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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유배문화이항복(李恒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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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복(李恒福)

이항복은 1580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 저작·박사·정언·수찬 등의 언관직을 역임하였다. 1589년에는 예조정랑으로 정여립의 옥사를 다스리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호위하고, 병조판서로서 명에 군대 파견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1599년 좌의정을 거쳐 이듬해에 영의정이 되었다. 그러나 광해군이 즉위한 뒤 대북파의 득세로 정치적 입지가 좁아졌고, 인목대비의 폐모론에 반대하여 북청에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이 름 : 이항복(李恒福)
시 대 : 16C, 17C
테 마 : 정치적 사건
신 분 : 양반
연 보 : 1580년 알성문과에 급제
1583년 저작•박사•전적•정언•수찬•이조정랑 등에 역임
1590년 정여립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평난공신(平難功臣)이 됨.
1591년 정철의 죄를 태만히 처리한 죄로 파직되었다가 다시 등용됨.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와 왕비∙왕자 등을 호위함. 이조참판•형조판서•오위도총부도총관•대사헌•병조판서•직제학 등을 지냄.
1598년 우의정∙좌의정∙도체찰사•영의정 등에 역임
1602년 성혼을 변호하다 정철의 일당이라는 탄핵을 받고 사직.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좌의정•도체찰사에 역임
1611년 우의정에 역임.
1617년 광해군 폐모 논의에 반대하다가 관직이 삭탈됨.
1618년 북청에 유배되어 사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