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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상세설명

고종, 아관파천, 손탁호텔, 미스 손탁, 정관헌 ......

이는 우리 나라 근대시기 커피의 전래과정에 관한 얘기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자주 등장하는 장소와 명칭들이다. 아관파천 때에 러시아공사관에서 처음 커피에 맛을 들인 고종이 경운궁으로 환궁한 뒤에도 그 맛을 잊지 못하고 가까운 손탁호텔의 여주인 미스 손탁(Miss Sontag)을 시켜 커피를 가져오게 하여 일종의 야외다방인 정관헌에서 이를 즐겼다 하는 그런 얘기들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이 어느 것도 커피의 '첫' 이야기와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

커피(coffee)의 우리식 표기로는 가배(, ), 가배차(茶), 카피차, 가피차(加皮茶), 가비차 등이 있었다. 이규태의 <개화백경> (신태양사, 1971)에는 그 시절에 커피를 일컬어 민간에서는 양탕국(洋湯ㅡ)이라고도 불렀다고 적고 있으나, 이에 대한 확실한 고증자료는 없다.

우리 나라에 커피가 처음 등장한 것은 필시 근대개항기를 전후한 시기의 서양인들에 의한 것일텐데, 이에 관해서는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자료를 찾아내기 어렵다. 다만, 단편적인 기록을 통해서만 그 흔적들을 간신히 찾아낼 수 있을 따름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드러난 자료를 통틀어 가장 그 시기가 빠른 것으로는 영국외교관 윌리엄 칼스(William Richard Carles, 賈禮士, 加里士; 1848~1929)가 지은 <조선풍물지(Life in Corea)> (1888)를 지목할 수 있다. 칼스는 1884년 3월 17일부터 1885년 6월 6일까지 인천주재 영국부영사를 지낸 인물이다. 그런데 그의 책에는 그가 영국부영사로 부임하기에 앞서 1883년 11월에 우리 나라를 찾은 때의 일을 적고 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커피에 관한 구절이 등장한다.

이 당시 영국정부는 주중영국공사인 해리 파크스(Sir Harry Smith Parkes, 巴夏禮; 1828~1885)를 특파하여 전년도에 스스로 비준을 거부한 수호통상조약에 대해 새로운 조약을 체결하도록 재교섭을 시도하던 상태였다. 이때 우연찮게도 중국에 머물고 있는 칼스 역시 자르딘 매터슨상사(Messrs. Jardine, Matheson, and Co.)의 동업자인 패트슨(Mr. Paterson)의 제안에 따라 조선의 내륙으로 들어가 광산을 탐사하고자 '개인적으로' 조선을 탐방할 계획을 세우고 있던 차였다. 이리하여 칼스는 파크스 공사 일행에 합류하여 우리 나라에 들어왔으며, 수호통상조약이 맺어진 1883년 11월 26일을 전후한 한 달 가량의 시간을 이땅에서 체류하였던 것이다.

"(pp.31~32) 그가 살고 있는 집은 국왕에게서 하사받은 것이었으며, 지체높은 사람들이 쓰는 여러 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다만 지금까지 우리가 묵었던 집들과는 그 스타일이 똑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안내되어 들어간 구역은 아주 매력적있으며, 이 도시와 길거리에서 막 목격했던 것들이 있었던 지라 조선에 있는 한 독일인 집의 청결함과 안락함에 대한 감사는 최고조에 달했다. 우리들의 안락함이라는 놈은 이내 훌륭한 목욕과 따뜻한 커피(hot coffee)라는 사치함에 이르게되고, 이것들도 당연히 고마운 일이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독일인이란 흔히 '목참판(穆參判)'이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한 독일인 묄렌도르프(Paul George von Moellendorf, 穆麟德; 1847~1901)를 가리킨다. 그는 청나라의 북양대신 직예총독 이홍장(北洋大臣 直隸總督 李鴻章, 1823~1901)에 의해 조선으로 파견되어 1882년 가을 이후 해관 총세무사(海關 總稅務司)와 아울러 협판교섭통상사무아문(協辦交涉通商事務衙門)으로 활동하다가 1885년 12월에 해임되어 중국으로 소환을 당한 인물이었다. 그가 우리 나라에 머물 때에 사용하던 집은 박동(洞, 지금의 종로구 수송동 일대)에 있던 것으로, 원래 선혜청 당상관(宣惠廳 堂上官) 민겸호(閔謙鎬)의 가옥이었으나 그가 임오군란의 와중에 피살된 이후로는 흉가로 간주되어 빈집이었다가 묄렌도르프에게 하사된 내력을 지녔다. 이 집은 나중에 독일영사관을 거쳐 육영공원과 관립법어학교 등으로 전환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보듯이 칼스는 1883년 11월에 묄렌도르프의 집에서 '따뜻한 커피'를 얻어마셨다고 하였으므로, 커피 도입의 역사에 있어서 그 선두는 '잠정적으로나마' 묄렌도르프의 몫으로 돌려지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흔히 궁중의 음식과 기호품이 서양식으로 바뀐 것은 미스 손탁의 활동과 결부되어 해석되는 경향이 있으나, 묄렌도르프의 손을 거쳐 궁궐로 커피가 먼저 유입되었을 가능성도 매우 커지 않을까 한다. 실제로도 손탁보다는 묄렌도르프의 경우가 우리 나라에 온 시기가 더 앞선다.

흔히 '언더우드 부인'으로 알려진 릴리아스 호톤 언더우드(Lillias Horton Underwood, 1851~1921)가 남긴 증언도 커피의 전래에 관한 것으로는 비교적 초기의 기록에 속한다. 1889년 3월 14일에 결혼식을 가진 언더우드 내외는 특이하게도 조선 내륙으로 장기간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이들은 평안북도 위원(渭原)에서 커피에 관한 약간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언더우드 여사는 <상투잡이와 더불어 15년(Fifteen Years among the Top-Knots)> (1904)이라는 책을 통해 이곳에서 겪은 일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위원을 떠나기 전에 우리는 현감과 그 친구들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들에게 저녁식사를 마련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그의 친절과 호의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고 싶었는데, 야영지와 총각식 요리에 상당한 경험과 능란한 기술을 갖고 있는 언더우드씨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이 일을 담당하기로 하였다. … 우리는 수프, 생선, 화관과 딸기로 장식하고 사과소스를 얹은 다음 감자, 밤, 양파로 속을 채운 매혹적인 작은 구이돼지 등을 포함하여 여섯 개 가량의 코스가 잘 준비된 것에 대해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크래커에 마멀레이드를 바른 우리들의 디저트는 최고의 미각을 즐기도록 하기에 충분했으며, 우리는 현감에게 설탕이 떨어졌다는 소리를 하지 않은 채 벌꿀로 탄 커피를 소개했다."

이와는 별도로 아관파천에 앞서 이미 궁중에서 커피가 애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는 저명한 지리학자인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904) 여사의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 (1897)이다. 여기에는 1895년초에 그가 왕비를 알현한 때의 얘기를 적고 있는데, 이러한 구절이 눈에 띈다.

"노란색 비단이 드리워진 수수한 방으로 안내되자 우리는 곧 정중한 태도로 커피와 케이크를 대접받았으며, 그 후 저녁식사 때는 상궁이 궁중 통역관의 도움을 받아 아주 아름답게 꾸며진 식탁으로 데려갔다. 저녁식사는 놀랍게도 ‘서양식’으로 요리되었으며, 수프를 포함해서 생선, 퀘일, 야생오리와 꿩고기, 속을 채워 말아 만든 쇠고기요리, 야채, 크림, 설탕에 버무린 호두, 과일, 적포도주와 커피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여러 명의 궁녀와 다른 사람들이 우리들과 함께 식탁에 앉았다. 오랫동안 지체한 후에 우리는 통역관만을 대동하여 조그만 알현실로 안내되었는데, 단상 위에는 한쪽으로 세 개의 진홍색 벨벳 의자 앞에 왕과 왕세자와 왕비가 서 있었고, 언더우드 부인이 나를 소재하자 그들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우리들에게 미리 준비되어 있던 두 개의 의자에 앉기를 권했다."

이 무렵의 궁궐음식은 이미 서양식이라고 해서 그것이 하등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상태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서양식 요리가 등장하고 있으며, 간단한 접대용으로도 커피와 다과가 함께 등장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이것으로 보면 아관파천 때에 커피맛을 들였다고 하는 얘기는 별다른 근거가 없다고 여겨진다.

흔히 '벙커 부인'으로도 익숙한 여의사 애니 엘러스 벙커(Annie Ellers Bunker, 1860~1938)의 회고담에도 궁중에서 커피를 얻어마셨다는 얘기가 나온다. <더 코리안 리포지토리(The Korean Repository)> 1895년 10월호에는 엘러스가 기고한 "나의 첫 왕비 전하 알현"이라는 제목의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명성황후를 첫 대면하여 진찰한 때의 내용이 나오고 그 말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 최근의 알현 때마다 우리는 커다란 궁궐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와서 곧장 대기실의 문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윤허를 받았다. 이곳에 도착하면 차와 커피와 과일이 접대되며, 그리고 나서 좀 더 아담한 전용공간에서 우리를 맞이해주는 왕비 마마에게로 인도되었다. 국왕과 왕세자는 항상 거기에 임어하셨다. 알현한 뒤에는 우리는 곧장 집으로 물러나도록 윤허되었다."

이 무렵 궁중에서 서양식 요리와 커피가 일상화하고 있었음을 잘 나타내주는 사례는 바로 1898년 9월 11일에 벌어진 김홍륙(金鴻陸)에 의한 '독차음모사건(Coffee Poisoning)'이다.

이 사건은 아관파천 이후 승승장구하던 러시아공사관의 통역관 출신인 김홍륙이 몰락하여 유배지로 가는 과정에서 이에 대한 불만을 품고 하수인 공홍식(孔洪植)으로 하여금 아편 한봉지를 건네주고 이를 어선(御膳)에 타서 올리도록 사주한 데서 비롯된 일이었다. 이에 공홍식은 다시 양식요리 숙수인 김종화(金鍾化)를 통해 일을 벌이도록 하였는데, 그때 마침 가배차(茶)가 부글부글 끓고 있으매 여기에 그것을 집어 넣어 황제와 황태자에게 마시도록 올렸던 것이다. 이 사건의 주동자인 김홍륙과 공홍식과 김종화는 모두 체포되어 극형에 처해졌다.

이 당시 카토 일본공사가 오쿠마 일본외무대신에게 발송한 기밀전문(1898.9.25일자)에는 사건의 내막이 이렇게 요약되어 있다.

"...... 폐하께서는 때때로 즐겨 양식을 찾으시는 일이 있는데 항상 먼저 커피를 찾으시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날 밤에도 역시 전례와 같이 먼저 커피를 드렸는데 커피는 상시로 변하는 것인지 맛이 좋지 않다고 하시면서 아주 소량으로 두 세 번 마셨고, 황태자께서는 거의 한 두 번에 반잔을 마셨습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서 두 분 모두 불쾌함을 느꼈는데 황태자전하께서 먼저 토사하고 곧이어서 황제께서도 역시 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봉시한 자의 면면은 내시 7명, 여관 3명, 별입시 1명으로 그 중 남은 커피를 마신 사람은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중독되어, 이로써 그 해독이 음식물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궁중사람이 아닌 일반인들에 의해 커피를 마시는 일이 자연스레 받아들여진 때는 도대체 언제쯤이었던 것일까

이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변을 찾아내기는 어려우나, 몇 가지 단서는 찾아낼 수 있다. 가령 <독립신문> 1896년 10월 8일자에 수록된 '고살키상점'의 영문광고에는 "모카 커피(Moka Coffee)", "자바 커피(Java Coffee)"가 수입품으로 등장한다. 이것으로 보면 적어도 이 시기에 이르러 커피라는 존재는 이미 일부 계층의 독점물이거나 전유품의 단계를 벗어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영문판 독립신문인 <더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 1899년 8월 31일자에 수록된 광고에 윤룡주라는 사람이 청량리 홍릉 앞에 서양식 요리점을 개업하였다는 내용 가운데 "...... 홍차, 커피, 코코아 등을 포함하여 모든 종류의 다과가 준비"되어 있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또한 <황성신문> 1900년 11월 26일자에 수록된 광고를 보면, "송교 청향관(松橋 淸香館) 가피차(加皮茶) 파는 집에서 진요리(眞料理)를 염가(廉價)로 정결(精潔)히 하오니 첨군자(僉君子)는 왕림시상(枉臨試嘗)하시오. 송교 청향관 고백(松橋 淸香館 告白)"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피차'는 곧 '커피차'이다. 이것을 일컬어 커피의 대중화라고 단언하기는 섣부르지만, 적어도 일반인에 대한 커피의 보급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었던 것만큼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커피의 전파와 보급에 관한 참고자료를 살펴보건대, 대개 손탁의 역할과 손탁호텔의 존재에다 이를 결부하여 설명하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실상 커피는 손탁과 손탁호텔과는 무관하게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이땅에 전래되었으며, 또한 생각보다는 매우 이르게 이미 우리네의 일상생활로 스며들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바로 독일인 묄렌도르프가 있었던 것이다.



[참고문헌목록]

- William Richard Carles, (MacMillan and Co., 1888)
- W. R. 칼스, 신복룡, <조선풍물지> (집문당, 1999)
- Annie Ellers Bunker, "My First Visit to Her Majesty the Queen", (October 1895) pp.373~375
- Lillian H. Underwood, (American Tract Society, 1904)
- L. H. 언더우드, 신복룡·최수근, <상투의 나라> (집문당, 1999)
- <조선일보> 1968.12.26일자, "차(茶) : 특별연재 개화백경 (58)"
- 이용선, <거부실록> 제7권 (양우당, 1983), "풍물백경 (21) 코오피"
- 김은신, <한국 최초 101장면> (가람기획,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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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수,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 신문광고로 본 근대의 풍경> (황소자리, 2005)
- 최규진, <근대를 보는 창 20> (서해문집, 2007)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육백년사 (제3권)> (서울특별시,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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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모토 고이치(湯本豪一)·연구공간 수유+너머 동아시아근대세미나팀, <일본 근대의 풍경> (그린비, 2004)
- 이경훈, <한국근대문학풍속사전 : 1905~1919> (태학사, 2006)
- <독립신문> 1898.9.14일자, "그저께 밤에 황상폐하와 황태자전하께서 카피차 진어하신 후에 ......"
- <독립신문> 1898.8.25일자, "[광고] 홍릉앞 전기철로 정거장에 대한 사람이 새로 서양 요리를 만들어 파는데 ...... 윤룡주 고백"
- 1899/08/31, "[Ad] Refreshments! Yun Yong Ju has opened Refreshements Rooms ...."
- <황성신문> 1900.11.26일자, "[광고] 송교 청향관 가피차 파는 집에서 ......"
- <대한제국 관보> 1898.10.13일자, "김홍륙 외 판결선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