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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재래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곳 만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장터의 중요한 역할과 기능이기는 하지만, 그와 함께 장터는 이웃과의 교류의 터전이요 우리 민중의 뜨거운 삶의 숨결이 넘치는 곳이다. 또한, 민족의 얼과 전통, 민중의 희로애락이 깃든 곳이며, 인간적 체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그리고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더욱이 교통 · 통신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온갖 풍문을 듣고 이야기하던 곳이었다. 이처럼 우리의 재래시장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 국토 전국 곳곳에 자리잡고 민중과 더불어 존속해 오며 많은 역할과 기능을 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재래시장은 현대적 마켓의 편리함으로 인해 옛 재래시장의 중요성이나 고마움에 대해서는 막연히 나마 인식하고 있으나, 그것을 절실히 깨닫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전남 구례장] 구례장안에 남아있는 장옥(場屋). 장옥은 상인들이 구획을 정해 각각 자기의 물건을 파는 점포이다. 현재는 장옥 안에서  물건을 파는 점포는 몇몇에 불과하다. [전남 구례장] 구례장안에 남아있는 장옥(場屋). 장옥은 상인들이 구획을 정해 각각 자기의 물건을 파는 점포이다. 현재는 장옥 안에서  물건을 파는 점포는 몇몇에 불과하다.
사료1. 『성종실록』권 27, 성종 4년 2월 임신

상설 상점의 설립은 백성들이 바라는 것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경인년(1470)에 흉년이 들었을 때 전라도의 백성들이 서로 모여 상점을 열었는데, 그 이름을 장문(場門)이라 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그것에 의존하였으니, 이는 바로 지방에 상점이 만들어질 기미였다. 호조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지방 수령들에게 물었다. 그때 수령들이 그 이해관계를 잘 살피지 않고 전에 없었던 것이라는 이유로 모두 이를 막고자 했다. 나주목사 이영견 혼자 만이 이를 금지시키지 말 것을 청하였으나 호조에서 금지시키고 말았다.

[성종실록 3년 7월 기사] 무안 등에 시장이 개설되고 있는 내용이 보인다. 『시장을 열지 못하게 하라』, 김대길. [성종실록 3년 7월 기사] 무안 등에 시장이 개설되고 있는 내용이 보인다. 『시장을 열지 못하게 하라』, 김대길.
사료2. 『명종실록』권 6, 명종 2년 9월 을해, 이황의 상소문

각 지방의 장시가 발달하여 상업에 종사하는 백성들이 많아지고 도둑이 날뛰게 되어 정부에서 이를 금지시켰다. 흉년이 심한 때는 민간의 교역이 모두 장시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장시를 금지하고 탄압하면 백성들이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전에도 흉년이 든 해에는 장시를 금지하지 않고 백성들이 그곳을 토대로 하여 생활하게 함으로써 위급을 면하게 하였다. 지금 흉년을 당하여 장시를 모두 금지시키면 백성들이 입는 피해가 클 것이니 금지령을 철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료3. 『선조실록』권 212, 선조 40년 6월 을묘

임진왜란 이후 백성들은 정처없이 교역으로 살아가는 것이 마침내 풍속이 되었다. 농업에 힘쓰는 자는 적고 상업을 쫓는 자는 많아 식자들이 한심하게 생각한 지 오래다. 흉년에는 으레 도적이 많다. 한 고을에서 장시가 열리는 곳이 적어도 서너 군데는 되어 ........ 한 달 30일 내에 장시가 열리지 않는 날이 없다.

사료4.『만기요람』재용편 5, 향시

향리 밖에서 장을 여는 것은 한 달에 여섯 장인데 1일 6일, 2일 7일, 3일 8일, 4일 9일, 5일 10일을 보통 이용한다. 송도는 방식이 서울과 같고, 경기도 102곳, 충청도 157곳, 강원도 68곳, 황해도 82곳, 전라도 214곳, 경상도 276곳, 평안도 134곳, 함경도 28곳이 있다. 길주 북쪽 삼갑(三甲)의 각 고을에는 본래 장시가 없고 민간인들 사이에서 평상일에 매매한다. 경기도 광주의 사평장과 송파장 그리고 안성 읍내장과 교하 공릉장, 충청도 은진 강경장과 직산 덕평장, 전라도의 전주 읍내장과 남원 읍내장, 강원도의 평창 대화장, 황해도의 토산 비천장과 황주 읍내장 그리고 봉산의 은파장, 경상도의 창원 마산장, 평안도의 박천 진두장, 함경도의 덕원 원산장이 가장 큰 장들이다.

『사료로 보는 우리역사 2』, 돌배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