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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문화 - 한적/고서적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조선 태조에서부터 조선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03)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로 기록하였다. 총 1,893권 888책으로 되어있으며, 조선시대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등 다방면에 걸쳐 기록되어 있다. 사료의 편찬에 있어서 사관이라는 관직의 독립성과 기술에 대한 비밀성도 보장되었다. 실록을 편찬하는 작업은 다음 왕이 즉위한 후 실록청을 열고 관계된 관리를 배치하여 펴냈으며, 사초는 임금이라 해도 함부로 열어볼 수 없도록 비밀을 보장하였다.

고종/순종실록

이왕직에서 편찬한 고종과 순종시대의 기록이다.

대동야승(大東野乘)

조선 개국 초부터 인조 때까지 약 250년 동안에 나온 역사관계의 만록(漫錄).야사(野史).일기.전기.수필.설화(說話) 등의 저술과, 역대 왕조의 일사(逸事) 및 명인들의 일화(逸話) .소담(笑談) 등이 광범하게 수집되어 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쓰이고 있다.

장릉지

박경여(朴慶餘)와 권화(權和)가 앞서 윤순거(尹舜擧)가편찬한 <노릉지(魯陵誌)>2권에다 속지(續誌) 2권을 증보하여 1711년에 개제(改題)한 책이다. 구지(舊誌)라고도 하는 <노릉지>는 1441년(세종 23)에서 1653년(효종 4)의 사실을, 속지는 1662년(현종 3)에서 1740년(영조 16)의 것을 수록하였다. 구지는 사실(事實).분묘(墳墓).사묘(祠廟).제축(祭祝).제기(題記).부록 등으로 되었고, 속지는 복위(復位).봉릉(封陵).제기(題記).육신복관(六臣復官).건사제문(建祠祭文) 등을 내용으로 한다.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조선 후기의 학자 이긍익(李肯翊)이 지은 조선시대 필사본 야사총서(野史叢書). 저자가 부친의 유배지인 신지도에서 42세 때부터 저술하기 시작하여 타계할 때까지 약30년 동안에 걸쳐 완성하였다. 400여 가지에 달하는 야사에서 자료를 수집 .분류하고 원문을 그대로 기록하였다. 원집(原集) 33권, 속집(續集) 7권, 별집(別集) 19권 등 3편으로 되어 있다. 원집에는 태조 이래 현종까지의 283년간(1392∼1674) 각 왕대의 주요한 사건을 개인적 의견을 가하지 않고, 인용한 책 이름을 밝혀서 적어 나갔고, 각 왕대의 기사 끝에는 그왕대의 상신(相臣).문신(文臣).명신(名臣)의 전기(傳記)를 덧붙였다. 속집은 숙종조 47년간(1674∼1720)의 일들을 원집의 형식대로 적었다. 별집은 조선시대의 역대관직(歷代官職)을 비롯하여 각종 전례(典禮).문예(文藝).천문.지리.변위(邊圍) .역대 고전 등 항목별로 그 연혁을 수록하고 역시 인용한 책 이름을 부기하였다.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조선시대 구황실(舊皇室)의 족보(族譜). <선원보략(璿源譜略)> 또는 <선원록(璿源錄)>이라고도 한다. 숙종 때 처음 간행한 것으로 역대 왕이 새로 즉위 할 때마다 중교(重校).보간(補刊)한 것을 1897년(고종 34)에 합간(合刊)하였다. 총서(總敍).범례(凡例).선계(先系).계서도(繼序圖).세계(世系).팔고조도(八高祖圖)등이 수록되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조선시대에 왕명(王命)의 출납(出納)을 관장하던 승정원에서 매일 취급한 문서(文書)와 사건을 기록한 일기. 원래 조선 개국 초부터의 일기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어 1623년(인조 1)부터 1894년(고종 31)까지 270여 년간의 일기만이 현존한다. 1744년(영조 20)의 승정원 화재, 1888년(고종 25)에 또다시 승정원에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된 부분이 많았고 개수하여 보완하였다. 1894년 갑오경장(甲午更張) 이후 관제(官制)의 변경에 따라 <승선원일기(承宣院日記)>, <궁내부일기(宮內部日記)>, <비서감일기(秘書監日記)>, <비서원일기(秘書院日記)>, <규장각일기(奎章閣日記)> 등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국권침탈 때까지 계속 작성되었다.

의금부노정기(義禁府路程記)

조선시대 의금부에서 사용하던 노정기(路程記)로서 전국 333개소 지역에 대하여 거리와 관련 역원을 표시하고 있어서 유배인을 압송하는 데 사용하였던 자료이다.

속음청사(續陰晴史)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김윤식(金允植)의 일기로 1887년(고종 24) 5월 29일부터 1921년 12월 31일까지 35년간의 일기이다. 권1∼7은 면천(沔川)에서 7년간 귀양살이할 때의 기록으로, 사생활과 함께 탐관오리와 화적(火賊)이 들끓던 당시의 사회상과 서울의 정계(政界) 소식이 작성되어 있다. 권8은 외무대신으로 있을 때의 동학농민운동.청일전쟁.갑오개혁.을미사변.아관파천 등과 광주(廣州)에 내려가 대죄(待罪)하고 있을 때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권9∼11은 제주 귀양살이 때 두 차례의 민요(民擾 : 방성칠의 난, 이재수의 난), 그리고 가톨릭교도와의 관계가 기록되어 있다. 권12는 지도(智島)에서 귀양살이할 때의 러일 관계, 권13∼14는 중추원의장으로 있을 때의 망국(亡國) 사실, 권15∼18은 3 .1운동을 비롯한 민족운동에 관한 기록과 대종교(大倧敎)에 대한 기록 등을 각각 수록하고 있다. 부록으로는 3.1운동 당시 일본 정부에 대하여 조선의 독립을 요구한 대일본장서(對日本長書)가 수록되어 있다. 한말의 격변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쓰이고 있다.

고산유고(孤山遺稿)

윤선도(尹善道)의 시문집으로 1798년(정조22)에 간행하였다.
내용은 권1에 오언(五言).칠언고시(七言古詩) 및 율(律).절(絶).집고(集古).회문(回文), 권2에 소(疏), 권3의 상(上)에는 소(疏) 및 예설(禮說), 하(下)에는 서(書), 권4에는 서단(書單), 권5 상(上)에는 서(書), 하(下)에는 제문(祭文).회문(回文).축문.조약(條約).서(序).기(記).설(說).비명(碑銘).잡저(雜著).의(議).잡록(雜錄), 권6 상별집(上別集)에 시(詩).부(賦).논(論).책(策).표전(表箋), 하별집(下別集)에가사(歌辭), 부록에 시장(諡狀)이 적혀 있다.
특히 하별집에는 국문학상 귀중한 자료인 고산의 시조 75수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다른 문집과는 달리 희귀한 국문학 작품을 싣고 있어 한국 시가(詩歌)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사화기략

대조선(大朝鮮) 개국 491년 고종 즉위 19년 7월 25일, 박영효가 특명전권대신 겸 수신사(特命全權大臣兼修信使)의 직함을 받아 국서를 받들고 임오군란에 관한 일로 일본에 사신으로 갔을 때 쓴 저서이다.

몽와집(夢窩集)

조선 후기의 문신 김창집(金昌集)의 시문집. 이 중에서 유배와 관련된 기록인 <남천록>은 1721년(경종 원년)에 남쪽으로 유배되어 이듬해 거제도에서 사사 될 때까지, 그가 유배지로 가는 여정에서 지은 시문과 정치상황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담고 있다.

오륜전비언해(伍倫全備諺解)

1721년(경종 1)에 사역원(司譯院)에서 간행한 중국어 학습서로 명나라 구준(丘濬)이 지은 <오륜전비기>를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1696년(숙종 22) 사역원에서 번역에 착수했다가 중지, 1709년(숙종 35) 사역원 제조(提調) 김창집(金昌集)이 편찬을 계속하여 완성시키고, 1721년에 유극신(劉克愼)이 발간비용을 부담하여 간행하였다. 오륜전(伍倫全) .오륜비(伍倫備) 형제가 대화하는 형식으로 20여 종의 책에서 좋은 구절을 따다가 엮은 것으로, 각 한자 아래에는 중국의 아속음(雅俗音)을 역주하였다.

만천유고

이승훈(1756∼1801)의 문집. 이승훈의 본관은 평창(平昌), 자는 자술(子述), 호는 만천(蔓川)이며 이동욱(李東郁)의 아들로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이가환(李家煥)의 생질이며, 정약용(丁若鏞)의 매부이다. 1794년 조선에 잠입한 주문모 신부의 체포로 그의 영입 관련자로 지목받아 한때 예산으로 유배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이가환 . 정약용 . 홍낙민(洪樂敏) 등과 같이 체포되어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었다.

자산어보

정약전(丁若銓)이 흑산도 유배 중에 쓴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필사본 어류학서(魚類學書)로 1814년(순조 15)에 간행하였다. 1801년(순조 1) 신유사옥으로 흑산도(黑山島)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근해의 수산생물을 실지로 조사하고 채집한 기록이다. 책명에서의 자산(玆山)은 흑산(黑山)이라는 뜻이다. 수산동식물 155종에 대한 각 종류의 명칭.분포.형태.습성 및 이용 등에 관한사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현재 동해와 서해에 회유하는 청어와 고등어의 실태를 그당시와 비교하는 데 유일한 자료이다.

백사북천일록(白沙北遷日錄)

이항복 선생이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모사건에 반대하여 함경도 북청(北靑)으로 귀양 갔을 때인 1617년(광해군 9) 11월 1일부터 1618년 8월 7일까지의 일기(日記)로 이항복의 제자인 정충신(鄭忠信)이 기록하였다. 이항복이 배소(配所)에서 죽자 정충신이 그 유해를 모셔 안장하였는데, 그 내력과 함께 끝에는 광해군이 폐모하려 할 때 이항복이 헌의(獻議)한 수초(手草)도 함께 수록하였다.

묵재일기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서 을사사화(乙巳士禍) 때 화를 입은 묵재 이문건(李文楗, 1494~1567)의 일기.
본관 성주(星州). 자 자발(子發). 호 묵재(默齋).휴수(休叟). 정자(正字) 이윤탁(李允卓)의 아들로, 조광조(趙光祖)의 문하생. 1513년(중종 8) 사마시에 합격.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 조광조 일파가 화를 당하자 조광조에 대한 의리를 지켜 조상(弔喪)하였다. 이후 기묘사화를 주도한 남곤(南袞).심정(沈貞) 등에게 미움을 받아 1521년 안처겸(安處謙)의 옥사사건이 일어나자 낙안(樂安)에 유배되었다. 1527년 사면되고, 1528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주서(注書).정언(正言).이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김안로(金安老)의 협조로 순탄한 관직생활을 했으나, 1545년 명종이 즉위한 후 추성보익공신(推誠保翼功臣)에 오르고, 이해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훈적이 삭제되었으며, 조카 이휘(李輝)가 '어진 임금을 선택하여 세워야 한다'고 한 말로 문초를 받자 이에 연루되어 성주에 유배되었다가 그 곳에서 죽었다. 23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경사(經史)와 시문에 힘썼으며, 특히 주역(周易)을 좋아하였다.

정헌영해처감록(靜軒瀛海處坎錄)

조선 후기의 문신인 정헌 조정철(趙貞喆, 1751~1831)의 제주도에서의 기록. 1777년(정조 1) 강용휘(姜龍輝) 등이 정조(正祖)를 시해하려고 한 사건에 연루되어 죄가 참형(斬刑)에 해당되었으나 우의정 조태채(趙泰采)의 증손임이 참작되어 제주에 유배되고, 뒤에 정의(旌義) .광양(光陽) .토산(兎山) 등지로 이배(移配) 되었다.
1810년(순조 10) 풀려나와 정언(正言) .동래부사(東萊府使)를 거쳐 13년 충청도 관찰사가 되었다. 1816년 이조참의가 된 뒤 형조판서.좌참찬 등을 거쳐 1831년(순조 31)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가 되었다.

북헌집(北軒集)

북헌 김춘택(金春澤)의 시문집으로 <북헌거사집(北軒居士集)>이라고도 한다. 시(詩).서(書).서(序).기(記).변(辨).녹(錄).제문(祭文).논(論).소(疏).지문(誌文).언행록(言行錄).산고(散藁).설(說).책(策).문답(問答) 등을 수록하였다. 문집 가운데 소(疏)는 사료(史料)로서 중요하다. <산지칠가(山池七歌)>, <제주 동천 적거기(東泉謫居記)>, <몽설 증송경휘(夢說 贈宋景徽)>, <피체록(被逮錄)>, <섭해록(涉海錄)>, <후 피체록(後被逮錄)>, <산지사기(山池舍記)> 등 유배생활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한훤당집, 경현록(景賢錄), 가범(家範)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인 한훤당 김굉필(金宏弼, 1454~1504)의 저서와 문집.
김굉필은<소학>에 심취하여 ‘소학동자’라 지칭되었다.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조광조(趙光祖)를 만나 학문을 전수하였다. 1504년 갑자사화로 극형에 처해졌으나 중종반정 이후에 신원되어 도승지가 추증되고, 1517년에는 정광필(鄭光弼) 등에 의해 우의정이 추증되었다. 학문경향은 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로 이어지는 의리지학(義理之學)을 계승하였으며, 치인(治人)보다는 수기(修己)에 중점을 두었다.

서재집(西齋集)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인 임징하(任徵夏)의 시문집. 5대손 헌회(憲晦)가 수집하여 1844년(헌종 10)에 간행하였다. 시(詩).소(疏).계(啓).공장(供狀).서(書).기(記).잡저(雜著).제문(祭文).고문(告文).애사(哀辭).묘지(墓誌).묘표(墓表).행록(行錄) 및 부록에 연보.가장발(家狀跋) 등이 실려 있고, 헌회의 발문(跋文)이 있다. 서재집에 수록된 <남천록>은 제주도로 유배 갈 때의 과정, <감산록>은 적거지인 제주도 감산에서의 생활내용, <수안록>은 유배길에서의 과정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만언사

안조원이 섬으로 유배 갔을 때 쓴 유배가사. 송주석(宋疇錫)이 그의 조부 송시열(宋時烈)이 덕원(德源)으로 유배 갔을 때 따라갔다 와서 지은 <북관곡(北關曲)>과 철종 때 김진형(金鎭衡)이 명천(明川)으로 귀양가서 지은 <북천가(北遷歌)>와 함께 대표적인 유배가사이다.

만분가(萬憤歌)

조선 연산군 때의 학자인 조위(曺偉)가 1498년(연산군4)에 지은 가사. 조위가 1498년의 무오사화에서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전라남도 순천(順天)으로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이다. 누구에게도 호소할 길 없는 슬픔과 원통함을 선왕(先王:성종)에게 하소연하는 심정을 읊은, 한국 최초의 유배가사(流配歌辭)이다.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

조선 전기의 문신인 충암 김정(金淨) 이 제주도에 유배 중에 조카에게 써서 보낸 것으로서 당시의 제주도 지리와 풍토를 아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동계문집(桐溪文集)

조선 중기의 문신인 동계 정온(鄭蘊)의 시문집. 1660년(현종1) 후손이 6권 5책으로 처음 간행하였으며, 그 뒤 속집과 연보가 더하여졌다. 문집의 일반적 구성을 따라 시(詩).기(記).서(序).발(跋).서(書).상소(上疏).비문(碑文) 등이 다양하게 실려 있다. 부록은 허목(許穆)이 지은 행장을 비롯하여 제문 .만시(挽詩) 등 저자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조광조(趙光祖) .조식 등의 저술에 붙인 발문은 저자의 학통을 반영한 것이며, 기자(箕子)에 대한 글은 사림파 인물로서의 조선에 대한 정통론적인 관심을 보여준다. 정유재란 때 어머니와 나라를 지키다 죽은 사람들에 대한 전기는 전란과 그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한 이념적인 노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천가(北遷歌)

조선 철종 때 김진형(金鎭衡)이 지은 유배가사(流配歌辭). 1853년(철종4) 김진형이 교리(校理)로 있을 때 이조판서 서기순(徐箕淳)을 탄핵한 사건으로 명천(明川)에 귀양 갔을 때 유배생활의 고락과 인정, 그리고 귀양에서 풀려 돌아오는 길에서의 견문 등을 읊은 가사이다. 모두 1,029구에 이르는 장편으로서, 가사의 형식을 빌린 기행문이라 하겠으며,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연행가(燕行歌)〉와 더불어 기행가사 문학의 빼어난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중봉집(重峯集)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순절한 조헌(趙憲)의 20권 10책으로 이루어 진 시문집. 초간본은 조헌이 순절한 지22년 뒤인 1613년(광해군 5)에 동학과 의병동지인 안방준(安邦俊)이 그의 유문(遺文)과 사적을 수집.편찬하고, 이정구(李廷龜)의 서문과 강항(姜沆).안방준의 발문을 붙여 15년에 발간하였다. 1698년(숙종 24) 왕명으로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 온 뒤<동환봉사(東還封事)>와 <항의신편(抗義新編)>을 종합.간행하였으며, 그 이전에는 책명이 <유적(遺蹟)><유고(遺稿)><선우록(先憂錄)>으로 되어 있던 것을 <중봉집(重峯集)>으로 통합 및 일원화 하였다. 이 문집은 간기(刊記)로 보아 1740년 왕명에 따라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포집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김만중(金萬重)의 문집. 1702년(숙종28) 아들 진화(鎭華)가 편집 및 간행하였다. 시.소.차(箚).계(啓).제문.서(序).발(跋).행장 등으로 구성되었다.

장릉사보(莊陵史補)

영월에 있는 단종의 능인 장릉(莊陵)에 관한 능지(陵誌). 1796년(정조20) 정조가 이서구(李書九) 등에게 명하여 편찬하게 하였다. 윤순거(尹舜擧)의 <노릉지(魯陵誌)>, 권화(權和)의 <장릉지(莊陵誌)>는 사찬(私撰)으로 불비한 점이 많았으므로 실록(實錄)을 위주로 하고 여러 서적을 널리 참조하여 만들었다. 범례(凡例)는 모두 왕의 결재를 거쳐 이루어졌다.

비해당소상팔경시첩(匪懈堂瀟湘八景詩帖)

1442년(세종 24)에 안평대군(安平大君)이 주도하여 만든 소상팔경시첩이다. 소상팔경이란 중국 후난성[湖南省]의 두 강, 곧 샤오수이강[瀟水]과 샹장강[湘江]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8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말한다. 이곳의 빼어난 절경은 일찍이 여러 문사들의 시와 그림으로 많이 다루어졌다. 안평대군은 송나라 영종(寧宗)이 쓴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를 베끼고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그려 판각한 다음, 고려시대의 문장가 이인로(李仁老).진화(陣華)의 팔경시를 옮겨 적고 김종서.성삼문.박팽년.신숙주.안지(安止).강석덕(姜碩德).최항(崔恒) 등 19명의 친필로 보이는 시문(詩文)을 넣어 두루마리 상태로 꾸미게 했다. 이 가운데 팔경도와 송나라 영종의 팔경시가 빠진 상태에서 45면(面)의 첩장(帖裝)으로 묶은 것이 비해당소상팔경시첩이다. 안평대군의 시와 글씨, 그림 등의 세계를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당대의 저명한 문인학사 19명의 친필과 시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있는 좋은 자료이다. 특히 집현전 학사들이 남긴 자취는 전하는 것이 별로 없어 이들의 시문은 서예사 및 한시 문학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