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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유배문화송시열(宋時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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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宋時烈)

송시열은 인조∙효종∙현종∙숙종 대에 서인의 영수로서 활동하였다. 특히 송시열의 주도로 효종과 함께 추진한 북벌계획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듬해 효종이 죽자 그 계획은 중지되었고, 현종 대의 두 차례의 예송 끝에 덕원으로 유배되었다가 그 뒤 여러 곳으로 이배되었다. 경신환국으로 정계에 다시 등용하였으나 장희빈이 아들을 낳자마자 왕세자로 책봉되자 반대하다가 제주에 안치되고 정읍에서 사사되었다.


이 름 : 송시열(宋時烈)
시 대 : 17C
테 마 : 정치적 사건
신 분 : 양반
연 보 : 1633년 생원시에 장원급제.
1635년 봉림대군(뒤의 효종)의 사부가 됨.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따라 남한산성에 들어감.
1637세 왕이 청에 항복하고 왕자들이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가자 낙향함.
1649년 효종이 왕위에 올라 장령에 등용했으나 공서파(인조반정에 가담하여 공을 세운 서인세력)인 김자점이 영의정에 임명되자 사직.
1650년 충주목사•사헌부집의•동부승지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향리에 은거하면서 후진양성에만 전념.
1658년 이조판서에 올라 효종과 함께 북벌계획을 추진.
1659년 자의대비 복상문제로 제1차 예송. 예송을 통해 남인을 제압함. 효종의 장지를 잘못 옮겼다는 탄핵이 있자 벼슬을 버리고 귀향.
1668년 우의정에 올랐으나 좌의정 허적과의 불화로 사직.
1671년 우의정에 오름. 허적의 후임으로 좌의정에 오름.
1674년 제2차 예송. 남인에게 패배, 실각 당하여 덕원으로 유배됨. 웅천•장기•거제•청풍 등지로 이배됨.
1680년 경신환국으로 유배에서 풀려나 다시 등용됨.
1689년 숙의 장씨가 낳은 아들(뒤의 경종)의 세자책봉을 반대하다가 제주로 유배. 국문을 받기 위해 서울로 압송되던 길에 정읍에서 사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