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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항이야기매일 정오를 알려주던 시보(時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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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정오를 알려주던 시보(時報)

인천이 개항장으로 많은 재화와 인물 군상들이 몰려 있던 시기에 표준시간, 즉 기준이 되는 시간을 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이에 일본시간 정오 12시에 맞추어 한국의 오전 11시에 포를 쏘았다. 응봉현 산허리에 대포를 걸어 실탄 없는 공포를 쏘아 정오를 알리게 한 것이 인천 시보(時報)의 시작이었다. 1904년 인천은 조선의 각지에서 모인 노동자와 일본, 중국 조계지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로 활기차고 역동적인 도시로 발전하고 있었다. 일본은 인천의 지리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해 있고 선박이 빈번하게 드나드는 항구에 조계가 있었기 때문에 현대적인 기상관측이 반드시 필요하였다. 또한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그해 4월 통감부에 관측소가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시계가 매우 귀해서 관측소에서는 대포의 포성을 이용하여 매일같이 12시를 알리는 대포를 쏘아 정오를 알려주는 시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