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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공동회와 황국협회의 격돌

1898년 11월 21일 새벽 동틀 무렵 보부상들은 종로에서 집회를 열고 만민공동회를 규탄한 후, 두 패로 나뉘어 만민공동회를 습격했다. 한 진영은 남대문로를 거쳐 정동병문으로 향하고, 또 다른 진영은 길영수의 지도 아래 새문언덕(서대문으로 향하는 광화문)을 거쳐 인화문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좌우 양편에서 비무장의 만민공동회를 습격하여, 많은 부상자를 내고 만민공동회를 해산시켰다. 고종은 만민공동회가 해산된 줄로 알았고, 보부상들에게 백반과 육탕을 내어 격려했다. 시민들은 만민공동회의 피습 소식을 듣고 정동병문으로 모여들었고 종로의 상인들도 시장을 철시한 채 합세하였다. 인산인해를 이룬 인민들은 돌멩이를 산처럼 쌓고 보부상을 추격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파수를 보는 병정들의 도움을 받고, 새문 밖으로 달아났다. 이들을 추적했던 인민들은 다시 종로로 돌아와 대규모 만민공동회를 개최했다. 이날 서울 인민들은 5개 지역에 따라 기호(旗號)에 맞추어 대오를 정비하고, 보부상에게 반격을 가하기 위해 돈의문으로 나아갔다. 결국 마포에서 만민공동회에 참여한 인민들과 보부상들이 격돌하였는데, 이 싸움에서 김덕구가 사망하였다.

<참고>

김덕구 죽음 관련 기사

명동 사는 김덕구씨가 충애하는 목적을 사랑하여 만민 공동회에 참례하였다가 천만 의외에 부상패의 난봉(亂棒)중에 불행히 죽었다는 고로, 돌아간 일요일 독립협회 통상회에서 회원들이 공의하여 가라대 우리 독립 협회 회원들은 종로 공동회 만민과 전국 이천만 동포 형제를 대표한 총대라. 공동회 만민과 전국 동포가 곧 독립 회원이요, 독립 협회가 곧 전국 동포와 공동회 만민인즉, 만민 공동회와 전국 동포와 독립 협회가 무슨 분간이 있다 하리요.
금번에 부상패에게 맞아죽은 김덕구씨는 비록 독립협회 회원은 아니라도 만민 공동회에 참례하였던 이인즉, 공동회 만민은 우리들 대표시킨 전체라. 우리가 어찌 그 전체 되는 만민 중에 충의로 죽은 김씨의 죽음을 모른다 하여 심상히들 지내리요 하고, 독립 협회 회 중에서 우선 돈 십원을 그 죽은 김씨의 본집으로 보내어 상복들을 지어 입게 하고, 수전 위원 삼인을 뽑아 은행소에 앉아서 장례비 의조하는 돈을 받게 하며, 김씨의 장례에 호상할 위원 십인을 뽑아 일을 보살피게 하고, 음력 시월 십팔일 오전 팔시에 독립 협회 회원들이 일제히 사무소로 모여 김씨의 시신 있는 대로 가서 발인하여 산소로 가서 후히 장사 지내고 묘 앞에다 대한 충애하던 의사(義士) 김덕구씨의 비라 새겨서 세우기로 결정이 되었는데, 독립 협회 회원들과 방청하는 만민 제씨가 각기 충애하는 마음으로 김씨의 죽은 것을 의리로 알며 영화로 여기고 비감한 눈물들을 금치 못하며 각기 자원하여 당장에 장례비 백원이 되었다더라.
독립 회원 아닌 이들도 충애지심이 간절한 이들은 각기 높은 의리로 장례비들을 은행소로 와서 자원들 하여 오늘부터 오일 내로 다들 대기로 작정하였다는데, 사람들이 다 말하기를 김씨는 충애하다가 죽었으니 참 대장부라 죽어서 꽃다운 이름을 천추에 유전한다고 모두 칭찬들 하였다더라.

(독립신문 1898년 11월 29일자 잡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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