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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유통경로

조선시대 전형적 시장유통 경로

우리 나라는 서울 중심부에 육의전을 주축으로 하는 시전들, 즉 상설시장을 갖추고 있었다. 서울 근교의 수원장은 거의 하루 걸러 서는 장이었고, 서울의 길목인 경기도 광주의 송파장(松坡場)은 조선후기로 내려오면서 교역량이 많아져 거의 상설화된 장이었다. 조선 14대 왕인 선조 이후에는 개성, 평양, 수원 등의 도시에도 상설점포인 시전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고정점포로 구성되는 상설시장을 찾아보기 힘들었다.호남의 경우를 예를 들면 전라도 감영(監營)이 있는 전주부에나 시전이 제대로 설치되었을 뿐 군현의 치소(治所)가 있는 읍에도 시전은 발달되어 있지 않았다.

전통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도시들이 농촌을 배후지로 하여 구성되어 있으며 또한 서로간에 경제적인 의존관계가 높았기 때문에, 설사 시장을 상설화하려는 상인들의 욕구가 있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주된 수요자인 농민의 구매력이 어느 정도 향상되었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시장이 상설화되기는 힘들었고 또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대신 그러한 곳의 장날 간격은 5일보다 더 줄어 2~3일로 좁혀지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정기시장의 형성

전통 농민사회의 시장이 정기성을 띠는 이유?

첫째는 공급자의 입장으로, 이들이 하나의 시장에만 의존해서는 충분한 이익을 거둘 수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집에서 키우는 몇 마리의 닭이 낳는 달걀은 매일 시장에 나가 팔 만큼의 수량이 되지 못한다. 농민의 생산규모는 이와 같이 5일 간격으로 열리는 시장 하나에만 의존하더라도 충분하며 그 대신 하나의 시장에서 많은 고객을 대할 수 있어 좋은 것이다.

둘째는 소비자의 입장으로, 시장의 정기성은 여행거리를 줄이는 방법이 된다. 농민들이 전통적인 소비규범은 검약을 강조하며 또 자급자족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시장에 매일 나갈 필요가 없다.

셋째는 교통운송수단으로, 정기시장은 이것이 발달하지 않은 지역에서 존재한다는 점이다.

예> 농촌시장의 움직임 - 전라남도 광양군

1798년 1924년 1938년 현 재
읍내장(1 · 6) 읍내장(1· 6) 읍내장(1· 6) 읍내장(1· 6)
옥곡장(4 · 9) 옥곡장(4 · 9) 옥곡장(4 · 9) 옥곡장(4 · 9)
섬거장 (5 · 10) 섬거장 (5 · 10) 섬거장 (3 · 8) 섬거장 (3 · 8)
사평장(1 · 6) 사평장(1 · 6) 신원장(2 · 7) ×

괄호 안은 개시일(開市日)



표에서도 볼 수 있듯이 1938년에 간행된 문정창의 『조선의 시장』에는 사평장이 없어지고 대신 신원장이 나타났으며 따라서 개시일도 바뀌게 된 것은 바로 이 지역의 시장유통이 이제는 해로보다는 육로에 더 의존하게 되었음을 나타내는것이다.

[광양 장길의 위치와 장시일]      ㅡ 주요도로  ◎ 장의 위치  
                                            - - 장길       ● 역의 위치 [광양 장길의 위치와 장시일]      ㅡ 주요도로  ◎ 장의 위치  
                                            - - 장길       ● 역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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