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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문화 - 시나리오

[ 어린 나이에 죽을 맞이한 비운의 왕 단종 ]
단종 유배 재현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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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영상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과 단종의 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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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영상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 청령포에 도착한 단종과 그의 죽음

2002년 단종제' 때 단종역사관에서 '단종 유배'를 재현한 영상

- 제공 : 단종역사관 -

시놉시스

유인이는 입에 불만이 가득한 채 삼촌을 따라 걸었다. 삼촌이 유인이와 유정이를 데리고 영월에 온 게 아직도 불만이다. 유인이는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멋진 선물을 해주겠다던 삼촌의 말을 따라 차를 탄 게 후회된다. 사실 유인이는 바다나 유원지에 가리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촌은 고리타분한 교과서에나 나올 단종의 생애를 따라 여행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인이는 삼촌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호기심이 생기는 것을 말릴 수 없다. 단종이 유인이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1년 후에 왕위에 쫓겨나고 결국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흥미가 생겼기 때문이다. 과연 극적인 영화처럼 전개되는 단종은, 왜 어린나이에 왕위에서 쫓겨나 죽게 됐었을까?

캐릭터 설정 [단종 (12~17세 남)]

감성이 풍부하고 장난기가 심하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궁궐 밖 외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몹시 강하다.
밝고 명랑했던 만큼 주위에 대한 순수한 신뢰감으로 가득했고 그로인해 백성을 사랑하는 왕이 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삼촌인 수양대군에 의해 왕위에서 쫓거나 유배생활을 하면서 점점 병약하고 의심 많은 인물로 전락하게 된다.

▶ 잠깐 역사 tip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혼자 성장해야 했던 세종의 손자이자 문종의 아들인 조선의 6대 왕 단종은, 그래도 세종이 성삼문이나 박팽년, 신숙주 등에게 그를 잘 보필하라고 일렀기에 어느 정도 권좌가 든든해 보였다.
그러나 그의 삶은 아버지인 문종이 재위 2년 4개월만인 1452년 39세라는 한창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꼬이기 시작한다. 세상 물정을 알 턱이 없는 12살 소년이 권력 최고봉에 올라야 했기 때문이다.

병약한 문종이 일찍 세상을 뜨자 12살의 어린 단종이 왕위를 잇게 된다. 단종에게는 8명의 숙부가 있었는데, 안평대군과 수양대군도 그들 중의 하나다.
야심에 차 있었던 무사 출신의 수양대군은 한명회 등과 세력을 규합하여 단종을 밀어내고 왕좌를 차지한다. 이에 단종은 상왕으로 물러나게 되고, 단종을 따르던 옛 신하를 중심으로 복위운동이 시작된다. 성삼문.박팽년.하위지 등의 집현전 학사를 중심으로 세조와 세자의 암살을 도모했으나 김질의 밀고로 사전에 발각, 사육신이 처형되고 집현전은 폐지된다. 이들 사육신을 세조 또한 '당대의 난신이요, 후세에는 충신이라'고 평가했다 한다.

복위운동이 실패하고 이에 위협을 느낀 세조는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키고 영월 청령포에 유배시킨다. 그러나 수개월 후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이 다시 단종 복위를 꾀하려다 사전에 발각되자, 정인지가 불씨는 사전에 없애야 한다며 단종을 제거할 것을 주장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어린 단종은 사약을 받고 한 많은 짧은 생애를 마친다. 후한을 두려워한 사람들은 시신을 거두기를 꺼렸지만, 당시 영월 호장이었던 엄흥도는 시신을 수습하여 영월 지산에 매장했다고 한다. 지금도 엄흥도가 엄나무가 되어 단종이 있던 서낭당을 지켜주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내려 온다.

캐릭터 설정 [유인 (12세 남)], [유정 (10세 여)], [삼촌 (30세 남)]

유인 : 게으르고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12살 소년.
삼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월에 내려왔지만 역사와 여행에 관심 없다. 자기중심적이고 불만이 가득하다. 이기주의적인 성격 때문에 시시때때로 동생인 유정이와 티격태격한다.

유정 :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해서 역사와 문화에 깊은 관심이 많은 소녀.
오빠 유인이에 비해 활동적이고 적극적이며 호기심이 풍부해서 질문이 많다.

삼촌 : 여행가로 여행일지를 유명 잡지에 기고하고 있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동정심이 많다. 많은 이야기로 유인이와 유정이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

교육효과

많이 알려진 역사적 내용에 현대적인 감각을 결부시켜 신선함을 유도한다. 즉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인물과 사건의 공간적, 시각적 단계를 초월하여 기존의 역사적 상식을 재창조시켜 생생한 현실감을 부여한다. 그로인해 딱딱한 교훈과 규격화된 역사의 지식전달이 아닌 풍부한 상상력이 가능한 재미와 창조적 사고가 가능한 지식 전달에 균형을 맞춘다.
또한 각각의 개인이 보고 느낀 감정과 역사에 대한 활발한 토의가 가능하도록 안내함은 물론 외국 여행을 벗어난 국내여행의 즐거움을 상기시킨다.

내용 구성 [ # 1~# 8 ]

# 1
청룡포에 가기 위해 배를 기다리는 유인이 일행. 주위를 둘러보며 즐거워하는 유정이와 삼촌. 그에 비해 유인이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불만을 토로한다. 그때 삼촌이 청령포에 유배 온 단종이 왕위에서 쫓겨난 사연을 가르쳐 준다.

(청룡포가 유배지가 된 사연 : 청령포는 동·북·서쪽이 깊은 물로 막혀 있는데다가 남쪽은 천길 절벽이 솟아있고 구의봉이 요새처럼 버티고 있어 마치 창살 없는 감옥과 같은 곳이다. 이른바 물동이동이라고 하는 지형으로, 강물이 육지를 휘감아 돌아 섬과 같은 형세를 취하고 있다.)


# 2
청룡포에 가기 위해 배를 기다리는 유인이 일행. 주위를 둘러보며 즐거워하는 유정이와 삼촌. 그에 비해 유인이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불만을 토로한다. 그때 삼촌이 청령포에 유배 온 단종이 왕위에서 쫓겨난 사연을 가르쳐 준다.
(청룡포가 유배지가 된 사연 : 청령포는 동·북·서쪽이 깊은 물로 막혀 있는데다가 남쪽은 천길 절벽이 솟아있고 구의봉이 요새처럼 버티고 있어 마치 창살 없는 감옥과 같은 곳이다. 이른바 물동이동이라고 하는 지형으로, 강물이 육지를 휘감아 돌아 섬과 같은 형세를 취하고 있다.)




# 3
유인이와 유정이는 청룡포에서 단종이 머물렀던 집과 소나무 숲을 기웃거린다. 삼촌은 그런 그들에게 수양대군이 단종을 이곳으로 유배 보낸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해 준다.

# 4
단종은 정순황후에 두 손을 꼭 잡고 놓기를 망설인다.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수강궁(壽康宮)에서 조용히 살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사육신(死六臣)이 단종을 복위시키기 실패하자 세조는 단종을 노산봉으로 강등하고 영월에 유배 보낸다. 단종은 짧았지만 그 험난한 여정 속에 함께 슬픔을 나눈 아내와 생이별을 하게 되자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 5
세조 2년인 1456년 6월 20일. 단종은 열흘 가까이 50여명의 군사 호위를 받으며 5백여 리를 걸었다.

# 6
청령포에 금표비(왕이 있는 곳이니 동서 3백 척, 남북 4백90 척 내에는 얼씬도 말라는 표시 : 영조 2년(1726)에 이곳의 소나무를 함부로 베어내어 가지 말라는 뜻의 금표비를 세웠는데 지금까지 전해진다.)와 단묘재본부시유지비를 바라보는 유인이 일행. 삼촌은 노산대를 손으로 가리키며 단종의 외로움을 설명해 준다.

# 7
노산대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나온다. 그곳에서 씨름에 잠기는 단종을 보여준다. 단종은 한양 쪽을 바라며 아득한 슬픔에 빠진다. 어린 시절 궁궐에서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르고 결국은 생이별한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단종은 문득 돌멩이를 집어 이미 쌓여진 탑에 살며시 올려놓는다.

# 8
왕방연 ‘시조' 비를 바라보는 유인이 일행. 저 넘어 청룡포가 보인다. 삼촌은 단종에게 사약을 전해줬다고 알려져 있는 이가 바로 단종을 서울에서 청령포까지 호송했던 금부도사(禁府都事) 왕방연(王邦衍)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왕방연 시조비가 청룡포 맞은편에 있다.

내용 구성 [ # 9~# 16 ]

# 9
왕방연은 단종에게 절을 하고 배를 탔다. 단종은 조용히 웃으며 떠나는 배를 바라보았다. 왕방연은 어린 임금을 두매 산골인 영월에 두고 돌아가려하니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그는 단종을 바라보며 조용히 시조를 읊조린다.


" 천 만 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 길 예놋다. "
# 10
차를 타고 관풍헌 앞에서 내리는 유인이 일행. 삼촌은 1456년 6월 20일 서울을 떠난 단종이 청령포에 두 달여 머무르다 그해 여름에 난 홍수 때문에 이곳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기게 됐다고 설명해 준다.

# 11
단종은 무척 피곤했다. 악몽 때문에 어젯밤에 한숨도 자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꿈속에 어머니가 나왔을까?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얼굴도 희미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하자 행복했던 옛기억과 더불어 아내가 떠올랐다. 단종은 갑자기 솟구치는 울음을 찾을 수 없었다. 눈물젖은 단종은 저도 모르게 시조를 읊조리게 된다. 단종은 갑자기 온 몸이 싸늘해지는 것을 깨닫는다. 마치 무슨 큰 일이라도 일어날 것 처럼..

月白夜蜀魂 달 밝은 밤 두견새 울 때
含愁情依樓頭 시름 못 잊어 누대 머리에 기대어 앉았노라
爾悲我聞苦 네 울음소리가 하 슬퍼 내 듣기도 괴롭구나
無爾聲無我愁 네 소리 없었던들 내 시름 잊으련만
寄語世上苦勞人 세상에 근심 많은 이들에게 이르노니
愼莫登春三月子規樓 부디 춘삼월에는 자규루에 오르지 마오.


# 12
금성대군은 자신 있었다. 수양대군에 의해 모반혐의로 삭녕(朔寧)에 유배, 다시 광주(廣州)로 이배된 후 성삼문 등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이 실패하자, 이에 연루되어 순흥(順興)에 안치되었지만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래서 금성대군은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다시 꾀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기천(基川) 현감의 고변으로 사사(賜死)되었다.) 

# 13
영모전을 바라보며 삼촌은 유인이와 유정이에게 단종의 죽음에 대해 설명해준다.
왕방연은 사약을 가지고 관풍헌에 도착하긴 했지만 차마 집행할 엄두가 안 났다. 서인(庶人)으로까지 강등되었던 단종을 기억하자 그의 기구한 사연이 커다란 슬픔으로 다가왔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단종을 죽이게 되는 자신의 모습이 억울하기까지 했다.



# 14
단종의 무덤을 바라보는 일행. 삼촌은 후에 단종이 숙종에 의해 노산대군으로 승격했다고 알려준다. 2백년 후에 말이다.
삼촌은 단종의 시신을 챙긴 엄흥도에 대해 알려준다.

# 15
한밤중 두 군졸이 동강에 시체를 버렸다. 군졸이 사라지자 엄흥도와 정사종은 살며시 다가갔다. 그 둘은 주위를 경계하며 서둘러 시신을 챙겨 산 속으로 도망갔다.
그리고 그들은 노루 한 마리가 앉아있는 곳을 보고 그곳에 단종을 묻었다.

# 16
삼촌은 유인이와 유정이에게 방충원이 영월군수로 있을 때 단종(端宗)이 꿈에 나타나 묘(墓)를 찾아 달라고 하므로 암장되었던 묘를 찾아 수축(修築)하고 제사를 지냈다고 말해준다.
사실인지 아닌지 몰라도 단종의 슬픈 여정을 함께한 유인이와 유정이는 부디 무덤에서는 평안하게 잠들기를 바란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