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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구의 장례식

(1) 일시 : 1898년 12월 1일
(2) 장소 : 종로, 남대문, 갈월리
(3) 주요 줄거리

1) 12월 1일 오전 10시, 만민공동회원 수천 명이 종로부터 서서(西署) 쌍용정 김덕구의 시신을 염하는 장소에 이르렀다. 이들은 김덕구의 시신에 화려한 비단옷을 입히고 염습을 하였다.

2) 만민회 회원들은 관을 운반하여 남대문 밖 연못에 갔다가 되돌아 와서 천막 안에 안치했다. 학생들은 제문을 지어 읽고 제사를 지내고, 찬양회 회원들은 술을 따라 바친다.

3) 맨 앞에는 ‘대한제국의사김덕구지구’라고 쓴 명정이 여러 개 선다. 그 다음 상여가 따른다. 상여 위에는 두 사람이 전후에 올라 요령을 흔들며 노래를 한다. 이 때 이들은 당시 새롭게 유행하기 시작한 노래를 부른다.

어화 우리 동포들아 / 충군애국 잊지 말아
대한의사 김덕구씨는 / 나라를 위하고 동포를 사랑하다가
옳은 의리에 죽었으니 / 그런 의리가 또 어디 있더냐
어화 우리 회원들아 / 의리 이(二)자 잊지 말아
의리로만 죽거드면 / 만인 인심 흠모하야
김덕구 같이 장사하겠노라 / 어화 우리 만민들은
제 몸 하나는 잊어버리고 / 나라 일만 열심 하여라
김덕구의 일신은 살아서는 무명타가 / 죽으니까 의사로다
사는 것을 좋아말게 / 죽어지니 영화로다
김덕구의 의사이름 / 천추만세에 유전이라

4) 상여 뒤에는 김씨의 부인이 작은 가마(小轎)를 타고 뒤를 따른다. 또 그 뒤로는 김덕구가 사망하던 날 같은 장소에서 시위를 하다 부상을 당한 이인영이 가마를 타고 따른다. 그 뒤로는 각 학교와 각 동리의 旗號를 높이 세우고 학생과 시민들이 뒤를 따른다.

5) 이 날 김덕구의 만민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구경하였다. 이들은 남대문 앞 연지당 가의 정구소(停柩所)에서 한 시간 동안 노제를 지낸 뒤 장지인 갈월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