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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항이야기조선 팔도 미식가들의 청요리 별미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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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팔도 미식가들의 청요리 별미사냥

1940년대를 전후해 청요리집에선 10~12원을 주면 한 상에 8~10가지 요리들을 맛볼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일반 사무직 사원 월급이 50 ~ 60원 정도였다고 하니, 요리값이 굉장히 비싼 셈이었다. 하지만 당시에 여유가 있던 젊은 직장인들과 미식가들은 청요리집을 자주 찾았으며 일부는 늘어난 외상값을 갚느라고 애를 먹기도 했다. 제물포 개항 이후 조선에 거주하던 중국인들은 일제시대에 한반도 각지에서 주로 무역이나 상업 활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중일 전쟁 이후 일제가 중국인을 박해하기 시작하자 소자본과 소규모로 가족끼리 할 수 있던 식당 운영에 뛰어드는 사람이 늘어났다. 화교의 절반 이상이 식당으로 생계를 해결했는데 이들이 주로 판매했던 음식 역시 만두와 호떡 등 빨리 먹을 수 있으면서도 끼니가 되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이 중에는 화려한 청요리를 취급하는 요리점도 있었다. 보통 중국 요릿집은 1층의 홀과 2층의 방으로 구성되었는데 1층 홀에서는 일반적인손님을 받거나 큰 연회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