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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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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은장도
시 대 : 조선 후기(19세기)
설 명 : 몸에 지니는 자그마한 칼로 일상생활에 쓰기도 하고 호신, 자해 및 장식의 역할도 한다.
장도(粧刀) 중 차게 되어 있는 것은 패도(佩刀)라 하고, 주머니 속에 넣는 것은 낭도(囊刀)라 한다.고구려에서는 남자들이 이 작은칼과 숫돌을 차고 다녔는데 왼쪽에는 숫돌을 차고 오른쪽에는 오자도를 찼다. 또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의 『고사통(故事通)』에 “지금은 구습(舊習)이 되었지만 남녀의 옷고름에 차는 장도는 그 형체와 패용(佩用) 방법이 순전히 몽고풍이 분명하다”는 설명에 근거하면 우리나라 남녀 장도의 패용은 고려가 원에 복속한 후부터 비롯었으며,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작은칼은 당시 호신용으로 쓰이면서 고기나 과일 같은 것을 먹을 때 뿐만 아니라 생활의 여러 측면에서 이용되었다. 그리고 칼에 갖가지 장식을 함으로써 실용적인 용도와 함께 장식용으로도 쓰였다.장식에 따라 갖은 장식과 맞배기로 나누는데 갖은 장식은 장식이 복잡하고, 맞배기는 단순한 편이다. 칼을 꾸미는 재료에 따라 금 · 은 · 오동 · 백옥(白玉) · 청강석(靑剛石) · 호박(琥珀) · 대모(玳瑁) · 산호(珊瑚) · 상아(象牙) · 쇠뼈 · 후단 · 먹감 등의 이름을 머리에 붙여 백옥장도, 대모장도, 먹감장도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장식의 무늬에 따라 안태극장식장도 또는 오동입사장식장도 등으로도 부른다.

칼날의 한 면에는 남녀간의 사랑과 의의를 표시하여 '일편단심'이라는 글자를 새긴 것, 칼자루와 칼집에 십장생무늬와 길상문(吉祥紋)을 새긴 것도 있었다. 결혼을 축하하거나 성인이 된 것을 기념하여 장도를 주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풍습에는 본인의 행복을 바라며 온갖 불행에서 보호해주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장도는 가격이 비싸 부유한 계층에서만 찰 수 있었고, 일반인들은 마음대로 찰 수 없었다.

남자의 경우 저고리 고름이나 허리띠에 명주실로 짜서 만든 끈목을 고리를 꿰어서 차고, 여자의 경우에는 치마 속 허리띠에 차거나 노리개의 주체로 삼아 삼작노리개 중 하나로 차기도 하지만 따로 단작으로 꾸며 겉에 보이지 않게 차기도 했다. 난리 때 정절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차고 있던 장도로 자결한 이야기도 있다.

소나무와 사슴 문양이 음각된 이 은장도를 통해, 장신구 · 규방부녀의 호신용 · 일상의 주머니칼로써의 역할 뿐아니라 조선 여인의 윤리관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자료참조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