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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

원천자료 원천자료
고증자료 고증자료

명 칭 : 금관
시 대 : 조선 후기(19세기)
설 명 : 조선시대 문무백관이 조복(朝服)에 착용하던 관모(冠帽).
원단(元旦), 국경일, 대제례(大祭禮), 조칙의 반포, 진표(進表) 시에 백관의 조복(朝服)과 함께 착용한다. 이를 금관조복(金冠朝服)이라고 한다. 원래 이 관(冠)의 제도는 중국 명나라의 제도를 본 뜬 것으로 검은색 모에 둘레가 있어 앞면 둘레는 너비가 그다지 넓지 않으나 뒷면 둘레는 위로 치솟아 작은 각을 이루게 하였으며, 또한 앞면 둘레의 가운데 부분에서부터 치켜 올린 뒷면 둘레의 가운데 부분에 이르기까지 반월형의 면지(面紙)를 장식하였는데 이 면지에는 밑에서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흑색사로 종선(縱線)을 베풀어 이를 양(梁)이라 하였다.

양의 수에 따라 품위(品位)의 상하를 구별하였는데,『경국대전(經國大典)』 <예전 의장조(禮典 儀章條)>에 의하면 1품관은 5량관, 2품관은 4량관, 3품관은 3량관, 4, 5, 6품관은 2량관, 7, 8, 9품관은 1량관으로서 이 제도는 『대전회통 大典會通』에서도 동일하게 시행되었다. 그러나 고종이 명의 제도와 같은 황제에 올라 이등체강의 원칙을 고쳐 명의 제도와 일시 같아졌었다. 이후 1900년의 문관 대례복 제식을 구미식 관복으로 바꿔 금관도 조복과 함께 사라졌다.

자료참조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