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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공론장

만민공동회는 당시 서울의 중심가에서 크게 세 곳을 옮겨 다니며 열렸다. 만민공동회 발생의 이 지리적 공간은 당시 인민들에 의해 자신들의 의견을 황제와 정부에게 전달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던 장소로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이 공간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집회와 토론이 일상화된 정치적 소통 공간, 즉 근대적 공론장의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만민공동회 중에서 특히 의미가 깊었던 대표적 집회를 선정하였다. 선정된 집회는 최초의 만민공동회, 연좌법·노륙법 반대집회, 철야장작불집회, 만민공동회와 황국협회의 격돌, 황제의 친유, 김덕구의 장례식 등이다. 1898년 한 해 동안에 일어났던 이 사건들을 역사적 발생 순서에 따라 세 곳의 지리적 공간에 배치하여 재현하고자 하였다. 이 홈페이지 이용자들은 이러한 만민공동회의 재현을 통해서 생생한 근대토론문화를 역사의 한 특정한 시점에서, 그리고 특정한 공간 속에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만민공동회 등의 주요 사건이 발생했던 공간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서민들의 공간인 종로이다. 오늘날 종로 1가 영풍문고 근처에 있던 백목전 앞과 종로 거리가 주요 집회 장소였다.
둘째, 오늘날 세종로가 된 광화문 앞 육조거리이다. 당시 민중들은 정부의 잘못된 처사에 항의하기 위해 육조거리로 진출하여 경무청(현재 미국대사관 근처), 법부와 고등재판소(세종문화회관 근처), 중추원 앞에서 밤샘 항의집회를 열었다.
셋째, 오늘날 덕수궁이 된 경운궁 인화문 앞이다. 인화문은 덕수궁 남쪽 담 중간에 있던 정문(正門)이었는데,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당시 민중들은 고종황제에게 직접 호소하기 위해 경운궁으로 이동하여 집회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