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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유배문화박영효(朴泳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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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효(朴泳孝)

철종의 부마로서 정계에 진출한 김옥균은 갑신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으나 청의 개입과 일본의 배신으로 정변을 일으킨 지 3일만에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갑오개혁 때 귀국하여, 김홍집-박영효 연립정부를 수립하였으나 1895년에 민비 시해음모 죄로 다시 일본에 망명하였다. 1907년 또다시 귀국하였으나, 고종의 양위를 찬성한 대신들을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1년 간 제주에 유배되었다. 한일합방 이후 일본의 회유정책으로 후작을 받았다. 이후 조선은행 이사, 동아일보사 초대회장, 중추원의장, 일본귀족원의원 등을 지냈다.


이 름 : 박영효(朴泳孝)
시 대 : 19C
테 마 : 정치적 사건
신 분 : 양반 왕족
연 보 : 1872년 철종의 딸 영혜옹주와 결혼하여 철종의 부마가 됨
1878년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역임
1879년 혜민서 제조에 역임
1880년 의금부 판의금부사에 역임
1882년 임오군란으로 제물포조약이 체결되자, 조약 이행을 위한 특명전권대신 겸 제3차 수신사로서 일본으로 출국. 최초로 태극기를 만들어 사용함.
1884년 우정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해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일본의 배신과 청군의 개입으로 삼일천하로 끝남. 일본으로 망명함.
1894년 갑오개혁 추진.
1895년 왕비시해음모죄로 혐의로 일본에 2차 망명.
1907년 비공식으로 귀국. 궁내부대신으로 임명됨. 고종의 양위에 찬성한 대신들을 암살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제주도에 유배됨.
1910년 한일합방. 일제의 회유책의 일환으로 후작의 작위를 받음
1918년 조선은행 이사 역임.
1920년 동아일보 발기인으로서 초대 사장에 취임
1939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