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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단군

1. 단군에 대한 기록

단군(壇君)은 우리 민족의 시조이다. 고조선(古朝鮮 : 檀君朝鮮)의 첫 임금이며, 단군(壇君), 단군왕검(壇君王儉), 단웅천왕(檀雄天王)이라고도 한다. 천제(天帝)인 환인(桓因)의 손자이며, 환웅(桓雄)의 아들로 서기전 2333년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하였다.
고조선과 단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의 『위서(魏書)』와 우리나라의 『고기(古記)』를 인용한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편(紀異篇)을 들 수 있다. 반면에 정사인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이와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 대비된다.
한편 고려 시대의 기록으로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紀)』가 있으며, 이와 비슷한 내용이 조선 초기의 기록인 권람(權擥)의 『응제시주(應製詩註)』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등에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단군에 관한 문제를 논급할 때 일차적으로 인용하는 기록은 『삼국유사』이다.
먼저 『삼국유사』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옛날 환인의 서자(庶子 : 장남이 아닌 차남 이하의 아들을 말함) 환웅이 자주 세상에 내려가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하므로 아버지가 환웅의 뜻을 헤아려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가 사람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000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꼭대기의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와 그곳을 신시(神市)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왕이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善), 악(惡)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렸다. 이 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속에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일렀다. 곰과 범이 이것을 받아서 먹고 근신하였는데 3․7일(21일) 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이것을 못 참아서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그와 혼인해 주는 이가 없으므로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가지게 해 달라고 기원하였다. 이에 환웅이 잠시 변해 혼인하여 아이를 낳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壇君王儉)이다. 왕검이 당고(唐高 : 중국의 성군인 三皇五帝 가운데 堯임금) 즉위 후 50년인 경인(庚寅 : 당고의 즉위년은 戊辰이므로 50년은 丁巳요 경인이 아니니 틀린 듯함)에 평양성(平壤城)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다. 이어서 도읍을 백악산(白岳山)의 아사달로 옮겼는데 그 곳을 궁홀산(弓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하였다.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주(周)나라 호왕(虎王)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의 임금으로 봉하였다. 단군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다.

한편, 『제왕운기』에서는 『본기(本紀)』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여 주고 있다.

상제(上帝)인 환인에게 서자인 웅(雄)이 있었다.……(아버지가) 일러 말하기를 내려가 삼위태백(三危太白)에 이르러 널리 사람에게 도움을 주라 하여 웅이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아 귀신(鬼神) 3,000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 내려오니 이가 바로 단웅천왕이다.……손녀로 하여금 약을 마셔 사람이 되게 하고 단수신(檀樹神)과 혼인하여 단군(檀君)을 낳았다. 조선지역에 근거하여 왕이 되었다. 그런 까닭에 시라(尸羅 : 신라?), 고례(高禮 : 고구려?), 남북옥저(南北沃沮), 동북부여(東北扶餘), 예(濊)와 맥(貊)이 모두 단군의 후계이다. 1,038년 동안 다스리다가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이 되었으니 죽지 않은 까닭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단군에 관한 내용을 전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두 기록은 기본적인 내용에서는 비슷하나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먼저 단군을 표현함에 있어 『삼국유사』에서는 ‘제단 단(壇)’자로 단군을 기록하고 있고 『제왕운기』에서는 ‘박달나무 단(檀)’자를 사용하여 그 의미를 각기 다르게 나타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후자로써 단군을 나타낸다.
한편, 『삼국유사』에서는 고조선조에서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을 함께 기록하고 있으나, 『제왕운기』에서는 전조선(前朝鮮)이라는 항목에서 단군에 의한 조선을 기술하고, 후조선(後朝鮮) 항목에서 기자에 의한 조선을 언급하여 후속하는 위만조선과 함께 삼조선(三朝鮮)으로 구분하여 파악하고 있다.

2. 단군신화에 대한 학설

단군신화는 우리 역사상 등장한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에 관한 것인 만큼 오늘날에는 민족 전체의 국조신화로 여겨지고 있으며 신화의 주인공인 단군은 우리 민족의 시조로 여겨지고 있다. 신화란 원래 당시의 현실 속에서 고대인이 경험한 것을 객관화시켜 형성된 관념이 간접적으로 표현된 사회적 의식형태의 하나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에게 전하는 신화는 과거의 어떤 특정한 시점에서 완전한 형태로 정착된 것은 아니다. 역사발전과정을 거치는 동안 신화도 오랜 세월 변천을 거듭하여 내용의 일부가 소멸하기도 하고 첨가되기도 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 때문에 학자들 사이에는 신화의 내용을 허구로 인식하여 단군신화와 관련된 고조선의 존재조차도 부정하는 견해로부터 신화의 내용을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믿어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의견이 다양하다. 단군신화에 대한 연구를 관점의 차이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나누어볼 수 있다.
단군신화의 생성과정과 주인공에 관한 학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의 관점에서 이를 이해하는 견해이다. 중앙아시아로부터 한반도와 일본 등을 포함하는 지역에 ‘’사상 중심의 신앙과 사회조직을 가지는 종족들이 백산(白山)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었다. 종족적 관계는 여하튼 간에 이 문화가 우리 역사 속에 나타난 실체가 바로 단군과 부루(夫婁)라고 본다.
둘째, 이 신화가 삼신(三神)사상의 표현이고 구체적으로는 태양신화와 토테미즘 두 계통의 신화가 섞여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 즉 신화를 달리하는 두 종족이 정치, 사회적으로 통합되면서 두 종족의 시조신화가 융합된 것으로 이해했다.
셋째, 천신족(天神族)인 환웅이 지신족(地神族)인 고마족의 여성과 혼인하여 단군이 출생했다는 것을 설화화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여기에서는 단군이라는 호칭은 무군(巫君), 즉 제주(祭主)의 의미가 많고, 왕검이라는 호칭은 정치적 군장(君長)의 의의가 강하다고 보아 종교적 기능과 정치적 기능이 명칭 상에서 구분된다고 파악하고 있다.
넷째, 신화 또는 토테미즘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태도를 벗어나 우리 민족 태고의 의식을 보여주는 사실로 파악하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단군신화의 농경관계 기사를 곡물재배민족의 제의(祭儀)로 파악하고 환웅과 웅녀를 쌍분체제(雙分體制, dual organization)로 간주하여 곰과 범이 한 굴에서 살았다는 내용을 일광금기(日光禁忌)와 탈피(脫皮) 동기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했다.
다섯째, 단군신화에 나타난 곰숭배사상에 주목하여 이 신화내용을 동북아시아 지역에 분포되어 살고 있던 고아시아족(Paleo Asiatic)과 연결시키는 견해이다. 이 견해의 논거로 고아시아족의 시조설화에 곰숭배사상이 포함되어 있고 자신들은 곰의 자손이라고 믿고 있었던 점, 최고의 샤먼을 뜻하는 텡그리(tengri)와 단군이 어원상으로 관련이 있다는 점, 텡그리의 기능과 관련된 세계목(世界木:고대신화에서 하늘과의 통로로 여겨진 신성한 나무) 관념이 신단수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 등이 제시되고 있다.
신화에 담겨진 역사적 현실과 그 시기 및 사실성 여부에 관해서도 다양한 논의가 있다.
첫째, 단군신화가 시대적 변화를 계기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 즉 1단계에서는 씨족사회에서의 단순한 씨족토템이 생겼고, 2단계에서는 군사민주주의 단계로 이행하는 시기에 군사수장으로서의 단군이 등장했으며, 3단계에서는 계급국가 형성 뒤 고조선 국왕으로서의 단군이 등장한 것으로 보았다.
둘째, 사회경제사적 관점에서 고대국가의 성립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 이 견해에서는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풍백, 우사, 운사, 선, 악, 곡, 형 등 360가지 인간사 등의 단어들이 갖는 의미를 분석하여 단군신화에 나타난 사회가 부권(父權) 중심의 농경사회 내에서 계급분화가 이루어지고 지배자가 등장한 청동기시대 초기의 사회라고 보았다. 또한 곰과 호랑이, 환웅과 웅녀의 결혼 등의 내용을 통하여 토템을 믿는 몇 개의 종족이 결합하여 부족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셋째, 단군신화가 포용하고 있는 역사의 시대를 고고학적인 연대와 관련하여 신석기시대의 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즉 우리의 신석기문화가 시베리아 지역과 관련되며 시베리아 신석기문화의 담당자가 고아시아족이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단군신화의 시대적 성격이 신석기문화와 연결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넷째, 단군신화를 4단계의 역사적 발전단계가 압축된 것으로 보아 무리사회 단계인 환인시대, 부락사회 단계인 환웅시대, 부락연맹체사회 단계인 환웅과 웅녀의 결혼시대, 국가사회 단계인 단군시대로 보아 한민족의 역사적 체험, 즉 인류사회의 보편적 발전과정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에 따르면, 각 시대를 고고학 자료와 연결시켜 환인시대는 1만년 이전의 구석기시대와 중석기시대, 환웅시대는 1만년 전후부터 6,000여 년 전까지의 전기신석기시대, 환웅과 웅녀의 결혼시대는 6,300~4,300여 년 전(B.C. 2300경)의 후기신석기시대, 고조선시대는 B.C. 2300년경부터 B.C. 2세기말까지로 보아 신화의 내용 대부분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와 함께 랴오닝(遼寧) 지역의 풍하문화(豊下文化:夏家店下層文化)가 청동기문화로서 단군의 개국연대와 연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섯째, 단군신화를 고고학적인 측면에서 언급한 견해도 제기되었다. 즉 문헌에 보이는 자료를 토대로 산둥성(山東省)에 있는 무씨사당(武氏祠堂) 석실 내의 화상석(畵像石)의 그림과 단군신화의 내용이 일치하고 있음을 주목하여 이의 전파가 종족 이동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했다. 최근에는 이 견해의 바탕이 되는 무씨사당의 화상석이 단군신화의 내용과는 관련이 없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밖에 단군과 관련된 문헌 중 도가(道家) 계통의 역사서인 『규원사화(揆園史話)』,『환단고기(桓檀古記)』 등을 제시하여 단군조선의 역사가 47대의 마지막 왕에 이르기까지 실사(實史)였음을 강조한 견해가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이 역사서가 한말과 일제하에 만들어진 위서(僞書)라는 비판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원래 신화는 역사적인 사실 바로 그 자체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 속에 내재된 역사성을 중시해야 하며 어떤 맥락에서든 신화의 의미는 풀려야 한다. 그러나 단군의 개국신화를 그대로 왕조사인 것처럼 해석하는 것에는 무리한 점이 많다.
어쨌든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이 수난을 당하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족의 단합을 요구하는 구심체 역할을 해왔고 계속 이러한 의미와 가치를 유지할 것이다.

3. 단군신화 분석

신화적 분석이라는 방법은 하나의 결론을 유도하기 위해서 계속 논지를 좁혀 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이야기가 있을 때 세부적으로 쪼개어서 한 가지 공통부분을 찾아내고, 한 번 더 쪼개어서 또 찾아내고, 마지막에 가서 전체를 일관하는 하나의 구조를 찾아내는 것이 신화적 분석이라는 방법이다. 그러니까 신화가 있을 때 하나의 부분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찾고, 이 특징들을 다시 뽑아내어 이것을 전체로 간주하여 또 분석한다. 총체적 분석을 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이제 실제적인 예를 들어서 신화적 분석을 해보자.

3.1. 환인과 환웅

단군신화를 보면 처음에 환인(桓因)이 나온다.
'한'과 동일한 용어로서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환'이라는 것은 가장 고귀한 개념이다. 환인이라고 쓰여진 것은 단군신화를 정리한 승려 일연에 의한 것이다. 일연은 불교도이면서도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이 그런대로 투철한 사상가이다. 그래서 단군신화를 자기 나름대로 새롭게 썼을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었던 어떤 절대적인 존재를 나타냄에 있어, 가장 원의에 충실하면서도 불교적인 색채를 띤 용어를 찾으려 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환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음으로 볼 때도 비슷하고 환인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뜻-태양신, 제석신-과도 비슷하다. 이것은 바로 몇년 후에 나온 『제왕운기(帝王韻記)』에서는 '환인'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대신 제왕운기에는 단수신(檀樹神)이 나온다. 그런 것으로 볼 때 환인은 아마 당시의 승려인 일연에 의해 불교적으로 윤색되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 다음 환웅에 관해서 살펴보자면 서자라는 말이 있다. 서자환웅(庶子桓雄)이라 해서, '서자'라는 글자에 대해 논란이 많다. 단군신화를 비하하려는 무리들은 '단군은 서자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서자'라는 것은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소실의 자식이라는 뜻이 아니다. 당시에 있어서는 '여러 무리 중의 하나' 이런 뜻으로 해석이 된다. 그리고 '적자'가 아닌 '서자'라 해도, 당시에는 적자와 서자의 차별이라는 것은 실제로 없었다. 적서의 차별은 조선시대에 성리학이 보편화되면서 생겨난 것이다. 구체적으로 조선 태종 때 경국대전을 완성시키면서 비로소 적서의 차이가 나타난다.
그런데 후기에 내려오면 차별이 굉장히 심해진다. 이것은 양반위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하나의 제도적 장치이다. 일연이 단군신화를 정리할 때 서자에 대한 차별이라는 것은 없었다. 단군신화의 주체는 환웅이다. 사건을 일으키고 주도하는 것은 환웅이고, 단군은 결과적인 인물이다. 이 단군신화의 주체인 환웅이 서자로 표현되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동북아시아 민족 특히 유목 민족에게서 많이 나타나는데, 자식이 여러 명 있으면 막내아들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모두 떠나버린다. 떠나서 새로운 부족을 거느리게 된다. 문화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관습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화에도 여러 아들 중에서 한 명이 내려와서 인간을 구제한다는 이러한 내용의 신화들이 있다. 왕이 9명의 아들을 두었다면, 그 중 여덟 명의 아들들은 떠나는 것이다. 장성하면 떠나서 새로운 부족을 만들고, 막내아들은 남아서 아버지의 지위를 이어 받다. 말자상속제(末子相續制)인 것이다. 그런 여러 가지 사실들을 볼 때, 환웅이 서자라고 해도 하등의 문제가 없는 것이다.
세 번째 부분은 ‘수의천하 탐구인세(數意天下 貪求人世 : 천하에 여러 번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탐내어 구했다)’ 이런 내용이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 '수의천하'라는 말의 해석을 놓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수'자의 발음과 해석에 관한 것인데, 이 '수'는 '삭'으로 발음되면서 의미가 강화된다. '여러 번 또는 자주'라는 뜻으로는 '수'가 아니라 '삭'으로 발음된다. 그래서 '수의천하'가 아니라 '삭의천하'로 발음하게 될 때는 환웅의 의지-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세상을 구한다던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든가 또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천한다든가,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는 의지-의 표현이 더욱 강력하다는 것을 나타내게 된다. 그 다음에 ‘부지자의(父知子意 :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환인이 환웅의 뜻을 알게 된다. 그래서 환인이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히 홍익인간 할만하다(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부지자의'란 아버지인 환인이 아들인 환웅의 뜻을 인정한다는 뜻이 된다.
현실에서는 일반적으로 아버지는 아들의 행위를 인정한다. 그러나 신화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대부분의 신화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반역의 관계로 나타난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다. 이를 대표하는 신화로는 오이디푸스신화가 있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차지한다든가, 아버지가 가졌던 왕궁을 차지한다든가 하는 것이 신화 속에서 드러나는 일반적인 부자관계이다. 그런데 단군신화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인정해 준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대립과 투쟁의 관계가 아니라, 조화와 협력의 관계라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환인으로 대표되는 천상세계와 환웅으로 대표되는 지상세계가 서로 조화롭게 결합이 되는 것이다. 단군신화가 지닌 조화의 원리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원리는 환웅의 행위에 정당성 내지는 정통성을 부여한다. 요즘에는 정통성을 부여하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옛날에는 정통성이 꼭 있어야 했다. 과거에는 그것이 신으로부터 부여되었다. 여기서 신은 우리가 알고 있는 통상적인 의미의 신(神)이 아니라, 사실 민의(民意)겠지만 거기에는 더 많은 분석이 필요하다. 고대의 신의 개념이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인격체로서의 뜻인가, 형이상학적인 뜻인가, 아니면 논리적인 뜻인가 라는 이러한 것들은 더 연구 되어야 한다. 아무튼 '부지자의'라는 말을 통해 아버지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2. 태백산과 당나무 신앙

그리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이라는 말이 있다. 삼위태백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 삼위와 태백을 각각 다른 지역으로 보는 경우도 있고, 삼위는 태백을 수식하는 관용어로 보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는 우선 태백산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태백산의 위치가 과연 어느 곳일까? 일부에서는 묘향산(妙香山)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또 일제시대때 친일사학자들은 구월산(九月山)이라고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보통 백두산이라고 말을 한다. 여기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백두산을 일컫는 명칭이 개마산(蓋馬山), 개마태산(蓋馬太山), 도태산(徒太山), 불함산(不咸山), 장백산(長白山)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백두산에 대한 그러한 묘사를 볼 때, 태백산이라는 것은 당시에 백두산을 가리키는 말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보편적으로 태백산이라는 지명은 백두산이 될 수도 있고, 오늘날의 태백산이 될 수도 있고, 또는 만주에 있는 태백산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태백산이 갖고 있는 보통명사로서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백'자가 들어가는 산은 중요한 뜻을 가지고 있다. '백'이라든가 ''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산들은 성산이나 신산으로 숭배를 받은 산들이다. 그리고 그런 태백산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산이 백두산이다. 태백산은 집단이 움직일 때마다 따라 다니는 명칭이다. 우리 민족의 실체가 만주에 있었다면 그 곳에 태백산이 있는 것이다. 반도로 축소되었다면 백두산이 될 수도 있고, 더 축소가 되었다면 강원도의 태백산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태백산정 신단수에 환웅이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이 내려오는 지점이 또한 인간세계, 즉 인세(人世)란 말로 표현되어있다. 인간세계 중에서도 여기는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이다. 인간세계의 가장 중심이란 말이다. 여기에 산이 있고 나무가 있다면, 바로 가장 중심이 되는 산이고 가장 중심이 되는 나무이다. 이것이 바로 태백산이고 신단수이다. 여기에 인격적인 신의 개념이 적용된다면 신이 사는 집이 있게 된다. 이것이 당집이다. 신정일치시대 때 당집이 되면 정치의 중심지 곧 궁궐이 된다. 이것은 수도이다. 흔히들 신시(神市)라고 한다. 어느 문화집단이든지 간에 크고 작고를 떠나 한 마을이면 마을, 도시면 도시, 한 나라면 나라 나름대로의 이런 장소를 갖고 있다. 어느 집단이든지 그러한 신령스러운 곳을 가지고 있고, 그곳은 대부분 산이었다. 우리 민족에겐 태백산이었다. 수미산이나 올림푸스산 또한 시온산이나 수메르의 피라밋도 이런 맥락에서 연결이 된다.
이 자리에 있는 나무를 숭배하는 것은 고대인들이 보편적으로 가졌던 신앙이었다. 그것을 수목숭배신앙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신화나 종교설화를 보면 나무와 관련이 많다. 동북시베리아계통에는 특히 그렇다. 신은 하늘에서 나무를 타고 내려온다. 그런데 거꾸로 인간이 신이 될 때는 바로 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게 된다. 무당들 자신들이 무당이 되기 위한 의식을 거행할 때 나무를 오르는 장면이 있다. 나무를 오르는 시늉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나무가 없는 데서는 덩굴을 사용한다. 덩굴마저 없으면 새끼줄이라도 매달아 놓고 타는 시늉을 해야 된다. 이것을 천계상승(天界上乘)이라 한다. 하늘로 올라가는 의식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당나무 신앙이 바로 이것이다. 나무가 있으면 그 나무가 모여서 된 숲이 있다. 동네에 있는 나무는 별개이겠지만, 산에 있는 나무는 숲이 있다. 이 숲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경상도에 골맹신앙이라는 것이 있다. 삼국사기에도 시림(始林)이라는 말이 나온다. 신성한 숲을 말하는 것이다. 일본에는 수목숭배신앙이 아직 많이 남아있고, 수풀숭배신앙도 남아 있다. 쓰시마에 '사고(佐護)'라는 마을이 있다. 그 곳에서는 산숭배에서 수풀숭배로, 나무숭배에서 당집숭배로 변해가는 과정이 하나의 '신사(神社)' 안에 있다. 이렇듯 신단수는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고, 그런 이유로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에는 단웅(檀雄)이 나오는 것이다. 환웅천황이 당나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다. 신단수는 사실은 인류문화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하나의 특징이다.

3.3. 아사달

단군신화는 자연의 역사에서 인간의 역사로 옮겨가는 한국인 최초의 역사의식이다. 하늘의 나라(환웅)와 그 지배 밑에 있는 동물의 나라(곰, 호랑이)는 '신시'에서 서로 만나고 신시 속에서 인간의 역사가 탄생했다. 단군은 그 역사가 시작되는 최초의 지도자이며 그가 세운 아사달은 최초의 인간의 땅(인간사회-나라)이었다. 그리고 인간 역사의 출발을 그들은 '아침의 땅'으로 파악했다. 곰이 갇혀 있던 동혈 속의 어둠이 광명한 대낮(환웅-천재의 아들)에 이끌리어 아침이 된다. 이 아침을 인식하는 것이 곧 인간을 의식하는 것이었고 그 아침에서 출발하는 것이 곧 역사의 출발을 의식하는 것이다.
아침은 '시작'이다. '아침의 시작'은 '어둠'과 '밝음'의 혼례에서 태어난 신생아이다. 아사달이라는 나라 이름만이 아침을 뜻한 것은 아니다. 새 나라 새 도읍이 생길 때마다 그 마을은 동경(東京=새밝), 서라벌(徐羅伐), 소부리(所夫里) 같이 모두가 'ㅅ'과 'ㅂ'의 두 두음 속에서 이루어졌다. 'ㅅ'은 새것이고 'ㅂ'은 밝음이다. 새로운 밝음, 즉 아사달처럼 '아침'이란 뜻이다.

3.4. 3의 상징성

다음은 '天符印三箇'에 대해, 천부인 세 개를 주어서 가서 다스리게 했다는 문장이 나온다. 이것은 깊은 의미가 있다. 천부인 세 개가 가지는 자체적인 의미도 있고, 또 고고학적인 중요성도 있다. 이 고고학적 증거에 의해 단군신화가 성립된 연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천부인삼개'는 칼과 거울과 방울이 될 수도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상징물이 세 개가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당한 의미가 있는데, 먼저 '삼'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이라는 숫자는 수리학상으로 모든 것의 가장 으뜸이 되는 수이다. 『도덕경(道德經)』에서 도(道)는 1을 낳고, 1은 2를 낳고, 2는 3을 낳고, 3은 만물을 낳는다고 말하고 있다. 『회남자(淮南子)』에서도 역시 3에서 만물이 생(生)한다고 보고 있다. 3은 홀수이고 중간자이기 때문에 가장 으뜸이 된다. 오늘날 현대적인 시각으로 볼 때 1과 2가 대립되는 개념의 수라면, 3은1과 2의 대립과 갈등을 무마시키는 상징적인 숫자가 된다. 3이라는 숫자는 그래서 고대로부터 숭상받아 왔다. 가장 안정된 숫자라는 것이다. 인간의 사유와 의식을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인 숫자가 3이다. 시간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3으로 구분하고 있다.
3이라는 숫자를 중요시여기고 숭배하는 문화는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3이라는 숫자를 중요시 여기고 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처럼 '4'자를 숭배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3'을 숭배한다. 70년대 중반에 나온 기독교인이 쓴 논문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환인, 환웅, 환검. 이러한 삼신개념이 기독교 3위일체의 영향을 받았고, 단군신화는 기독교의 영향아래 쓰여진 것이다'라는 이 논문의 내용을 기독교인들이 많이 인정하는 모양이다. 단군신화에서 보이는 3의 원리와 기독교에서 보이는 3의 원리가 일치하는 면이 있다. 불교도 마찬가지이다. 불, 법, 신 삼도가 있고 탑도 대부분 3층으로 구성되어있다.
이렇듯 3이라는 숫자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숭배를 받아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곳은 바로 동북시베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샤머니즘 문화권이다. 샤머니즘이란 말 자체가 만주어이다. 엑스타시 현상(빙의현상(憑衣現像))에 의한 종교현상을 통틀어 샤머니즘이라고 한다. 협의의 뜻으로는 동북아시아 계통의 특이한 종교현상을 가리킨다. 이 문화권에서 3을 특히 강하게 숭배하고 있다.
우리 무당들을 보면 삼지창을 가지고 있다. 이 창은 찌르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숫자를 표현하는 도구이다. 그리고 무당들은 이 세 가지의 신기(神器)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민속 상에서 볼 수 있다. 일본신화에도 삼종 신기가 나온다. 천손(天孫)인 니니기노미코도가 세 가지 보물을 갖고 내려온다. 이 신화는 김 수로왕 신화와 그 내용이나 구조가 동일하다. 그래서 일본 천황들은 모두 세 가지 신기를 갖고 있다.
이는 원래는 우리가 갖고 있었던 것인데, 우리 민족의 혈통과 문화를 가진 집단이 그대로 보존한 것이다. 이 세 가지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울이다. 거울 다음에 칼, 그 다음이 방울이다. 우리 같은 경우는 금관이 될 수도 있고, 동북시베리아 계통에서는 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거울의 중요성은 고고학적인 면에서도 드러나는데, 여기서 해석이 다르게 나타난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무당이 갖고 있는 삼종 신기가 일본에서 보이는, 또는 우리 유물에서 발견되는 삼종신기와 그 맥락이 일치하는 것으로 보고, 삼종신기를 청동기문화라고 간주한다. 그래서 단군신화의 연대는 청동기시대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듯이 신화에는 원형과 변형이 공존하니까 단정지을 수는 없다. 더구나 동북시베리아 계통에서는 청동기로 된 삼종 신기는 나오지가 않고 있다. 한반도나 만주 또는 서북 일본에서는 청동기로 발견이 되는데, 그쪽에서는 청동기로 발견이 되지 않고 있다.
이제 '3'이 나타내는 민속상의 예를 보도록 하겠다. 이 시대까지 '3'자가 지니는 의미가 그대로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산을 숭배할 때에도 우리는 꼭 세 신을 숭배한다.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것은 우리의 장송의례(葬送儀禮)와 산속의례(産俗儀禮)에서도 이 3의 원리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은 태어나는 것이고, 그 다음은 죽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장송의례와 산속의례 두 가지는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한 집안이 나름대로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의례를 가지고 있다면, 그 의례는 쉽게 변하지가 않는다. 일본에서는 조금 변했는데 기후 환경 탓일 거라 생각된다.
이 장송의례와 산속의례는 '3'이라는 숫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애기를 낳으면 애기의 태를 삼일째 또는 삼일 이내에 처리해야 된다. 그 다음 금줄 있다, 옛사람들도 금줄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합리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달았다. 이유가 있다. 금줄은 삼칠일동안 단다. 금줄은 왼쪽으로 꼰다. 일상의 것이 아닌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평소와는 달리 왼쪽으로 꼬는 것이다. 상가집에 가보면 저승사자가 신는 짚신이 있다. 짚신을 세 켤레씩 갖다 놓는다. 그리고 밥을 세 그릇 가져다 놓는다.
아라비아 숫자로 '3'은 생산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성관계를 상징하는 숫자이다. 고대인들에게 성관계는 굉장히 중요하다. 생산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봄에 씨뿌리기 전에 젊은 부부들이 들판에 나가서 성관계를 가진다. 젊은 부부들이 가진 왕성한 생산력이 대지의 힘으로 전이(轉移)되어서 곡식을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 한다. 그런 풍습이 있었다. 신화에 성관계가 커다란 주제로 되어있는 이유는 바로 생산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3'이라는 숫자의 형태 자체가 바로 인간이 가진 생식기를 상징하고 있다고 한다. 이 '3'이라는 숫자는 우리 문화뿐만 아니라 불교나 기독교 또는 동북아시아 계통이라든가 다른 문화권에서도 숭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문화집단이 가진 이 뜻들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민족에게 있어서 특히 단군신화에 있어서 이 '3'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바로 우리 민족이 지향하는 갈등과 투쟁을 넘어선 조화의 논리인 것이다. 1과 2의 대립을 지양해서 3이라는 숫자가 이루어지는데, 그렇다고 해서 1과 2가 3으로 그냥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1과 2의 상호작용을 거치는 것이다. 1이 가지는 기본적인 성격이 있을 것이고 2가 가지는 기본적인 성격도 있을 것이고, 여기서 어떤 관계가 맺어진다. 이 맺어지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결론이 '3'이다. 조화로움으로 나타나는데, 이 과정이 현실적 타협과는 다르다. '3'의 논리는 1과 2가 자기의 역할을 찾고 위치를 정립하면서 상호작용을 일으킬 때 나타나는 것이다. 단군신화에서 '3'의 논리를 드러낸다고 해서 과정 없는 결과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3.5. 곰과 범

그 다음 '시유일웅일호(時有一熊一虎)'라는 부분을 보겠다. '일웅일호(一熊一虎)'라 해서 곰과 범을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을 강조하여 단군신화는 토템적인 산물이라고 많이들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우리 민족문화 속에서 곰은 토템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않았다. 혹 단군신화에서 말하는 곰이 생물학적 의미의 곰이라 해도 토템과는 틀린다. 토템이라는 것은 단순하게 동물을 의인화시킨 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징을 중심으로 집단의 전원이 수긍할 수 있는 논리체계가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씨족 이름과도 관련이 있고 씨족의 제사나 의례 등 이러한 모든 면에서 관련을 맺고 있어야 토템이라고 부른다. 단순하게 동물을 의인화했다고 해서 토템이라고 한다면 곤란하다.
만약 단순한 토템의 의미라 해도 곰보다는 오히려 범이 우리 민족문화에 있어서 토템의 대상이 되어 왔다. 범은 산신령 자체가 되기도 하고, 산신령을 모시고 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호랑이는 '그 분'이라든가 '영감'이라든가 '대감'이라든가 그러한 명칭으로 불려진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전설이나 민담에서 범은 존귀한 존재로 일컬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곰은 그렇지 않다. 문제시되는 것은 '웅(熊)'이라는 글자가 한글로 되어있지 않고 한문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두 가지의 방향으로 뜻을 분석해야 될 것 같다. 생물학적 의미에서의 웅, 바로 곰이고, 또 한 가지는 언어학적 의미에 있어서의 '웅(熊)', 이렇게 두 갈래로 나누어 분석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게 된다.
먼저 생물학적 의미의 곰으로 보자면, 생물학적 의미의 곰은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인간이 곰을 숭배했다. 이 현상이 두드러진 곳을 곰문화대라고 하는데, 고대의 지구 북반부에서 두드러진다. 특히 시베리아 지역에서 곰을 많이 숭배했다고 한다. 이 때 곰은 단순한 짐승이 아니라 성스러운 동물 혹은 집단을 수호하는 수호령이 되는 것이다. 시베리아 지역에 곰 숭배문화가 있고, 우리 민족이 시베리아 지역과 관련이 있다면, 우리 민족도 과거에 곰을 숭배한 적이 있다는 논리도 추정할 수 있다. 이를테면 시베리아에 흑룡강이 있다. 그쪽의 많은 종족들 중 길랴크족과 아이누족 등은 붙잡힌 곰을 자기주거지의 수호신으로 삼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위쪽의 돌칸족은 곰을 '산의 여인'으로 부르고, 보티악족 같은 경우는 숲에서 사냥을 하다가 곰을 만나면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 엎드려 절을 한다고 한다. 신이 오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밖에도 그쪽에 있는 샤먼교도들이 대체적으로 곰을 많이 숭배한다고 한다. 우리 민족이 그쪽 지역과 문화적 연관을 맺고 있다면, 우리도 곰을 신성한 존재로 숭배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증거들이 사실은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시베리아 지역에 있던 사람들에게 곰은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신의 개념으로 변화가 된다. 아이누족 같은 경우는 지금도 곰을 감이라고 하고, 신을 감이라고 한다.
이제 언어학적인 '곰'의 분석으로 넘어가 보자. 이 사람들은 신을 말할 때 곰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신을 God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을 곰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신화는 이동을 한다. 한 지역의 문화집단이 곰을 신으로 숭배했다. 음은 그대로 남아 문화집단의 이동과 같이 이동을 한다. 우리 민족은 시베리아 지역으로부터 신석기문화와 청동기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신석기문화에 영향을 받았다면 이들이 쭉 이동을 해 오면서 그들의 곰이 갖는 뜻을 가져오는 것이다. 곰이 신이라는 개념을 가져오고 거기에 따라서 음도 가져오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곰이라는 것은 생물학적 의미의 곰이 아니라 신인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이동을 한 뒤에는 곰의 의미가 바뀌어 간다. 신령스런 동물이 아닌 생물학적 의미의 곰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문화권의 변천이다.
시베리아 지역에 있던 사람들이 곰을 숭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들이 지향하는 문화가 수렵삼림문화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농경문화로 문화의 중심이 바뀐다. 그러면 여기서 숭배해야 될 신적인 존재는 달라져야 하겠다. 신이라는 것은 고대인들에게 있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는 개념규정이다. 농경문화에서는 농경과 관련된 존재가 신이 된다. 이 때의 신은 '지모신(地母神)'이다. 대지를 어머니로 생각하는 신의 개념이 생겨난다. 그러니까 농경문화권에서는 동물이 아니라 땅 자체가 숭배가 된다. 대지가 바로 어머니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지를 숭배하는 속에서 대지의 성격을 대변하는 동물이나 식물이 신적인 상징물이 된다. 이는 주로 식물이다. 왜냐하면 대지를 어머니로 할 때 대지에서 나는 것은 식물, 특히 농경문화에 있어서는 곡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곰이라는 것은 이미 지모신을 대변하는 말이 된 것이다.
그런데 곰이 가진 생물학적인 특성이 있다. 이 지모신을 상징하는 동식물을 통틀어 'lunar animal', 즉 달동물이라 한다. 인간이 농경을 시작하면서 어떤 생명체들이 살았다가 죽는 주기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 주기가 없으면 농사도 되질 않는다. 그러니까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죽었다가 깨어나는 동식물을 숭배하는 것이다. lunar animal이라고 부른 이유는, 고대인이 눈으로 볼 때 달은 죽었다가 살아나는 대표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재생(再生)하는 것이 달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특성을 뚜렷이 갖고 있는 동물들이 숭배가 된다. 곰도 동물이다. 그런 식으로 추측해 볼 때 곰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단순하게 곰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신 관념으로 쓰이다가 문화권의 이동으로 지모신을 상징하는 말과 동물로 변했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을 우리의 명칭들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곰'이란 말이 신이나 왕을 지칭하기 때문에 국명이나 지명에 '고마'라든가 '개마'라는 말들이 있는 것이다. 개마고원 같은 말은 그 자체에 아무런 뜻이 없는 것처럼 보이다. 그러나 '개마'라는 음을 이와 같이 생각해보면, 바로 신이 사는 지역이라는 뜻이 된다. 개마산이나 태백산 같은 말들은 백두산이 신산이었음을 나타낸다. 곰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토템으로 해석하지만 이렇듯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다음, 곰과 호랑이가 환웅에게 빌어서 인간으로 살기를 원했고, 환웅은 이들에게 쑥과 마늘 20개를 주고 '이것만을 먹고 100일 동안 빛을 보지 않으면 너희는 인간의 몸을 얻으리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 뒤에 단군왕검의 탄생까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여기서 곰이 인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나오는데, 이 과정에 많은 단계가 설정된다. 이것은 곰이 인간으로 질적 전환을 하기에 필요한 관문들을 설정한 것이다. 여기에 나와 있는 많은 단계들은 곰이 인간으로 질적 전환을 하는데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가를 표현하고 있다. 이 단계들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갈 때 치뤄야 하는 의식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탈바꿈해 가는 통과의례이다. 이런 단계를 거쳐서 결국은 곰은 인간이 된다. 이 때 곰이 변한 인간이라는 것은 완전한 인간은 아니다. 인간이 되었지만 신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3.6. 단군왕검

환웅도 본래의 상태 그대로 결혼을 하지는 않는다. '가화(假化)'란 표현이 나온다(雄乃假化而婚之). 이것은 거짓으로 변했다는 뜻인데, 굉장히 중요하다. 이 말은 의미 없이 들어간 것이 아니다. 환웅은 신이다. 신의 입장으로선 인간으로 화한 웅과 결혼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결혼했다면 환웅은 자신의 의도를 성사시킬 수가 없다. 왜냐하면 환웅이 의도한 것은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천하는 인간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웅이 신으로서 결혼을 했다면 거기서 난 자식은 신일뿐이다. 신이 인간을 통치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인간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신으로서 통치하는 것이다. 환웅이 지향했던 것은 인간으로서 홍익인간의 이념이 잘 구현되는 인간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을 담당할 주체는 신이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어야 한다. 환웅은 거짓으로 혹은 임시로 변해서 신이면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신인(神人)이 되어서 인간으로 변한 신웅과 결혼한다. 신인과 신인이 합해져서 단군왕검이 나온 것이다. 이것은 단군왕검이라는 말 자체를 분석해 보면 뚜렷하게 나타난다.
단군왕검의 ‘단’자는 제단 '단(壇)'자를 쓴다(號曰壇君王儉 -『삼국유사』). 혹은 박달나무'단(檀)'자를 쓰는데(釋帝之孫名檀君 -『제왕운기』) 의미의 차이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우리나라에 글자가 없어 한자를 빌려 왔기 때문이다. 한자를 빌려오는 데는 방법이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뜻을 빌려오는 차훈법(借訓法), 음을 빌리는 차음법(借音法), 그리고 반씩 빌려오는 반차훈(半借訓), 반차음법(半借音法)이 있다. 그래서 우리의 말을 한자로 표현하게 되면 다르게 나타난다. 이것이 고대사를 해석하는 열쇠가 된다. '단군(壇君)' 하면 제단에 모신 군주이다. 박달나무 단자(檀)를 쓸 때에 '달'은 산이란 뜻이다. 그래서 '박달'이라고 하면 밝은 산을 말한다. 그것은 '태백산'을 가리키고, 태백산의 군(君)은 바로 제단을 모시는 군주가 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어느 '단'자를 써도 의미에 큰 차이가 없다.
이제 '왕검(王儉)'이라는 말을 살펴보겠다. 이 왕검이라는 말은 잘 나오질 않는다. 제왕운기(帝王韻紀)에는 왕검이란 말이 없고 대부분의 책들이 제왕운기를 따라 왕검이라는 말을 쓰질 않는다. 동사강목에 왕검이 한번 나온다. 대부분의 한민족의 역사책 속에는 왕검이라는 말이 쓰이질 않았다. 삼국유사에 특이하게 쓰였다. 일연이 단군이라는 명칭 뒤에 왕검이라는 말을 붙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단군의 성격은 어떻게 변화될까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왕검은 왕 + 검으로 볼 수 있다. '왕'이라는 것은 킹(King)을 말한다. '검'은 뜻이 없고 음을 빌려온 것이다. 그러니까 '왕'은 뜻을 빌려왔고, '검'은 뜻이 없고 음만 빌린 것이다. '감'은 고대에서는 '검', '금', '곰' 등과 비슷한 형태로 많이 쓰여졌는데, 이들은 신(神)을 뜻하는 우리의 옛말들이다. '이사금', '상감', '대감', '영감' 등의 '감'자도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이와 같은 예들은 우리에게만이 아니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널리 나타나고 있다. 동북시베리아에서는 무당을 '감' 또는 '캄'이라고 불렀다. 일본은 신을 '가미'라고 한다. 터키나 몽고에서도 '가미'라는 말을 이와 같이 사용한다. 지역적 관련성이나 역사적 유래를 볼 때 '감'이란 것은 신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 다음에는 '검'이란 말이 갖는 신적인 성격을 살펴보면, '검'에는 ‘유연하다, 그윽하다, 어둡다’는 뜻이 있다. 곰은 동면동물이면서 신체가 검다. 아울러 '검'은 지모신을 대변하는 뜻을 갖고 있다. 환웅은 '밝신'이 된다.
무문토기인들(청동기인들)이 유입될 때, 그들의 태양을 숭배하는 광명사상이 '환웅'이라는 말에 함축되어있다. '환웅'은 밝은 하늘의 신, 즉 '천신(天神)'이라 볼 수 있다. 감신은 밝신의 상대적인 존재로서 어둠의 신이다. 농경문화권에서 동면동물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곰으로 상징되는 존재의 성격, 그것은 바로 지모신을 상징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우리 문화권의 형성과정과도 일치하고 있다. 수렵삼림문화권에서 신으로 숭배되던 곰은 문화권의 이동에 따라서 종래의 관념에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따라서 신 자체로서의 성격은 잃고 감이라는 언어만 남아서 신의 의미만 담고 있었다.
그런데 농경문화가 발달하면서 인간은 새로운 신의 개념과 존재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이 단계에서 대지는 생산의 중요성으로 인하여 신적인 의미를 가지면서 여성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따라서 지모신 신앙이 발달했고 그 과정에서 곰이 가진 동면동물이라는 특성으로 인하여, 곰이라는 용어에는 지모신의 의미가 담긴 것이다. 이러한 의미와 성격의 변천과정은 이 단계에 농경문화가 수용되고 발달해가는 과정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구나 곰은 검정색 피부로 인하여 밝음과 어둠의 양신 중 어둠의 신을 표상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볼 경우 단군신화에는 환인과 환웅으로 표상되는 밝신, 웅(熊 : 虎도 가능함)과 왕검으로 표상되는 감신, 즉 두개의 상반된 신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문화권으로는 태양을 숭배하고 천손강림신화를 가진 유목문화 집단이 주체가 되어서, 대지를 숭배하고 지모신 신앙을 가진 농경문화 집단과 자연스럽게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갔음을 알려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단군왕검은 단군과 왕검으로 나타나는 밝신과 감신이 결합하여 만든 '밝감'이라는 합성명사로서 합일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과 땅, 아버지와 어머니, 남과 여, 광명과 암흑의 철저한 이원적 대립을 상징한 환웅과 웅녀의 양 존재가 결합한 결정체로서, 우주의 모든 2원 대립을 해소함으로써 합일되는 '3의 논리'를 상징하고 있다. '3의 논리'는 단군신화가 표현하고자 한 본질적인 논리구조이고, 또한 우리 문화가 단군신화라는 형태를 통해서 보여주고 스스로를 지탱해 온 민족논리인 것이다. 3의 논리는 갈등을 무화시키고 대립을 지향하며 합일을 추구하는 이론체계로서 변증법을 의미하지만, 역사발전에서 과정과 단계를 중시하고 양보다는 질을 중시하며 갈등보다는 부분적 양보와 조화를 전제로 상호조화를 이루어가는 논리이다. 단군신화 속에서는 복합적인 예비상황과 중간단계의 설정, 환웅과 곰 등의 질적 변신을 통해서 표현되고 있다. 3의 논리가 철저히 실현된 결정체가 바로 단군왕검의 탄생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2원의 합일, 즉 3의 논리의 실현이 단군이라는 인간의 탄생과 건국자의 출현으로 나타나는 사실은 단군신화가 인간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며, 동시에 조선(朝鮮)이란 나라는 이를 실천하는 이상향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참고문헌 및 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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