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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1(주사위를 던져라~)

기획의도

‘한국인은 선천적인 도박사이기 때문에 누구를 응원해야 하는지 잘 안다. 도박에 대한 열정은 아마도 모든 한국인이 천부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것일 듯하다. 심지어 종종 생활필수품조차도 직접 구입하기보다도 내기로 구하려 들 정도다.’

1902년, 8개월간 서울에 체류하며 기록한『꼬레아 꼬레아니』라는 책에서 저자 로제티(Carlo Rosseti)는 한국인을 ‘선천적인 도박사’라고 표현했다. 특히 구한말 지배층의 도박은 망국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들은 외국인들에게까지 빚을 내서 도박을 하는 형편이었다고 한다. 또한 ‘을사오적’ 인물 가운데 하나인 이지용은의 노름 돈을 합하면 나라를 살릴 정도였다고 한다.

천인공노할 이 인물을 상상력 속에서나마 골탕 먹일 방법은 없을까 생각했다. 한방 먹이기 위해선 그보다 더 뛰어난 노름꾼이 필요할 터,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기록된 노름꾼 ‘이성택’이라는 인물을 재구성하여 이 이야기를 꾸며본다.

등장인물

이성택 (남, 13/20대) … 타고난 도박기질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
돌만 (남, 20대 초반) … 서양인을 상대로 하는 소매치기.
아펜젤러 (남, 30대 중반) … 외국인 선교사.
그레이스 정 (여, 20대 후반) … 사교계 여자.
소피아 (여, 40대) … 배화학당 서양인 선생님.
이지용 (30대 후반) … 을사오적 중 한 인물.
성택부 (30대) … 이성택의 아버지.

줄거리

특산물과 조악한 생필품 등을 파는 상점과 노점이 즐비한 1888년 평양의 어느 마을 장터에 한 야바위꾼이 손님몰이를 한다. 지나가는 남정네들 하나둘씩 모여든다. 주문을 외우듯 야바위 특유의 멘트를 날리며 현란한 손동작으로 3개의 사기그릇을 교차시킨다. 번개와 같은 그의 손놀림이 멈추면 한 구경꾼이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한 듯 엽전 한 꾸러미를 가운데에 턱하고 놓는다. 동시에 장정들 다리사이에서 작은 팔 하나가 나와 엽전 꾸러미를 왼쪽으로 살짝 옮긴다. 구경꾼이 뭐라 할 기세로 아래를 내려 보는데 어린 성택(13살)이 기세등등하게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마태복음의 한 구절을 읊으며 제법 진지하게 돈을 건 구경꾼과 딜을 시작한다. 만약 자신(성택)이 선택한 쪽이 아니라면 이 돈의 열배를 물어 줄 것이요, 맞으면 이 돈의 반만 받겠다는 것이다. 어린 것이 맹랑하지만 왠지 녀석의 포스를 무시할 수 없는 구경꾼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올커니~ 성택의 선택은 맞았고 돈을 딴 구경꾼은 약속대로 성택에게 돈을 준다.

그 길로 성택은 잡곡 등 끼니꺼리를 사려는데 일각 투전판에서 몰매를 맞고 있는 성택부를 보게 된다.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식구들 끼니꺼리까지 걱정하게 만든 원망스런 아비이지만 이것도 천륜인지라 그런 아비를 부축하고 집으로 조용히 돌아가려하는데 노름꾼의 거친 한마디에 성택은 생각을 달리하게 된다.

“노름판에 외상이 어딨어! 네 기집과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게 해주면 판에 끼워주지!!”

이 노릇을 부전자전이라 해야 하나, 복수혈전이라고 해야 하나. 성택은 아까 야바위 구경꾼에게 받은 돈을 성택부에게 건네고 이들은 다시 투전판에 끼게 된다. 성택의 타고난 기지로 그 날 투전판에서 두 부자는 한 몫을 챙길 수 있었고 쌀가마니와 조기 한 두름으로 성택부는 모처럼 가족들 앞에서 가장의 위신을 뽐내게 된다.

몇 년 후, 20살이 된 성택은 배재학당에 입학하게 된다. 반듯한 이목구비, 항상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두툼한 성경책, 온화한 미소와 깍듯한 그의 인사매너는 학당내외국인 선교사와 선생님에게도 금세 눈에 띄었고 그로 말미암아 성택에 대한 신임과 기대치도 높아져 갔다.

승부욕과 출세욕이 남들보다 뛰어난 성택은 틈틈이 선교사 ‘아펜젤러’에게 찾아가 영어와 성경, 서양문물의 이모저모를 배우고 익히는데 열을 올린다. 아펜젤러는 그런 성택의 열의가 기특하여 아낌없이 알려 주었고 그렇게 둘의 우정도 쌓여간다. 선생님들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는 성택은 그만큼 많은 혜택도 받게 되었다. 아펜젤러나 다른 외국 선생님이 외국공관이나 서양인 집에 볼 일이 있어 갈 때 성택을 데리고 가거나 혹은 자신을 대신해서 심부름을 보내기도 했다.

봄볕이 따뜻한 어느 날 오후, 여선교사 소피아는 성택에게 미국 영사부인의 생일파티에 함께 가자고 한다. 잔뜩 상기된 소피아는 성택에게 값진 브로치를 보여준다. 영사부인에게 선물 할 브로치를 정성들여 포장한 그녀는 성택과 길을 나선다.

봄꽃 구경을 나온 사람들로 붐비는 정동거리. 만발한 봄꽃에 취해 소피아는 나이와 덩치에 안 맞는 제스추어를 취하며 콧노래를 부르는데, 일순간 소피아가 비명을 지른다. 들고 있던 가방을 누군가 훔쳐 달아난 것이다. 성택은 소매치기의 뒤를 쫒기 시작한다. 골목골목을 다 뒤졌지만 범인은 보이지 않는다. 그만 포기하려하는데 어디선가 남정네들의 고시랑대는 소리, 성택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발을 옮긴다.

구석진 허름한 방의 문을 열자 그가 찾던 소피아의 브로치가 투전판 한가운데 버젓이 놓여있는 것이었다. 성택은 소매치기(돌만)의 멱살을 잡고 밖으로 끌고나와 사정없이 후려친다. 그리고 브로치와 가방을 가지고 나서는데 뒤통수에서 돌만의 빈정대는 소리가 들린다.

“어쭈! 양코놈들 밑까지 닦아주겠다.~”

그 말에 성택은 내기를 신청한다. 자신이 지면 브로치를 넘기고 돌만이 지면 돌만의 혀를 달라고 한다. 하지만 신은 당당했던 성택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브로치는 돌만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죄책감과 패배감, 자괴감에 빠져 기숙사에 돌아온 성택.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소피아는 오히려 성택을 위로하며 계획대로 성택과 함께 영사부인 생일파티에 가자고 한다.

이국적인 파티문화에 잠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성택은 그곳에서 승부근성과 숨어있던 도박DNA를 솟구치게 하는 또 한 번의 장을 맞게 된다. 다름 아닌 서양식 카드놀이였다. 항상 학업에 매진하던 성택이 그 후로는 서양카드에 심취하게 된다. 심지어 동료들에게 가르쳐주어 몰래 학당 내에서 카드놀이를 하기까지 한다. 그의 도박욕구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 기회만 주어지면 밖에서 노름을 하곤 했다. 이를 알게 된 선교사들은 하지 말 것을 권고하지만 성택은 이미 노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결국 학당에서 축출된다.

이대로 고향에 갈 수 없었던 성택은 도박자금을 마련해 노름으로 큰돈을 벌기로 결심한다. 성택의 이러한 선택은 피할 수 없었던 그의 숙명이었을까 그는 사금을 취급하는 상인에게 사기를 치고 결국은 살인까지 저지르고 만다. 체포된 성택은 살인 및 강도죄로 기소되고 교수형에 처하도록 선고를 받는다.

그 소식을 접한 아펜젤러와 소피아는 성택이 수감되어 있는 곳에 찾아와 그를 위해 기도를 해준다. 밝고 영민한 학생이었기에 안타까웠고 누구보다 기대가 컸던 젊은이였기에 배신감도 컸을 것이다. 세 사람의 인연은 이렇게 매듭지어진다. 하지만 성택의 기구한 운명의 연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후회와 회개의 날들을 보내고 있는 성택. 그와 같은 방에 한 명의 죄수가 들어온다.
돌만! 바로 그자식이다!! 돌만은 성택을 바로 알아보지 못하나 성택은 알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성택을 여기까지 오게 한 원인제공자.... 서양인들만 골라 소매치기를 하다가 붙잡힌 돌만은 어떻게든 감옥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 반면 아펜젤러가 주고 간 영어성경만을 보며 집행 날을 기다리고 있는 초탈한 모습의 성택. 그런 그에게 돌만은 같이 빠져나가지고 부추긴다. 그도 그럴 것이 성택에게 흐르는 기품과 학식이 탈옥 후 큰 이용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서다. 하지만 성택은 돌만의 말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드디어 성택의 처형 날, 성택의 방에서 뿌연 연기가 피어오른다. 불이 난 것이다. 낱장이 뜯겨 불길 속으로 타들어가는 성경책, 불을 진압하는 교도관들. 일순간 아수라장이 되고 그 틈을 타 성택은 탈출에 성공한다. 그랬다. 성택 또한 그곳에서 살아나갈 궁리를 했었고 그 비밀은 성경책 속에 있었다. 멋지게 탈옥에 성공한 성택은 잔뜩 자유를 만끽하지만 이제부터 뭘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성택을 부른다. 돌만이다.

두 사람은 조선 최대 도박꾼으로 거듭나는 훈련에 돌입한다. 그들의 트레이너는 사교계의 대모 ‘그레이스 정’이다. 서민들의 손때 묻은 돈이 아닌 큰 바닥에서 더 큰돈을 벌 것을 맹세하는 이들. 그들의 계획은 차곡차곡 진행되어 간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나라정세는 더욱 어지러웠으나 그들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성택의 다음 타깃은 을사오적 중 한 인물인 ‘이지용’. 까다롭고 의심 많은 이지용과 붙을 기회는 좀처럼 쉽게 오지 않았다. 또한 당국에서는 지배층의 도박행위를 단속하기 시작하여 설상가상이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한창인 그 시기,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세기의 도박판이 벌어진다. 이지용은 이성택 일행에게 크게 당하고 또한 당국의 단속에 까지 걸려 크게 망신을 당하게 된다. 그 무렵 성택일행은 미리 마련해 놓은 비상구를 통해 도망을 간다.

성택은 이지용에게 딴 돈을 모두 국채보상운동에 내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레이스정과 돌만은 극구 반대한다. 세 사람의 처절한 몸싸움. 그레이스 정은 숨겨둔 총으로 이성택과 돌만을 차례로 쏜다. 그리고 옷장에서 모자를 꺼내 쓰고 돈가방을 챙겨 유유히 사라진다. 어두운 골목, 그녀의 모자 위에서 반짝이는 브로치. 지난 날 성택이 노름에서 잃은 소피아의 그것이다.



참고자료
유승훈 저,『다산과 연암 노름에 빠지다』, 살림, 2006.
까를로 로제티 저,『꼬레아 꼬레아니』, 숲과 나무, 1996.
강준만 저,『한국 근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사, 2007.
개화기 정동스토리_노름꾼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