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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야창작불집회

11월 4일 정부는 관민공동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중추원신관제를 의정부참정 박정양의 이름으로 공포한다. 11월 5일 민중들은 독립협회를 대표하는 의원을 뽑는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4일 밤, 조병식·유기환·이기동 등 수구파 관료들은 이른바 익명서 사건을 조작한다. 11월 5일에 독립협회가 독립관에 모여 박정양을 대통령으로, 윤치호를 부통령으로 하는 공화정을 도모한다는 게 그 내용이다. 분개한 고종은 주도 세력들의 체포와 독립협회의 혁파를 명하였다. 그리하여 윤치호를 제외한 17명과 기타 회원 2명, 총 19명이 체포되었다. 민중과의 약속을 지킬 만큼 강단을 지니지 못한 황제 고종의 어이없는 배신이었다. 경무청 앞에 모인 시위 군중들은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에 돌입하였다.
<참고>

1. 독립협회 회원 17인의 체포

재작일 효두(曉頭)에 김정기씨가 특정으로 경무사를 피임하여 독립협회 회원 중 이상재·한치유·정학모·유맹·염중모·조한우·이건호·방한덕·현제창·김두영·윤하영·유학주·정교·남궁억·홍정후·변하진 제씨와 기타 회원 이 인 합 십구 인을 본청에 착수하여 조석은 경무청에서 공궤하고 본회 사무소에 있는 일체 문부를 다 경무청으로 수립한지라. 본회에서 즉일로 경무청 앞에 개회하고, 수천 명 회원들이 다 자현취수(自現就囚)하기를 자원하더라. 그때에 한성판윤 이호익씨와 경무사가 조칙을 받자와 본회에 나아와 조칙 사의를 낭독하며 다 물러가기를 권면하거늘, 양홍묵·이무영 양씨가 관인 두 분을 대하여 설명하기를 “향일 종로에 모인 만민공동회가 다 나라를 위하여 폐막을 교구하려고 한 일이오 자기 일신상을 위함이 아니어늘 오늘 회원 십구 인이 갇히었으니 우리도 함께 갇히어 생사를 같이 하겠노라” 하거늘 참석한 회원이며, 방청하던 제원이며 내빈왕객들이라도 다 소리를 크게 하여 그 가함을 허락하더라.
(매일신문 1898년 11월 7일자)

2. 철야장작불집회에 참여한 사람들

여인충의
어떤 과부 한 명이 고등재판소 문전에 제진한 만인의 충의 하는 의리를 공감하야 자기 집을 삼백원에 팔아 2백원을 만민공동회에 기증하였음
아동의리
장용남이라고 하는 10세 되는 아이가 고등 재판소 문전 만민모인데 와서 충분한 마음으로 대단히 입바르고 경계 있는 말을 많이 하였던 고로 경무청에서 별순검 셋을 장동의 부모를 대하야 말하기를 그 아들 용남이가 만일 만민 모인데 다시 가서 정부 대신의 일로 연설을 하거드면 필경 좋지 못할 터이니 다시 못가게 하라 한 즉 장동의 말이 내 부모는 다만 나를 나은 사람이지 충의지심으로 의리르 말하는 대야 누가 하라 말라를 하리오 이런 어리석고 압제하는 수작은 다시 말나고 그 별순검들을 준절히 책망하였다더라.
청인의리
고등재판소 문전에 만민이 모힌데 청국 사람이 또 한 만민의 충의를 흠감하야 돈 4원을 의죠 하였다니 동양을 보존하라는 뜻을 치사하노라
(1898. 11. 11. 독립신문 잡보)
나무장수, 술장수
나무 장수 한 사람은 장작 수십 마를 실어 와서 밤을 지새는 화구에 쓰도록 하였으며, 과상은 단배(배) 3석을 보내어 회원의 목마름을 축이게 하였으며, 주상은 새로 빋은 술 수척을 보내어 회원의 회원의 추위를 막는데 돕도록 하였고....
(황성신문 1권 57호 1898년 11월 11일자, 신용하, 1975, 『독립협회연구』, 일조각, p421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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