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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구의 장례식

신을 깁는 신기료 장수였던 김덕구는 황국협회와의 투쟁 중에 사망하였다. 수만 명의 백성이 종로에서 숭례문 밖 갈월리에 이르는 그의 장례행렬에 함께 하였다. 즉 김덕구는 충군애국하다 죽음을 맞이한 한반도 최초의 열사가 되었던 것이다. 김덕구의 장례식은 사농공상의 신분제가 철폐되고 ‘인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사상에 기반 하지 않고는 생겨날 수 없는 근대적 의미의 성격을 갖는다. 그의 장례는 연지당 가의 정구소(停柩所)에서 한 시간 동안 노제를 지낸 뒤 장지로 향하였는데, 맨 앞에는 ‘대한제국의사광산김공덕구지구(大韓帝國義士光山金公德九之柩)’라고 쓴 명정(銘旌)을 여러 개 세웠으며, 그 다음 상여가 따랐다. 상여 위에는 두 사람이 전후에 올라 요령을 흔들며 노래를 하였다. 이 때 부른 노래는 일종의 애국가였다. 상여 뒤에는 김씨의 부인이 소교를 탄 채로 뒤를 따랐으며, 소교 뒤로는 각 학교와 동리의 기호(旗號)를 높이 세우고 학생과 시민들이 따랐다.

<참고>
(독립신문 1898년 12월 2일 <의사장례>잡보기사-장례식 때 부른 노래)

어화 우리 동포들아 / 충군애국 잊지말아
대한의사 김덕구씨는 / 나라를 위하고 동포를 사랑하다가
옳은 의리에 죽었으니 / 그런 의리가 또 어디 있더냐
어화 우리 회원들아 / 의리 이자 잊지말아
의리로만 죽거드면 / 만인 인심 흠모하야
김덕구같이 장사하겠노라 / 어화 우리 만민들은
제 몸 하나는 잊어버리고 / 나라 일만 열심하여라
김덕구의 일신은 살아서는 무명타가 / 죽으니까 의사로다
사는 것을 좋아말게 / 죽어지니 영화로다
김덕구의 의사이름 / 천추만세에 유전이라(독립신문 1898년 1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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