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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과정

1898년 3월 10일, 민중들은 만민공동회라는 이름으로 외세의 배격과 의회 설립 등을 주장하며 일련의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7개월 후인 10월 28일부터 11월 2일까지 6일에 걸쳐 개최되었던 관민공동회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도 하였다. 시위 현장은 충군애국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을 넘어서 하나의 대한제국의 인민임을 확인하는 축제의 장이었다. 인민의 힘과 그 가능성을 깨닫는 현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정부 측에서 시위를 주도한 인물 17명을 체포함으로써 상황은 다시 급변하였다.
잠깐의 기쁨과 휴식을 누릴 여유도 없이 시위 군중들은 다시 거리로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1898년 11월 5일부터 12월 23일까지 황제 친유(親諭) 이후의 6일 간을 제외한 40여 일 동안의 철야농성에 돌입하였다. 경무청과 고등재판소, 그리고 궁궐 앞 육조거리를 점거한 시위대는 여러 차례에 걸쳐 상소를 올렸다. 이를 통해 고종 황제의 항복 선언을 받아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황제와 수구파정부는 보부상과 군대를 동원하여 시위대를 해산함으로써 대한제국의 개혁을 위한 마지막 시도는 좌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