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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유배문화정철(鄭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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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鄭澈)

정철은 별시문과의 장원급제로 정계에 진출하여 암행어사, 직제학, 승지 등을 지내던 중 1578년에 진도군수 이수의 뇌물사건으로 동인의 공격을 받아 사직하였다. 2년 후 강원도 관찰사로 등용되어 그곳에서《관동별곡》과 《훈민가》를 지었다 우의정에 있던 중 정여립 모반사건이 발생하자 기축옥사로 동인을 숙청하였으나, 다음해 건저문제 때 동인 이산해의 계략에 빠져 진주에 유배되었다. 임진왜란 때 부름을 받아 사은사로 명에 다녀온 뒤 동인들의 모함을 받아 사직했다.


이 름 : 정철(鄭澈)
시 대 : 16C
테 마 : 정치적 사건
신 분 : 양반
연 보 : 1562년 별시문과 장원급제
1566년 함경도 암행어사에 역임
1578년 직제학, 승지 등에 역임. 진도군수 이수가 뇌물을 받은 사건을 둘러싸고 연루되어 동인의 공격을 받자 사직.
1580년 강원도관찰사에 역임. 《관동별곡》《훈민가》 16수를 지음
1585년 관직을 떠나 낙향하여 《사미인곡》《속미인곡》등을 지음.
1589년 우의정으로 발탁.
1590년 좌의정에 역임.
1591년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건의하였으나 신성군을 총애하던 왕의 노여움을 사 진주로 유배, 강계로 이배됨.
1592년 임진왜란 때 다시 부름 받아 왕을 의주까지 호종, 강화도관찰사에 역임.
1593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동인의 공격을 피해 강화에 은거하던 중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