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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유배문화이원익(李元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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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익(李元翼)

이원익은 1569년에 등용하였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의 피난 길을 호송하고, 평양탈환작전에 공을 세웠다. 1598년에는 영의정이 되었는데 유성룡을 변호하다가 사직, 은퇴하였다. 1608년에 영의정을 지냈으나 1615년 광해군의 폐모론을 반대하다가 홍천에 유배되었다가 1618년에 석방되었다.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80세의 나이에 왕을 호종하기도 하였다.


이 름 : 이원익(李元翼)
시 대 : 16C, 17C
테 마 : 정치적 사건
신 분 : 양반
연 보 : 1547년 출생.
1564년 사마시에 합격
1569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승문원에 등용.
1573년 성균관전적, 호조•예조•형조 좌랑, 황해도도사에 역임
1575년 이이(李珥)의 천거로 정언에 역임한 후에 교리•수찬•지평•동부승지 등을 지냄.
1583년 승정원이 탄핵을 받자 자신만이 파면을 면할 수 없다고 하여 5년간 야인으로 지냄
1587년 이조참판 권극례의 추천으로 안주목사에 기용. 이후 형조참판, 대사헌, 호조•예조 판서, 이조판서 겸 도총관, 지의금부사 등을 역임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평안도순찰사가 되어 왕의 피난길을 선도하고 군사를 모아 일본군과 전투.
1593년 이여송(李如松)과 합세하여 평양 탈환.
1595년 우의정 겸 4도체찰사에 임명 받은 뒤 영의정이 됨.
1600년 좌의정,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영남지방과 서북지방을 돌아봄.
1604년 광해군 즉위 후 영의정에 역임.
1615년 인목대비 폐위론이 반대하다가 홍천, 여주에 유배.
1623년 인조가 즉위하자 영의정이 됨. 광해군을 죽여야 한다는 여론에 반대함.
1624년 이괄의 난 때 왕을 호위함.
1627년 정묘호란 때 도체찰사로 세자를 호위함. 고령으로 사직한 뒤 낙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