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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만민공동회(1898년 3월 10일)

1898년 3월 10일, 만민공동회라는 이름으로 외세의 배격과 의회 설립 등을 주장하는 민회를 개최하였다. 약 1만 명의 인민들이 종로 백목전 부근에 모여 집회를 한 사건을 의미한다. 만민공동회 명칭은 1898년 3월 12일 독립신문 잡보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만민공동회는 러시아의 절영도 저탄소(絶影島 貯炭所 : 현재의 부산 영도) 조차(租借)를 반대·규탄하였다. 또한 1897년 8월부터 문제가 되었던 러시아 군사교관과 재정고문의 철수 및 노한은행(露韓銀行)의 철거를 요구했다. 이틀 후인 3월 12일에는 또 다시 서울 남촌에 사는 평민 수만 명이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였다. 이들은 출동한 시위대 군인들을 투석전으로 물리치고, 이틀 전과 마찬가지로 절영도 조차 반대, 러시아 훈련교관 및 재정고문의 철수를 결의했다.
이 두 날의 공동회 집회 사건은 정부 관료와 서울 주재 외교관들 인식에 큰 영향을 미쳤고, 대한제국 정부는 절영도 조차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절영도 대신 청국의 요동반도로 해군기지를 이동하기로 결정하였다. 3월 17일에는 재정고문과 군사교관의 철수를 통고했으며 노한은행도 철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