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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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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자료 고증자료

명 칭 : 탕건
시 대 : 조선 후기(19세기)
설 명 : 탕건은 망건의 덮개로 쓰거나 갓 아래 받쳐 쓰던 관모의 하나이다.
이것은 망건과 함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감싸고 상투를 가리기 위한 것으로 사용되었다. 본래 망건 위에 탕건을 쓰고 그 위에 반드시 갓을 얹어 쓰는 것이 관례였으나, 집안에서는 갓 대신 탕건만 쓰는 풍조가 늘어나면서 점차 독립된 모자의 구실을 하게 되었다.

탕건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 형태를 보아 중국의 복두와 사모 등의 영향을 받아 생긴 것으로 짐작된다. 탕건의 형태는 앞이 낮고 뒤가 높아 중간에 턱이 져있어 사모(紗帽)의 양각(兩脚)이 없는 형태와 유사하다.

탕건은 말총·인모 등을 소재로 하는데 처음 만들 때는 주로 말총으로 만들고 수선을 할 때는 인모로 하였다. 부드러운 느낌과 유연성으로 인하여 착용감이 좋고 견고하며, 땀이나 기름때에 잘 오염되지 않을 뿐 아니라 세탁도 용이하였다.

탕건의 만드는 방법에 따라 홑탕건과 겹탕건, 그리고 바둑탕건으로 구분된다. 바둑탕건은 탕건의 무늬가 바둑판모양과 같아서 지어진 이름이다. 탕건의 기본적인 형태는 같으나 절어가는 방법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되었다. 탕건틀을 크기에 따라 받쳐 놓고 탕건의 모양대로 형태를 잡아가며 결은 후에, 외형을 견고하게 굳히기 위하여 탕건틀에 끼운 채로 삶아내어 완성한다. 외형이 완성되면 참먹을 진하게 갈아 바르고 햇볕에 말려서 완성하였다.

탕건을 만들기 위하여 다양한 공구가 발달하였다. 먼저, 삶아도 썩지 않을 만큼 단단한 나무를 탕건모양으로 잘라서 탕건틀을 만들었다. 머리의 크기에 따라 여러 가지 크기가 있는데 모양은 대동소이하다. 그리고 가장 가는 바늘에 말총을 꿰어 세밀하고 고운 바닥을 만들었다. 총칼은 말총을 끊을 때 사용하는 소형칼인데 길이는 7∼8㎝ 정도로 자루없이 사용하였다. 동뜸과 합뜸, 박죽, 연발 등은 탕건의 형태를 만들 때 사용되는 공구이고 자감낭은 탕건을 삶을 때 쓰며, 먹사지는 염색할 때 사용하였다.

선조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여 조선말기에는 제주도에서만 한 해에 수 만개의 탕건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895년 단발령 이후 옷차림 풍속이 크게 변모하면서 탕건의 수요기반이 해체되었다. 탕건장은 무형문화재 제 67호로 지정되었으며 제주도에는 탕건을 짜면서 부르는 '탕건노래'가 전한다.

자료참조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