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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항이야기타운센드의 포부를 잇는 ‘유군성 정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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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센드의 포부를 잇는 ‘유군성 정미소’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한 정미소는 1924년 유군성이라는 사람이 인천 중구 신흥동에 세운 ‘유군성 정미소’가 최초로 정미기 5대를 갖추고 남녀 직공 70명이 하루에 현미 250석, 정미 100석을 처리했다. 타운센드 정미소를 계기로 정미소가 급속히 늘어나 당시 인천항에는 대형 정미소가 19개에 이르렀으며, 하루 생산능력이 7000석으로 1년 동안 300만석을 도정할 수 있었다. 소규모의 정미소도 21개에 달해 인천은 정미업의 대명사로 통했다. 한편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한 정미소는 1924년 유군성이 인천시 중구 신흥동에 세운 유군성 정미소였다. 인천 사동에 자리를 잡고 제재소와 정미소를 경영하며 명실공히 인천 갑부의 위치에 오른 유군성. 그는 당시 일본인들이 독점하고 있던 정미업계에 홀로 뛰어들만큼 상업적 수완이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