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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반다

굼반다
굼반다는 프레타와 함께 수미산 중턱 남쪽의 ‘유리’라는 지방을 관장하는 남방 증장천왕(增長天王)의 권속이다. 증장천왕은 "Virudhaka"라고 하며, 그 뜻은 자꾸 늘어난다, 확대된다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그래서 한문으로 증장(增長)이라고 한다.
굼반다는 배가 매우 부른 모습으로 표현되어 욕심이 매우 많은 아귀라고 하며 '비사사'처럼 사람의 정기를 빨아먹는 귀신이라고 한다. 프레타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부리며 보통 6악도(惡道)라고 불려지는 중생들이 거처하는 아귀를 의미한다.
2. 아귀의 개념
아귀(餓鬼)는 범어 프레타(Preta)를 번역한 말로, ‘사자의 영혼’ 등을 지칭하는 귀(鬼)에 굶주림을 뜻하는 아(餓)자가 덧붙여진 말이다.
아귀는 육도(六道)의 중생 가운데 하나이다. 육도는 불교의 중생관으로 중생의 업인(業因)에 따라 태어나는 존재양상의 여섯 가지를 말한다. 육도는 높은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천(天), 아수라(阿修羅), 인간(人間), 축생(畜生), 아귀(餓鬼), 지옥(地獄)의 세계로 분류된다. 이러한 세계는 중생이 몸과 말과 뜻으로 어떠한 업(業)을 지었는가에 따라서 태어나는 것이 결정된다.
원래 티베트지방에서는 아귀를 ꡐ죽은 이ꡑ를 지칭하여 사용하였고, 중국어로 번역할 때 귀신이라고 하였다. 그 개념은 다분히 중국적인 것으로서 죽은 이의 영(靈)을 뜻한다. 인도인들은 선조의 영혼을 보살피지 않으면 스스로 귀계(鬼界)에 떨어져 고통을 받는다고 믿었는데, 그와 같은 민간신앙이 중국으로의 굴절을 거쳐 우리나라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인도 신화에 의하면 인간으로서 최초의 죽음을 받은 이를 야마(ya-ma)라고 한다. 그는 겁초(劫初)에 명부(冥府)의 길을 연 사람으로서 그 죽음의 세계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 그 세계를 염마왕계(閻魔王界)라 하고, 그곳에 사는 백성들을 아귀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육도 가운데 지옥․축생과 함께 삼악도(三惡道)의 하나로 이해되고 있다. 그곳에 태어나는 원인은 간탐(袈貪)과 어리석음(愚癡)인데, 그들이 당하는 고통 가운데 가장 극심한 것은 배고픔과 목마름이라고 한다. 불가(佛家)의 속전(俗傳)에 따르면 아귀는 배가 산처럼 크고 목구멍은 바늘처럼 좁기 때문에 늘 배고픔의 고통을 당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사찰에서 바루공양(鉢盂供養)을 한 뒤 청수(淸水)를 늘 마당의 돌 위에 버리는 풍습이 있다. 이것은 아귀의 고통을 없앤다는 목적이 있다. 살아 있을 때의 식탐 때문에 받는 고통이라고 하여, 특히 탱화나 지옥도(地獄圖) 등의 소재로 많이 등장하며, 지옥 광경을 묘사한 탱화에는 흔히 장발(長髮)에 험상궂은 형상을 하고 있다.
3. 불교 경전 속의 아귀
3. 1『대지도론(大智度論)』제 30권
아귀는 광범위한 의미를 지니는 귀신보다는 협소한 개념이다. 인도의 용수보살이 지었고 구마라집이 개작(改作)했다고 생각되는『대지도론(大智度論)』제 30권에는 두 귀신을 설명하는 내용이 있다.
폐귀(弊鬼)는 천(天)들과 같이 즐거움을 받으나 다만 아귀와 같이 살면서 곧 그들의 주인이 된다. 아귀의 배는 마치 산골짜기같이 크면서도 목구멍은 바늘만 하여 오직 검은 피부와 힘줄과 뼈의 세 가지가 있을 뿐이다. 수 없는 세월 동안 음식이라는 이름조차도 듣지 못하는데 하물며 볼 수가 있겠는가. 또 귀신에는 입에서 불을 내뿜는 것이 있는데, 날아다니는 나비들이 그 불에다 몸을 던지므로 그것을 음식으로 삼는다. 또 똥, 눈물, 침, 고름, 피 및 그릇을 씻은 찌꺼기를 먹으며, 혹은 제사 지낸 음식을 먹기도 하고, 혹은 아이를 낳은 뒤의 부정한 것을 먹기도 하나니, 이러한 등의 여러 아귀가 있다.
3. 2『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제 16권
아귀의 탄생에 대해서『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제 16권에서는 지옥에서 축생으로, 축생에서 아귀로, 또는 축생에서 인간으로, 지옥에서 인간으로, 아귀에서 인간 등등으로 육도 윤회의 굴레를 설하고 있는데, 지옥에서 아귀로의 탄생을 예로 보면 다음과 같다. 집착이 강한 검림(劒林) 지옥의 중생은 날카로운 칼을 얻어서 이 애착을 끊었으면 한다. 이 때 나찰은 거울을 가지고 보이면서 죄인에게 ‘너의 마음은 집착이 많으니, 이 거울을 볼지어다’라고 말한다.
이 거울을 볼 때 거울 가운데에 날카로운 칼의 모양이 있는 것을 보고 곧 이러한 생각을 하되, ‘나는 지금 신체가 파리해서 하고픈 일을 할 수 없으니, 이 날카로운 칼을 얻어서 나의 마음을 베고 끊으면 또한 통쾌하지 않으랴.’ 이러한 생각을 할 때 기절하여 목숨이 마치면, 아귀의 몸을 받아 여러 칼 나무 사이에 홀연 화생(化生)한다.
3. 3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제 4권
아귀를 특징짓는 가장 큰 요소인 굶주림에 대해서는『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제 4권에 잘 묘사되어 있다.
아귀의 갈래에는 3가지가 있다. 첫째는 바깥으로 말미암아 마시고 먹는 것이 장애됨이요, 둘째는 안으로 말미암아 마시고 먹는 것이 장애됨이요, 셋째는 마시고 먹음에는 장애가 없는 것이다.
첫째의 유정들은 으뜸가게 인색함을 익혔기 때문에 아귀 갈래 중에 낳은 지라 언제나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서 가죽과 살과 혈맥이 모두 다 바짝 말라서 마치 불 탄 숯과 같으며, 머리털은 쑥대강이처럼 흩어지고 그 얼굴은 검으며 입술이 말라 타는지라, 늘 그의 혀로서 입 곁을 핥으며 굶주림에 어쩔 줄 몰라 하며 곳곳을 다니다가 이르게 된 샘과 못에는 다른 유정들이 손에 칼과 몽둥이와 노끈들을 잡고서 줄을 지어 수호하며 나갈 수 없게 한다. 혹시 억지로 나아가도 그 샘을 보기만 하면 피고름으로 변하는지라 스스로가 마시려 하지 않는다.
둘째는 그 유정들의 입이 혹은 침 같기도 하고 혹은 횃불 같기도 하고 혹은 또 목에 혹이 붙기도 하고 그 배가 넓고 크기도 하나니,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비록 음식을 얻었고 다른 장애가 없다고 하더라도 자연히 먹거나 마실 수가 없다.
셋째는 어떤 아귀의 이름은 맹염(猛焰)이라 하는데, 마시고 먹는 것에 따라 모두가 활활 타버리니,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굶주림의 큰 고통이 일찍이 잠깐이라도 쉬는 일이 없다. 또 어떤 아귀는 똥을 먹고 오줌을 마시기도 하며, 일부는 아주 나쁜 날 것과 익은 것의 더러운 찌꺼기만을 마시고 먹을 수 있어서, 비록 향기롭고 맛있는 것을 얻었다 하더라도 먹을 수가 없기도 하며, 일부는 제 몸의 살을 베어서 씹어 먹고 비록 다른 음식을 얻었다 하더라도 끝내 먹을 수가 없기도 하나니, 이와 같은 무리의 귀신을 바로 마시고 먹음에는 장애가 없다.
이처럼 아귀는 인도 재래의 ‘조부(祖父)의 영(靈)’ 관념과 불교의 연기, 무아, 윤회설을 토대로 하여 중국의 전통적인 ‘사자(死者)의 영(靈)’, 혹은 ‘제사와 관계된 귀신’이 아귀의 특성으로 Preta와 결합하여 고착화한 것이라고 추측된다.
3. 4 『우란분경(盂蘭盆經)』
『우란분경(盂蘭盆經)』역시 아귀와 관련하여 중요한 경전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목련이 육통(六通)의 깨달음을 얻고 도안(道眼)으로 세간을 관찰하니 죽은 어머니가 아귀고(餓鬼苦)로 고통 받고 있었다. 이에 목련은 부처님께 어머니를 아귀고에서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을 묻고, 중생들의 모든 근심과 괴로움의 죄업을 해방시키려는 결심을 한다.
둘째, 여러 승려들이 7월 15일 안거가 끝나는 날, 그리고 7세(世)의 부모와 현재의 부모가 액난에 있을 때, 이들을 위하여 공양을 하면 아귀고에서 고통 받는 자들이 구제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이 서술되어 있다.
셋째, 우란분재를 행한 그 공덕으로 7세(世)의 부모와 6친속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하고, 부모가 현존하는 이는 백 년 동안 복락을 누린다하여 그 공양의 공덕을 설파하고 있다.
3. 5 『십송률(十誦律)』제 25권
옛날 왕살바라는 마을에 아주 유복한 거사가 있었다. 그는 재물과 보배가 풍성하여 모든 것을 갖추었으나 한 가지가 부족하였는데 바로 자식이 없는 것이었다. 이윽고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그 귀에 금색 귀걸이가 달려 있었고, 아이의 용모가 아주 단정하였기에 보는 사람마다 귀여워하였다.
아기의 관상을 본 바라문은 거사에게 이 아이는 실로 복덕과 위신력을 갖추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 아기의 이름은 사문성좌(沙門星座)에 해당하는 날에 태어나고 1억 냥 값의 귀걸이를 갖고 있다 하여 사문억이(沙門億耳)라고 하였다.
왕살바 마을은 사방 여러 곳의 상인들이 모여드는 장소였으므로 선량한 데다 덕망이 있는 억이가 객주로 위촉받게 되었다. 여러 상인들은 억이가 커다란 위신력을 갖춘 것을 보고 같이 큰 바다로 가서 보물을 싣고 오자고 한다. 억이의 복덕에 힘입어 보물을 가득 싣고 왕살바 마을로 돌아가는 배는 수로와 육로의 두 길을 만나고, 육로를 택하게 된다. 밤이 깊어 하룻밤을 보내게 된 일행은 억이를 두고 모두 떠나 버렸다.
억이는 즉시 일행의 뒤를 쫓아갔으나 그 길에는 모래가 많았기에, 그만 비바람에 씻겨 버려 길바닥에는 발자취조차 없었다. 억이는 허기가 극에 달한 채로 앞으로 나아가다가 아주 청결한 성곽을 보고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는 성문 밖에 섰으나, 그만 생각만 앞서고 말소리는 나오지 않은 채로 외쳤다.
“밥...밥...”
그 때 수없이 많은 아귀들이 나와 일제히 부르짖었다.
“무슨 밥을 누구에게 준다는 겁니까?”
이에 억이가 대답하였다.
“나에게는 먹을 것이 없습니다. 내가 길가다가 허기가 극에 달하여 밥을 얻는 것만을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이 나왔습니다. 나에게 먹을 것이 없기에 내가 이 성에서 먹을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겨 이로 인해 밥이라고 외쳤을 뿐입니다.”
그러자 여러 아귀가 대답하였다.
“이 곳은 아귀들이 사는 성입니다. 우리들은 한량없는 세월 동안 오늘에서야 밥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남에게 보시하지 않고 인색한 마음이 많았던 까닭에 아귀 속으로 떨어졌는데...”
억이는 다른 어떤 성에 당도하여 “물...물...”이라고 외치지미나 전과 동일한 상황을 겪게 된다. 그 뒤에도 수많은 일들을 겪게 된 억이는 ‘내가 혹시 인간 세상에서 죽은 다음에 이러한 아귀의 나라에 태어날까 걱정되는구나.’하고 생각하면서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드디어 법안(法眼)을 얻게 된 억이는 현세의 부모에게 봉양을 다한 뒤에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게 되고, 높더라도 끝내는 떨어지리라. 모든 것이 결국엔 사라지리니 실로 영원한 것이란 없구나.’라는 게송을 읊는다.
4. 미술속의 아귀
우란분경변상도는『우란분경』을 근거로 하여 그린 그림으로 육도 가운데 하나인 아귀의 세계를 묘사한 것이다. 우란분경은 313년 축법호가 번역한 『불설우란분경(佛說盂蘭盆經)』1권과 중국 동진(東晋) 때 번역된 『불설보은봉분경』1권이 남아 있다.
우란분경의 우란분이란 산스크리트어로 울람바나(Ullambana)이나 본디는 아바람바나(Avalambana)에서 비롯된 말로서 ‘거꾸로 매단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죽은 이가 손발이 묶인 채 거꾸로 매달려 겪는 고통을 뜻하는 말로 결국 지옥을 나타낸다. 이것은 부처님의 수제자 가운데 하나인 목건련 관련 설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적에 목련존자가 비로소 여섯 가지 신통을 얻고 부모를 제도하여 젖 먹여 길러준 은혜를 갚고자 하였다.
목련존자는 신통력으로 모든 세상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아귀 세상을 보니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아귀도에 떨어져 아무 것도 먹지 못하는 심한 굶주림의 고통을 겪고 계셨다. 놀랍고도 두려운 마음과 효심에서 신통력을 발휘해 어머니께 밥그릇에 음식을 담아 공양하고자 하나 번번이 음식은 모두 불꽃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에 더욱 슬픈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부처님께 나아가 간절히 어머님을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처음에는 어머니가 지은 죄가 두터워 어찌할 수 없다고 거절하였으나 수제자인 목련의 간곡한 효심에 마음을 움직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7월 15일인 참회의 날에 과거와 현재의 돌아가신 부모를 위하여 시방의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온갖 음식을 공양하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돌아가신 어머니는 하늘의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인연 설화를 배경으로 죽은 이의 넋을, 특히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을 위로하고 정토에 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의식이 바로 우란분재이다. 이 같은 우란분재는 중국에서 일찍부터 성행하였으니 이는 중국인에게 중요한 덕목인 효사상과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늘날까지 절에서는 음력 7월 15일을 우란분절 또는 백중이라 하여 크게 재를 올릴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민속명절로 기리고 있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고려시대에 자주 우란분재를 행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며, 조선시대에는 민속 행사로까지 발전하여 음력 4월 8일의 연등놀이, 11월 8일의 욕불과 더불어 가장 큰 민속놀이로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감로도는 죽은 이의 넋을 천도하기 위하여 재를 베푼 사람의 공덕을 그의 조상에게 회향한다는 조상 숭배적인 요소와 함께 끝없는 윤회의 구레를 헤매고 있는 여러 중생도 그러한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 극락에 태어날 수 있다는 바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그림이다.
이러한 감로도는 우리나라에서만 널리 유행한 것으로 한국 불화의 특색과 불교 신앙의 성격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러나 감로왕도가 신앙적으로 언제부터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감로왕도에 나타난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신앙적 배경은 우란분회나 수륙회 등 여러 종교 의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그 연원을 고려 시대로 올려 볼 수 있다.
감로도는 그 도설 내용에 따라 상, 중, 하 삼단으로 구성되는데 이 삼단의 내용은 오히려 아래쪽에서 위로 전개되는 구성을 보여준다. 하단은 육도 윤회의 광경, 중단은 육도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를 올리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곧 성반의 모습, 재를 올리는 사람들이 부처님 덕을 기리는 모습, 수행 공덕을 상징하고 있는 수행 비구의 모습 그리고 그러한 공덕을 보아 감로비를 내리는 번개신 등이 그려진다. 상단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나투신 칠 여래(다보, 보승, 묘색신, 광박신, 이포외, 아미타, 감로왕)와 세 보살(인로왕, 지장 , 관음)이 묘사되고 있다.
감로도의 구성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로 하단에 그려진 육도 윤회상이다. 화면을 적절하게 나누어 갖가지 장면을 파노라마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대개 20여 종의 장면으로 이루어진다. 지옥의 고통스런 장면, 아귀의 모습, 벼락 맞아 죽는 모습, 호랑이에게 먹히는 모습, 굿하는 모습 등등이 매우 재미있게 묘사되고 있다.
아귀의 모습은 보통 뻘겋게 달아오른 쭈글쭈글한 피부와 몸속에서 입을 통해 뿜어내는 불꽃, 인내의 한계를 넘은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 몸의 주변을 휘감은 파상형의 화염, 그리고 전체적으로 괴이하고 과장된 형체로 묘사된다. 한국 미술 속에서 아귀는 대웅전 한쪽 켠에 걸려있는 감로탱화의 화면 중앙에 커다란 모습으로 그렇게 묘사되어 있다.
참고문헌 및 도판
▒ 참고 문헌
강우방,「감로탱의 양식변천과 도상해석」,『감로탱』, 예경, 1995.
김승희,「아귀고 초기- 한역경전에 나타「난 아귀-」,『한국의 불화』19, 성보문화재연구원, 1999.
______,「감로탱의 도상과 신앙의례」,『감로탱』, 예경, 1995.
김정희, 신장상, 대원사, 1989.
이기선, 지옥도, 대원사, 1992.

▒ 참고 도판
최완수 외(편), 澗松文華 64, 한국민족미술연구소, 2003, 41면(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