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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민공동회

이 집회는 현재 우리가 실시하고 있는 국가의례적 요소가 도입된 집회였다. 집회의 형식과 내용을 볼 때, 관과 민의 대표가 함께 참석하여 의사결정을 내렸다는 점에서는 근대 의회적 요소를 갖추고 있다.
당시 행사장 풍경을 보면 종로거리를 목책으로 둘러 참석인원을 통제하고, 목책 안에는 인원 3-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여러 개의 차일을 쳤다. 그 안에는 각종 학교에서 빌려 온 3-4000개의 의자를 놓았다. 이런 장비는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에서 빌려온 것으로 추측되며, 당시 이처럼 대규모 대중집회를 치를만한 장비들은 충분히 구비되어 있었다. 본부석은 청중석보다 훨씬 높게 만들었으며, 중앙테이블과 그 앞에 행사를 주최하는 3인을 위한 의자가 놓였다. 그 뒤에는 외국 공사관 직원을 비롯한 주요 내빈을 위한 의자를 놓았다.
행사장 곳곳에는 태극기를 십자로 어긋나게 걸었다. 학생을 비롯한 내빈 청중들의 머리에는 종이로 만든 꽃을 꽂았다. 본부석과 청중석 사이 좌우에는 취주악대와 학생으로 구성된 합창단이 도열하여, 주로 충군애국을 주제로 하는 애국가를 불렀다. 경우에 따라서는 병정들이 총을 들고, 도열하여 행사장 좌우 양편 또는 뒤편까지 도열하여 위엄을 높였다.
이와 같은 기본양식은 1896년 11월 21일 거행된 ‘독립문 정초식’에 처음 나타났는데, 매우 짧은 기간에 급속하게 전파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학교나 단체에서 대중적 집회 또는 운동회를 열고 있는 방식은 이 시기에 시작되었던 것이다.
관민공동회의 회의방식도 주의해 볼 대목이다. 우선, 이 회는 세 사람의 개회사로 시작되었다. 독립협회 의장 윤치호, 의정부 참정 박정양, 백정 박성춘이 연설을 시작하였다. 모든 연설을 들은 후 참석자들은 독립협회가 제안한 ‘헌의 6조’에 찬성의 뜻을 표하고, 각부 대신이 모두 ‘가’(可)자를 서명하였다.
<참고>

1. 정부대표 의장 박정양의 연설
“어제 밤에 이 자리에 와서 폐하의 말씀을 전하고 돌아가 아뢰니, 폐하께서 지시한 말씀 안에 ‘인민들이 차가운 곳에서 날을 보내고 있다. 오늘은 정부의 여러 대신들이 일찍부터 나아가 합석하여 나라를 이롭게 하고 백성을 편리하게 하는 그 방책을 들어보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협의한 뒤에 각각 흩어져 돌아가도록 한다면, 즉시 돌아가 아뢰겠습니다.”
(정교저, 조광편, 『대한계년사 3』, 소명출판.)

2. 백정 출신 인민대표 박성춘의 연설
“이놈은 바로 대한에서 가장 천한 사람이고 무식합니다. 그러나 임금께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뜻은 대강 알고 있습니다. 이제 나라를 이롭게 하고 백성을 편리하게 하는 방도는 관리와 백성이 마음을 합한 뒤에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차일(遮日: 천막)에 비유하건대, 한 개의 장대로 받치자면 힘이 부족하지만 만일 많은 장대로 힘을 합친다면 그 힘은 매우 튼튼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관리와 백성이 힘을 합하여 우리 대황제의 훌륭한 덕에 보답하고 국운이 영원토록 무궁하게 합시다.”
(정교저, 조광편, 『대한계년사 3』, 소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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