사람들에게는 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로서의 암행어사 영웅담을 원할 것이다.
그러나 민담과 설화 속의 암행어사가 그토록 멋있는 인물인 것은 사실일지라도 조선의 수많은 암행어사들이 모두 활극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었다. 또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법 집행자의 모습도 아니었다.
조용히 길을 떠나 남몰래 염탐하고 고을의 풍속과 관의 폐해, 그리고 백성들 삶의 현주소를 사실적으로 조사하는 것이 암행어사의 본분이었다. 그러한 일에 있어 암행어사가 언제나 능수능란하게, 마치 오래 전부터 암행어사 훈련을 받은 사람처럼 수월하게 임했으리라 보기는 어렵다. 암행어사를 양성하는 특수 기관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거의 모든 암행어사가 평생에 단 한번 파견을 나갔을 뿐이니 암행은 초행이자 마지막 임무이기도 했던 것이다. 따라서 암행어사의 명을 받든 사람은 그 임무의 막중함과 아울러 고독과 두려움을 모두 짊어져야 했다.
현종 12년, 암행 어사의 행적을 기록한 신정의 <남행일록>에서 우리는 활극의 주인공이 아닌 한 인간의 조용한 암행 과정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몇 달째 곡(哭) 소리가 끊이지 않으니 참으로 큰일이외다."
교리 윤경교(尹敬敎)가 짐짓 안타까운 표정으로 입을 열자 모두들 한 마디씩 맞장구를 쳐왔다.
"지난달 한성 문(門) 안팎에서 죽은 사람만도 무려 250 명이나 된다 하더이다."
"팔도 합쳐 근 1만 6천에 이른다 하니 난리가 따로 없구려."
"아사(餓死)뿐이 아닙디다. 범에 물리거나 물에 빠지거나 심지어는 도적에게 살해되기도 했답니다."
"긴 흉년에 인심 찾겠소?"
신해년 초가을, 집의(執義) 신정(申晸)과 교리 윤경교, 수찬 이단하 등 대여섯 사람이 병조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신정은 서연(書筵 : 학자들이 왕세자에게 학문을 강론하던 일, 또는 그 자리)에서의 강론을 마친 뒤라 다소 목이 칼칼하기도 하거니와 대화의 분위기도 칙칙하여, 때 이른 술 생각이 간절했다. 그는 사헌부의 집의였지만 또한 세자시강원 (世子侍講院 :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관청.)의 겸보덕(兼輔德)이기도 했다. 직책이 그러하니 자주 입을 열어야 했고 그만큼 목이 마를 때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이 즈음 그의 유일한 낙은 저문 뒤의 술추렴이었는데, 큰 흉년에 굶주린 이들을 생각하니 대놓고 주안상을 받기에도 눈치가 보였다.
"지방 인심이 그토록 흉흉하다면 필시 어사 파견에 대해서 논의가 있었을 터인데 어째 소식이 잠잠합니다."
정랑 이선(李選)이 좌중을 훑으며 말을 꺼내자 수찬 이단하(李端夏)가 받았다.
"무턱대고 파견할 수야 있겠소. 도리어 역효과를 낼 수도 있으니 신중해야겠지요."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어느 덧 정오 무렵이 되었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 신정을 찾았다.
"허어, 승정원에서 사람을 보냈구려."
슬슬 자리를 뜰 생각이었던 신정은 밖에서 부르는 소리를 핑계삼아 일어섰다. 뭇 시선들이 일순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지만 신정은 모른 체하고 방을 나섰다.
"무슨 일인가?"
"대청(臺廳)으로 납시란 명입니다."
하며 사알(司謁)이 명패(命牌) 하나를 내밀었다.
신정은 명패를 받아들자마자 걸음을 재촉했다. 신정이 받은 명패(命牌)는 일반적인 목패(木牌)와는 사뭇 달랐다. 붉은 칠을 한 장방형 모양에 정성스럽게 장식이 새겨져 있어 앞면의 '명(命)'자가 더욱 위엄 있게 느껴졌다.
신정은 발걸음을 재게 놀렸다.
대청에 도착하니 이미 세 사람이 먼저 와있었다. 그들은 신정과도 교분이 두터운 이혜(李 ), 조위봉(趙威鳳), 김만중(金萬重)이었다.
네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미소로 인사를 나누었다.



신해년(1671년, 현종 12) 9월 1일, 이날 부름을 받은 네 사람에게 똑같은 명령이 내려졌으니 그것은 어사의 행장을 꾸리라는 것이었다. 이어 호조에서 쌀과 콩을 각각 1섬씩, 그리고 감장(甘醬;단 간장), 미역, 조기 등을 내놓았다.
이제 네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정식으로 어사의 임무를 받을 때까지 그야말로 원행(遠行)의 행장을 꾸리는 일이었다. 동행할 수행원도 아울러 생각해 두어야 할 일이었다.
다음 부름이 언제가 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신정은 나머지 세 사람과 간단히 인사를 한 뒤 물러났다.

이후 보름 여 동안 아무 일이 없었다. 다만 두어 번 왕 앞에 나아가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세금을 감면해달라 아뢴 일이 있을 뿐, 암행어사의 일에 관해서는 별도의 명령을 듣지 못했다.
그가 다시 왕의 부름을 받은 것은 9월 14일이었다.
그날 신정은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전날 친구들과 어울려 늦도록 마신 술이 여태 취기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여보게, 안에 있는가?"
잔뜩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무렵, 회양(淮陽) 부사 임문중이 찾아와 그를 불러냈다.
회양이라면 강원도 북쪽이니 멀기도 멀고 길도 험했을 것이다. 신정은 대충 옷을 걸치고 나가 반갑게 그를 맞았다.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밖에서 그를 부르는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보니 승정원에서 보낸 하인이 명패(命牌)들고 서있었다.
신정은 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 제 이마를 한번 쳤다.
가볍지 않은 숙취와 멀리서 온 친구를 뒤로 하고 신정은 곧장 채비를 서둘렀다.
궁궐에 도착한 신정은 심사가 참으로 다급했다. 숙취로 푸석푸석해진 몰골도 그러하려니와 이제 곧 암행어사로 명을 받게 된다면 지체없이 먼길을 떠나야 할 터인데, 이래저래 준비가 턱없이 모자랐던 것이다. 이렇듯 처치(處置)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고 승지에게 사정을 설명했더니 다행히 아직 위에 아뢰지 않았다며 대청에서 기다리라 했다.
대청에는 그전처럼 '암행어사 후보자'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허어, 다들 말끔하게 준비를 한 것 같아 부럽구려."
신정이 김만중, 조위봉, 이혜 등과 자리를 함께 하며 잠시 한숨을 돌렸다.
"언제 부르실 지 알 수 없어 그저 오늘이 그날이려니 하며 기다렸습니다."
김만중이 빙그레 웃으며 말 마중을 해왔다.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중사(中使;왕명을 전달하는 내시)가 들어와 자못 엄숙한 표정으로 봉서(封書)를 나누어주었다. 뒤이어 사약(司 ;궐 안의 열쇠를 관리하는 잡직)이 청심환, 안신환 등 다섯 종류의 납제(臘劑;임금은 신하들에게 나누어주는 약제)를 전달했다.
이로써 네 사람은 왕으로부터 정식 암행어사로 임명을 받은 셈이었다. 그들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궐 밖으로 나갔다. 신정에게는 서리(書吏) 진익천(秦益天)이 따라붙었다.
제각각 어느 도(道)로 떠나야 할 지 내심 궁금했지만 한성 문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는 봉서를 펼쳐볼 수 없었다. 이윽고 남대문을 지나 남관왕묘(南關王廟) 부근에 이르렀다.
"자, 이쯤에서 펼쳐보세."
신정이 걸음을 멈추고 봉서를 꺼내들었다.
각각 자기 봉서를 훑어보니 신정은 영남지역, 이혜는 호남지역, 조위봉은 호서지역, 김만중은 경기지역이었다.
"세 분께서 저보다 원행이니 참으로 송구스럽습니다."
김만중이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
서로 이렇다 할 말이 없는 가운데 일행은 마포 나루터에 이르러 각각 배 한 척씩을 나눠 탔다.
끼익 끽, 노 젓는 소리와 뱃전에 부딪혀 찰랑거리는 물결 소리만 들려왔다. 사공이 일부러 배를 가깝게 해서인지 서로의 거리가 멀지 않아 얼굴 표정까지 볼 수 있었다. 신정은 김만중과 이혜 등의 얼굴을 말없이 쳐다보며 웃음을 던졌다. 그들도 역시 웃음으로 대답을 해왔다.
강 중간쯤을 넘어서자 이제 남은 일행은 영남으로 가는 신정과 호남으로 가는 이혜 뿐이었다. 그나마 강 건너편에 내려 광주(廣州) 사동(寺洞)에 이르렀을 때는 두 사람마저 갈 길이 달라 부득이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세 학사(學士)와 모두 헤어진 신정은 갑자기 쓸쓸해졌다. 날도 저물어 땅거미가 짙게 깔리니 객수(客愁)의 처량함이 한층 더해졌다.
"근처 주막에서 하룻밤 묵고 가세."
신정이 서리에게 말했다.
신정은 주막에서 늦은 저녁을 챙겨먹은 뒤 봉놋방에 드러누워 생각에 잠겼다. 궐 안의 사헌부 집무실에 앉아 올라온 보고문만으로 상(賞)과 벌(罰)을 논하던 때가 문득 그리워지기도 했다. 이제 필마로 낯선 땅을 돌며 몸소 탐문을 하려니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게다가 지금은 대낮에 큰 소리로 왕의 사신이라 떠들어댈 수 있는 맘 편한 신분도 아닌 것이다.
"말못할 나그네 심정이로다."
신정이 혼자 한숨을 쉬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보게, 무슨 일인지 알아보게."
신정은 점잖게 서리를 재촉했다.
서리 진익천이 나가서 사정을 살펴본 즉, 이웃의 서생들이 술에 취해 노비 하나를 족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몽 뭐라 하는 노비 놈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몽둥이 찜질을 당할 판입니다."
"그래서야 쓰나. 자네가 나가서 타일러보게."
"아닌게 아니라 제가 말려도 봤지만 되려 화만 돋군 것 같습니다."
그때 다시 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저대로 두면 큰일나겠습니다."
"흉년에 굶어죽는 것도 모자라 맞아죽기까지 한단 말인가? 다시 한번 타이르되 그래도 듣지 않으면……."
신정이 말을 끊고 서리를 쳐다봤다.
눈치 빠른 서리가 잽싸게 밖으로 나가 예의 술 취한 서생들에게 뭐라고 일장 연설을 해댔다. 그러자 서슬 퍼렇게 굴던 이들이 갑자기 공손해지더니 이윽고 밖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나으리,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곳에 계신지 몰라 뵙고 난동을 부렸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알았으니 물러들 가게."
신정은 이렇게 대답한 뒤 일어서서 행장을 다시 꾸렸다.
"나으리, 어디 가시려구요? 밤이 깊었습니다."
서리가 들어와 물었다.
"신분이 드러났으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신정은 서리와 함께 밤길을 나섰다.
달밤에 20리를 걸어 양재역에 도착한 신정은 그곳 객방에 들어 짐을 풀었다. 그러나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달빛이 창에 가득 차고 어디선가 닭이 울었다. 자리를 박차고 나온 신정은 안개 자욱한 마당을 한참 거닐었다.
"암행이라……, 참으로 막막하구나."
이렇게 혼자 중얼거려보기도 했다.
끝내 잠들지 못한 신정은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서리를 깨워 길을 떠났다. 차라리 파견지에 어서 도착하는 편이 마음 편할 것 같았다.
지는 달빛이 두 마리의 말과 그 위에 탄 두 명의 나그네를 물끄러미 비추니 그림자가 길게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