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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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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노리개
시 대 : 조선 후기(19세기)
설 명 : 한복 저고리의 고름 또는 치마허리에 차는 여성 장신구의 일종.
노리개는 저고리 겉고름이나 안고름 또는 치마허리에 차는 패물의 장식으로 화려하고도 섬세하며 또한 다양하여 궁중에서 일반 평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여자들이 즐겨 찼다.

신라시대에는 요대(腰帶)에 갖가지 장식품, 즉 요패(腰佩)를 달았다. 이는 고려시대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서긍의 ≪고려도경(高麗圖經)≫을 보면, 고려귀족 계급 부녀들이 허리띠에 금방울 · 금향낭을 패용했다고 한 것을 볼 수 있다. 고려후기에 접어들면서 점점 저고리 길이가 짧아져 허리띠에만 차던 것을 옷고름에도 차게 되었다. 그 후 조선시대에는 대부분 옷고름에 달았다.

노리개는 궁중·상류 계급에서 평민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에게 애용되어 온 것으로 계절, 재료, 크기에 따라 패용 위치나 사용법이 달랐다. 금 · 은 노리개는 주로 가을·겨울에 사용하였고, 5월 단오부터는 일제히 옥·비취 노리개 또는 옥잠도같은 한 개 짜리 노리개를 찼으며, 8월 보름부터는 일제히 삼작 노리개를 찼다.

노리개는 띠돈[帶金], 끈목[多繪] 및 주체가 되는 패물과 매듭, 술 등으로 구성된다. 끈목은 동다회를 주로 쓰는데 띠돈과 패물, 술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며 매듭을 맺는다. 띠돈은 노리개의 맨 윗부분에 달려 있는 고리로서 노리개 전체를 옷끈에 다는 역할을 한다. 사각형 · 원형 · 꽃형 · 나비형 등의 형태로 만들고 띠돈의 겉면에는 여러 가지 꽃·불로초·용 등의 동식물문과 길상문을 새긴다. 노리개는 몸체의 수효에 따라 몸체가 1개인 경우 단작(單作)노리개, 3개인 경우에는 삼작(三作)노리개, 5개인 경우에는 오작(五作)노리개라고 불렀다.

이 중 삼작노리개는 노리개 세 개를 함께 패용하는 것으로, 달려 있는 주체의 진귀함과 크기나 규모에 비례해 대삼작(大三作) · 중삼작(中三作) · 소삼작(小三作) 등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또는 재료와 형태에 따라 구분하기도 했다. 대삼작 노리개는 가장 크고 호화로운 것으로 주로 궁중에서 패용했고, 중삼작 노리개는 궁중이나 상류계급, 소삼작 노리개는 젊은 부녀나 어린이들이 패용했다. 단작 노리개는 하나만으로 된 노리개로 경사시는 물론이고 일상시에도 찼다. 그밖에 향갑 · 향낭 · 침낭 · 장도와 같이 실용적인 면에서 찬 것도 있었다.

노리개의 재료로는 금속류로 금 · 은 · 동, 옥석류로 백옥 · 홍옥 · 비취 · 자마노 · 청강석 · 금강석 · 공작석, 보패류로 밀화 · 산호 · 진주 · 호박 · 금패 · 대모 · 색사 · 주단 · 금은사 등이 쓰였다.

노리개는 하나의 호사스런 장식품이기 이전에 그 시대의 사회적 여건 속에서 안정된 조화를 이루며,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어 나가고자 하는 여성의 지혜와 소망이 담겨 있다. 외형상 섬세하고 다채로운 장식이면서, 그 안에는 부귀다남(富貴多男)·불로장생(不老長生)·백사여의(白事如意) 등의 현세적인 행복관을 바탕으로 하는 여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었다.

노리개는 당시 모든 여성들에게 애용되었으며, 친가나 시가에서 예물로 받기도 하고, 친밀한 사이에 선물로 교환하기도 했으며, 이를 여자들에게 물려주는 풍습도 있었다. 또한 양반계급에서는 집안에 전래하는 노리개를 자손 대대로 물려줌으로써 그 가계의 표시로 삼기도 하였다. 또한 모양새와 색에 따라 그 배경인 의복 상·하의의 색채와 조화를 이루는 역할을 하며, 짧은 저고리 길이와 치마 길이에 대한 의복 전체의 조화도 이루어 주었다.

자료참조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