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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유배문화김만중(金萬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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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金萬重)

1665년에 정시문과에 장원 급제한 후, 정언•지평•수찬•교리 등에 역임하였다. 1673년 효종 비의 상 때 자의대비의 복상문제로 남인과 대립하던 중, 남인 허적을 비판한 죄로 유배되었다. 그 후 다시 등용되어 예조참의∙공조판서∙대사헌 등을 역임했다. 1687년에 귀인 장씨의 도움으로 관직에 진출한 조사석을 비판하다가 선천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으나, 다시 박진규∙이윤수 등의 탄핵을 입어 남해에 유배되었다. 배소에서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쓴 <구운몽>을 남겼다


이 름 : 김만중(金萬重)
시 대 : 17C
테 마 : 정치적 사건
신 분 : 양반
연 보 : 1665년 정시문과에 장원급제, 정언∙지평∙수찬∙교리 등에 역임
1674년 예송논쟁으로 남인이 집권, 남인 허적을 비판한 죄로 유배되었다가 1년 후에 석방
1675년 숙종이 즉위하자 다시 등용되었으나 남인 윤휴 등을 비판하다가 파직
1679년 예조참의로 다시 등용.
1687년 귀인 장씨의 도움으로 관직에 진출한 조사석을 비판하다가 선천에 유배되었다가 1년 후에 석방.
1689년 탄핵되어 남해에 유배. 이곳에서 <구운몽>을 집필함.
1692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