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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의전

동대문에서 본 종로(1880년) 동대문에서 본 종로(1880년)
동대문에서 본 종로(1910년) 동대문에서 본 종로(1910년)
1905년의 종로거리 1905년의 종로거리
육조관아 1900년 육조관아 1900년
1899년의 종로거리 1899년의 종로거리
1880년의 남대문로 1880년의 남대문로
현재 종로의 주단점 현재 종로의 주단점
2004년 종로거리 2004년 종로거리
2004년 종로거리 2004년 종로거리
2004년 종로거리 2004년 종로거리
2004년 종로거리 2004년 종로거리
고증자료 고증자료

명 칭 : 육의전(六矣廛)
시 대 : 조선시대 선조(宣朝) 이후(1567∼1608)
설 명 : 육의전(六矣廛)은 서울에서 으뜸가는 시전이다.
육주비전(六注比廛), 육부전(六部廛), 육분전(六分廛), 육장전(六長廛), 육조비전(六調備廛), 육주부전(六主夫廛) 등은 다 육의전을 지칭하는 말이다. 순조 원년(1801)에 전의 수가 여덟 개로 늘어났으므로 팔주비전(八注比廛)이라는 말도 생겼다. "주비"는 수(首), 장(長) 즉 으뜸 우두머리라는 의미를 가지므로 육주비전이란 서울의 시전 중에 으뜸이 되는 여섯 개의 수전(首廛)이라는 뜻이 된다.

조선 태조 때 서울 종로 연도에 세운 공랑상점인 시전 중에서도 규모가 큰 상점을 골라 이와같이 육의전이라고 부른 것은 인조 이후부터의 일이다. 육의전이 자리잡고 있던 거리를 종루, 또는 운종가(雲從街)라고 하였다. 세종 22년(1440년)에 운종가 십자로 한 가운데에 동서 다섯 칸 남북 네 칸의 종루가 세워졌는데 이후로 운종가는 주로 종루(鍾樓)라고 불렸다.

그러다가 영조 20년(1760년)에 옛 지명을 다시 찾아 운종가로 고쳤다. 운종가는 현재 보신각이 있는 종로 네거리를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연화방(지금의 연건동 일대), 서쪽으로는 혜정교(광화문 우체국 동쪽 복청교 자리), 남쪽으로는 훈도방(지금의 을지로 2가), 북쪽으로는 안국방(지금의 견지동)까지를 말한다.

자료참조 : 『조선시대 생활과풍속』/ 서문당 /『시장의 사회사』 / 정승모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