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조선유배문화역적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습니다

연관목차보기

역적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습니다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충성심과 의분심이 간절하여 역적과는 한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지 않으려는 사람들입니다. 한나라 성제의 조 태후(趙太后)는 침실을 잠가 놓고 음탕한 짓을 하였다는 이유로 쫓겨났으며,

원천자료 보기

유학 이지호가 상소하였다.

“요즘 초야에 묻혀 있는 여러 선비들이 잇달아 글을 올려 중대한 논의가 나온 지 지금 벌써 10일이 되었습니다. 중외의 여론이 모두 역적을 토벌하려고 하는데 전하께서는 사사로운 은정에 사로잡혀 아직도 비답을 내리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올린 글도 여러 날 동안 접어두고 계십니다.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충성심과 의분심이 간절하여 역적과는 한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지 않으려는 사람들입니다. 한나라 성제의 조 태후(趙太后)는 침실을 잠가 놓고 음탕한 짓을 하였다는 이유로 쫓겨났으며,

당나라 숙종의 장 황후(張皇后)는 담을 죽이고 권력을 농락하였다는 이유로 독약을 먹여 죽였으며, 송나라 철종의 유 태후는 정사에 간섭하고 음란한 짓을 하였다는 이유로 억지로 죽게 하였습니다.

이 세 황후가 죄로 인하여 폐출되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물론 다른 말이 없었고 후세에도 이론을 제기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정말 괴이한 것은 국가와 함께 고락을 같이 할 대신이 이미 이러하고 삼사의 시종하는 신하가 이러하며 반궁의 많은 선비들이 이러하니,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는 어떤 신하와 함께 국가와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시렵니까.

심한 사람들은 중대한 논의가 이미 벌어졌는데도 서로 교묘하게 회피하고 있습니다. 사간 남이준은 관직을 제수하자 정사하였고, 정언 김세렴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차라리 전하를 저버릴지언정 감히 역적을 옹호하는 자들의 입에는 오르내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인자하고 관대하시므로 필시 심하게 죄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고 이처럼 피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때에 이 두 사람에게 엄한 죄를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뒷일을 잘 처리하는 것은 물론 여러 사람의 뜻을 일치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일을 회피한 이 두 사람의 죄를 먼저 다스린 다음 이어 여러 선비들이 올린 글을 내려보내서 두 정승과 삼사의 관원들을 불러 이것을 보게 한 다음 중대한 논의를 상의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전하께서 만일 이 일을 지연시키면서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신다면 흉악한 자들이 그들의 무리를 규합하여 기회를 틈타 일을 벌여 종묘 사직을 위태롭게 할 것이니, 그럴 경우 전하께서는 몸을 어디에다 두시렵니까.

길흉의 갈림길은 그 사이가 미세합니다. 용단을 내려야 하는데 내리지 않으시면 도리어 재앙을 당하게 됩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유념하셔서 채납하도록 하소서.”

<광해군일기 9년 11월 19일조(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