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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좌법 · 노륙법 반대집회

연좌법과 노륙법은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된 법이었다. 연좌법은 죄인의 가족에게 중형을 내리는 법이었고, 노륙법은 죄인의 스승, 아들, 남편, 아비를 죽이는 법이었다.
1898년 9월 11일 고종황제와 황태자가 커피를 마신 후 토하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의 주범으로 전 러시아 통역관인 김홍륙이 지목되었고 관련자들이 체포되었다. 이 ‘김홍륙의 독차사건’을 계기로 수구파 및 중추원 의장 신기선을 비롯한 34인의 의관이 연좌법과 노륙법을 부활해야 한다는 청원서를 올렸다. 또한 경무사 민영기는 이 사건으로 체포된 부녀자와 무고한 사람들까지 무참히 고문하였다. 결국 고문을 받던 공홍식이라는 이가 자살시도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독립협회는 통상회에서 법부의 죄인에 대한 고문과 중추원의 노륙법 및 연좌법의 부활 시도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자유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이에 따라 반대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연좌법, 노륙법 부활 반대 집회는 10월 1일 중추원 문 앞에서 첫 집회를 개최하였다. 이들은 중추원 앞에서 신기선의 사임과 고등재판소에의 고발을 의결함과 동시에 노륙법 및 연좌법 부활 시도를 규탄하였다. 결국 연좌법, 노륙법 반대 집회는 이후 수구파 정부를 몰아내고, 개화파 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집회로 이어졌다.
연좌법, 노륙법 반대집회는 중추원, 고등재판소, 경운궁 순으로 계속해서 열렸다. 집회 참가인원은 계속해서 늘어나 약 1만여 명 이상이 참석하였다. 또한 종로 시전상인들의 단체인 황국중앙총상회와 협력하여 종로 네거리 시전 상인들이 철시를 주도하였다. 심지어 소학교 학생들까지 참여하여 수구파 정권에 위협을 가했다.

<참고>

1. 김홍륙 독차사건 관련 기사
그저께 밤에 커피차를 황태자 전하께서 많이 진어하신 후 곧 토하시고 정신이 혼미하사 위석하시고, 황상폐하께서는 조금 진어하신 후 조금 있다가 토하시고 … 수라 맡은 사람들의 조심 아니한 것은 황송한 일이로다.
(독립신문, 9월 13일자 잡보)

2. 9월 27일 신기선이 독립협회에 답장한 편지
“갑오경장 이래로 사형은 다만 목매달아 죽이는 것만으로 한정했습니다.…(중략)…우리나라의 풍속을 헤아려 볼 때 대역 죄인에 대한 형벌을 허둥지둥 목매달아 죽이는 것으로만 처리해버린다면, 결코 귀신과 사람의 분노를 다 씻을 수 없고 역적을 쓸개를 다 갈아버릴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법률을 개정한지 일주년이 되지 않아서 을미년(1895) 8월의 일찍이 유례 없던 역적의 변고가 발생했고, 계속해서 반역을 도모한 범죄사건이 없는 해가 없다가 금번의 번고에 이르러 극도에 달했는데, 이는 분명히 역적을 다스리는 것이 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이하 중략)….”

(정교저, 조광편, 『대한계년사 3』, 소명출판)

3. 연좌법·노륙법 반대집회 관련 기사

(천은망극) 어저께 하오 여섯시에 한성판윤 리채연씨가 칙교를 받들고 인화문 밖 회중 소청에 나와 포고하는데 조칙 대개는 여러 번 승비한 아래 퇴거치 아니함으로 소두 윤치호는 중견책하고 즉시 물러가라 하셨는지라. 리채연씨의 말이 인제는 七신을 다 물리치셨으니 어찌 물러가지 아니하리요 한 대 회중에서 공의한 후 대황제 폐하께 만세와 황태자 전하께 천세와 동포형제 천세를 부른 후에 각 학교에서도 만세를 부르고 다 헤어졌는데 독립협회 회원들은 사무소로 갔다더라. (독립신문 10월 13일자 잡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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