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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유배문화조헌(趙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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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헌(趙憲)

    조헌은 통진 현감으로서 내노(內奴)를 형벌로 죽였다는 죄를 입어 부평에 유배되었다. 3년 후 석방되었으나 재등용되었으나 공주제독관에 역임하던 중 동인이 이이∙성혼을 추최하려는 것을 반대하자 파직되었다. 1589년에는 동인을 공박하다가 길주에 유배되었으나 같은해 정여립 모반사건이 일어나 풀려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주를 탈환, 이어 금산으로 향했으나, 전공을 시기하는 관군의 방해로 의병이 대부분 해산되고, 700명의 의병으로 금산전투에서 분전하다가 의병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이 름 : 조헌(趙憲)
    시 대 : 16C
    테 마 : 정치적 사건
    신 분 : 양반
    연 보 : 1565년 성균관 입학.
    1567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1572년 궁중의 불사봉향(佛寺封香)에 반대하다가 국왕의 진노를 삼.
    1575년 통진 현감으로 있을 때 내노(內奴)의 횡행죄를 엄히 다스리다가 죽인 죄로 부평에 귀양.
    1580년 귀양에서 풀려남.
    1581년 공조좌랑, 전라도사에 역임.
    1582년 계모 김씨를 모시기 위해 자청하여 보은현감으로 나감.
    1584년 대간의 모함으로 파직. 옥천으로 낙향
    1587년 일본사신을 배척하는 소를 올려 국왕의 진노를 삼.
    1589년 지부상소(持斧上疏)로 나라의 폐단을 극론하다가 길주에 유배
    1591년 일본의 도요토미(豊臣秀吉)가 겐소(玄蘇) 등을 사신으로 보내 명나라를 칠 길을 빌리자고 하자, 일본사신을 목 벨 것을 상호함.
    1592년 옥천에서 의병을 모아 왜군을 물리침.
    1604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으로 책록됨.
    1734년 영의정에 추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