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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유배문화정약용(丁若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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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丁若鏞)

정약용은 정계에 등용하였으나 가톨릭교인이라는 이유로 남인 공서파의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다.
그러나 화성 설계 및 축조, 거중기 발명 등의 업적을 인정받아 석방되어 암행어사∙병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주문모 사건에 연루되어 좌천되었다가 위기를 느껴 사직, 신유박해로 장기에 유배되고,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강진으로 이배되었다. 다산초당에 자리를 잡고 18년 간 학문에 몰두하였다.
석방된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74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 름 : 정약용(丁若鏞)
시 대 : 18C, 19C
테 마 : 정치적 사건, 사회적 사건
신 분 : 양반
연 보 : 1783년 회시에 합격, 진사가 되어 어전에서《중용》을 강의함.
1784년 서학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
1789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 가톨릭교인이라는 남인 공서파의 탄핵으로 해미에 유배됨. 10일 만에 해배되어 지평으로 등용됨.
1792년 수찬에 즉위. 서양식 축성법을 기초로 한 성제(城制)와 기중가설(起重架說)을 지어 올려 수원성(水原城) 수축에 기여함.
1794년 경기도 암행어사
1795년 주문모사건에 둘째 형 정약전과 함께 연루되어 좌천됨.
1799년 병조참의가 되었으나 모함을 받아 사직.
1801년 신유박해로 체포되어 장기로 유배됨. 황사영 백서사건이 일어나자 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이배됨. 다산 기슭에 있는 윤박의 산정을 중심으로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18년 간 학문에 몰두.
1818년 유배에서 풀렸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감.
1836년 74세에 세상을 떠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