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제물포항이야기인천시민의 거리혁명에 불을 지핀 학교

연관목차보기

인천시민의 거리혁명에 불을 지핀 학교

인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3·1만세 시위에 고무된 인천 시민들은 인천공립상업학교 학생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이어갔다. 비록 인천이 당시 한국에서 일본인들의 거주 비율이 가장 높고, 또한 폭정과 감시가 혹독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맹 휴교와 상가 철시를 시작으로 3월부터 8월까지 지속적인 군중 시위를 벌였다. 인천공립보통학교에서 시작한 동맹휴업과 만세운동은 인천 전역으로 번져 만세행렬이 일어나기 시작, 시내 각지에 독립선언서가 다수 배포됐다. 졸업반 학생 40여명은 독립선언서를 부내(인천부)에 배포하고, 인천내리교회와 성공회의 종소리를 신호로 가두시위를 벌이기로 하는데 교문 밖에서 경계 중이던 경찰에 의해 봉쇄당하고 주동자가 체포되기에 이른다. 가두시위를 주동한 김철민은 강화로 피신했으나 일본 사람의 신고로 3개월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형을 마치자마자 거리로 뛰쳐나와서 시민과 학생들이 함께 만세시위에 동참하자며 커다란 목소리로 울부짖는다. 그는 학생과 기독교인들이 주도해 벌어진 인천의 만세운동기간 동안 독립선언문과 전단을 집집마다 뿌리며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