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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거상이야기청(淸)과의 조공, 회사에 의한 교역은 조선이 적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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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淸)과의 조공, 회사에 의한 교역은 조선이 적자였다.

조선후기 조, 청 관계도 기본적으로는 조공, 책봉체제에 의해 유지되었기 때문에 조공과 회사형식의 국가간 무역이 계속되었다. 청의 초기에는 명대와 마찬가지로 1년에 4차례 조공하였으나 인조 23년(1645)부터는 모두 동지사(冬至使)에 합병되어 1년에 1차례만 파견하였다. 그래서 이것을 세폐행(歲幣行) 또는 연공행(年貢行)이라 하였다. 그러나 조선은 이외에도 사은행과 진하행, 문안행, 주청행, 변무행, 진위행, 진향행, 부고행 등 각종 특사가 파견되어 많을 때는 한 해에 13차례나 파견되었다. 청 초기인 인조 15년(1637)부터 고종11년(1874)까지 238년간 474차례의 사행이 중국에 갔으며 겸대한 경우를 합하면 870차례나 됨으로 전 시기에 매년 3, 6차의 사행이 있었다.
병자호란 직후는 청측의 위압정책에 의해 엄청난 수량의 물품을 청에 공납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다. 그위 양국 관계가 호전되어 감에 따라 조선측의 공물과 수량은 감소되었다. 그러다가 영조5년(1729) 이후에는 화폐가치로 따지면 청초에는 대략 은 30만 냥에 달하였으나 1729년 이후에는 대략 은 8만 냥에 달하는 세폐로 보내졌다. 조선측의 모든 사행에는 세폐 외에도 청의 황제나 황태후, 황태자 등에게 방물을 보냈는데 그 가치는 동지사의 경우 1회에 26,000냥에 달했다. 동지사 이외 사행의 방물가치는 약 1만냥에 달했다고 하니 연평균 총 13만 냥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조선측의 세폐와 방물에 대하여 청에서 회사한 물품은 극히 소량이었다. 청 후기 동지사행 때 회사품은 가치가 약 4,100냥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에서 보낸 세폐와 방물에 비하면 1/10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편 청측에서 조선에 보낸 칙사에 증여한 예단 품목도 100가지가 넘었고 그 가치는 정조와 순조 시기에 적어도 2~4만냥에 달했다. 또한 예단 이외에도 칙사를 대접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엄청났다. 황해도에서 부담하는 비용만 47,000냥을 초과했고 한 칙사행에 전국적으로 드는 비용은 23만 냥을 휠씬 넘었으며 모든 중앙관아 연간 총 비용의 약 1/6에 해당하였다. 결국 청조와의 조공, 회사에 의한 교역은 조선측이 절대적인 적자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