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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항이야기홍예문의 추억, 소년 채플린과 선거용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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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예문의 추억, 소년 채플린과 선거용 벽보

홍예문은 또한 일제시대 때부터 홍보용 간판을 붙이던 곳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태평양 전쟁 직후 일본부윤 나가이와 이께다가 홍예문에 사진과 광고를 붙여 활용하였다. 일본은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조선에 대한 실제적인 지배권를 확립하고 개항장 인천을 손에 넣기 위해 만석동 일대로 눈을 돌린다. 일본인 조계에서 경인철도 축현역(동인천역)과 만석동 등지로 편하고 빠르게 물건을 실어 나를 수 있는 홍예문 건축을 계획하기에 이르는 데 이처럼 일본의 야욕으로 만신창이가 된 홍예문 굴문은해방이 된 후에야 평화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